한 때 50%에 육박했던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이 ‘수해골프파문’과 ‘호남비하’ 발언 등 잇단 악재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 달 사이 만에 절반가량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다 또 정권창출은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수해골프파문’의 경우 수해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배심감과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그나마 다행(?)서럽게도 은근슬쩍 넘어갔다.
때마침 터져 나온 김병준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논문 의혹 사건이 한나라당을 수해 속에서 건져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코드 여파가 한나라당에서는 구세주 역할을 담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뒤이어 터져 나온 ‘호남비하’ 발언의 파장은 심상찮다. 3김시대 청산 이후 전 국민이 염원하던 지역갈등을 야당에서 재 점화 시킨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뒤늦게 당 차원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이효선 광명시장을 자진 탈당 시키고, 강재섭 대표까지 나서 머리를 조아리며 수습에 나섰지만, 한번 불붙기 시작한 호남인들의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인다.
오히려 ‘정치적 쇼’라는 게 대다수 호남인들의 반응이다. 이 같은 분위기가 대선으로 이어진다면 ‘국토분열’이라는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대선필패’는 기정사실로 굳어질 공산이 크다. 매일일보은 ‘호남비하’ 발언의 진상과 여파에 따른 대선의 향방을 진단해 보았다.<편집자 주>
문제의 발단은 한나라당 소속의 이효선 광명시장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장은 지난달 12일 하안2동 순시 도중 오찬자리에서 옆자리에 있던 한 시의원에게 “전국 사립학교의 분포도가 몇 %되느냐?”고 질문해, 이 의원은 “약 5~10%정도 되지 않겠느냐”고 답을 하자, “이런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시의원이 되었느냐, 공부 좀 해라, 사립학교가 50%가 넘는다.”고 질책했다. 모욕을 당한 이 시의원이 자리를 뜨고 없는 사이에, 전북 김제 출신이었던 시의원의 출신을 빗대 “전라도 놈들은 다 그렇지, 그래서 전라도 놈들은 다 욕먹어”라고 말했다. 게다가 ‘호남비하’ 발언이 언론을 통해 문제화되자, 지난 92년부터 14년간 광명시와 자매결연 맺어 온 영암군수에 전화를 걸어 “자매결연에 따른 실적이 없으니 그만두자”고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전남 고흥군의회와도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했다. 이 시장은 호남지역과의 자매결연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호남비하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 일자, “영암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활발한 교유를 위해 김제로 자매 결연지를 바꾸려고 하는데 군수님 의견은 어떠십니까’라고 물었더니, ‘편한 대로 하라’고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자매결연과 관련한 행정절차를 잘 몰라 벌어졌던 일이며, 결코 호남을 배제하려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강재섭 대표, 호남대상 최초로 머리 조아려 사과
그러나 이 사장의 해명은 초라한 변명에 그치고 말았고, 급기야 호남인들의 반발이 전국을 통해 확산되자 한나라당 차원에서 뒤늦은 수습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문제의 발단이 된 이 시장을 자진 탈당시키고, 대국민 사과를 통해 불붙은 호남민심의 진화에 나섰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지난 10일 당 대표로선 처음으로 호남에 머리를 숙였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강 대표는 이날 광주시내 한 호텔에서 가진 취임 1개월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의 전신이었던 정당 시절부터 최근 광명시장의 호남 비하 발언에 이르기까지 호남 분들을 섭섭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당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당 대표이고 또 민정당 시절부터 시작해서 5선의 오랜 정치경력이 있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생각한다.”며 밝혔다. 강 대표의 호남 사과발언은 한나라당 차원에서는 처음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박근혜 전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끼친 ‘유신 피해’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한 적은 있으나, 당 차원이나 호남지역을 대상으로 한 사과는 없었다. 강 대표는 이어 “호남선 복선화에 36년이나 걸리는 등 역지사지해보면 호남 분들이 우리 한나라당에 대해 섭섭함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며 “그 외에도 한나라당이 반성할 일이 많겠지만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남을 껴안는다는 말은 감히 쓰지 않겠다.”며 “호남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싶고 우리의 뛰는 맥박을 전해드리고 싶다.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를 품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임향순 대회장, “기본자질도 없는 이 시장, 사퇴는 당연”한나라당의 이 같은 노력(?)도 한번 불붙은 호남인들의 분노에는 속수무책. 오히려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정치적 쇼’라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는 물론 재미호남향우회까지 합세, ‘국가발전의 최대 장애물인 지역갈등을 극복한다’는 명분 속에 ‘이효선 광명시장 망언규탄 범국민 비상대책위’를 발족하고, 17일 광명시를 시발점으로 전국적인 망언규탄과 사퇴투쟁에 돌입키로 했다. ‘이효선 광명시장 망언 규탄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이영호-임향순 대회장은 “호남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효선 광명시장은 기본적으로 자치단체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면서, “이 시장의 사퇴가 이뤄질 때까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방침”이라고 못 박았다. 전국 호남향우 총연합회 이영호 회장은 “광명시민 중에도 호남사람이 있는데, 호남을 비하하는 시장의 의도는 시민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시정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며 자질문제를 지적했다.이 회장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상처를 파헤치는 이 시장의 작태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사퇴는 물론 이 시장이 한국을 떠날 때 까지 1인 시위 등 갖은 투쟁을 지속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경기도 연합회 박장명 회장은 “지역갈등을 조장, 국토를 가르는 것은 범죄행위에 속하는 만큼, 이 시장을 구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광명시 연합회 이철호 회장 역시 “시민연대와 연계해 투쟁을 벌여나가는 한편, 주민소환제도를 통해 이 시장을 사퇴시킬 것”이라며 투쟁의지를 불태웠다.한나라당 대선 앞두고 ‘국토분열’ 주범 몰리면... ‘대선필패’그러나 정작 이 시장은 자진사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 3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사회적 물의가 되고 있는 발언에 대해 주민소환제가 시행이 되는 1년 뒤에 ‘주민소환제’로 평가를 받겠다고 입장을 밝혔다.주민소환제도는 내년 7월부터 시행되게 된다. 때문에 이 시장이 주민들에 의해 사퇴한다 해도 최소 1년은 시장 직을 유지할 수 있다. ‘사퇴할 때까지 투쟁’한다는 호남인들과, ‘주민들에게 심판 받겠다’는 이 시장의 공방은 불가피하게도 1년여를 끌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효선 광명시장 망언 규탄대회’ 최순모 추진위원장은 “이영호-임향순 대회장이 2천만 원의 성금을 냈고, 멀리 미국에서도 성금이 잇따르고 있어 대회전까지 최소 1억여 원이 모금될 것으로 보인다.”며 “17일 광명지역체육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를 시발점으로 지속적인 전국대회를 벌여나갈 것”이라고 강도 높은 투쟁의지를 재확인시켰다.최 위원장은 이어 “이 시장이 사퇴할 때까지 전 호남인들은 한 발작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호남비하’ 발언의 파장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가장 부담스러운 당사자는 이 시장이 아닌 바로 한나라당이다.이 시장을 자진탈당 형식으로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나라당이었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것이며, 상호 공방전 속에서도 한나라당이 거론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최근 ‘수해골프파문’으로 태반의 민심이 이반현상을 보이고 있는데다, ‘호남비하’발언이라는 또 다른 악재가 한나라당을 ‘국토분열’의 주범으로 몰고 간다면, 정치권 일각에서 떠도는 ‘대선필패’는 이유 있는 소문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이 ‘정권재창출’이라는 대의를 위해 꺼내 들 카드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강성태 기자<st1535@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