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골프를 바라보는 삐뚤어진 시선

2017-06-21     이상민 기자
[매일일보 이상민 기자] “이 부장 나 오늘 머리 얹는 날이야.”
지난 봄 어느 날 중앙정부 부처의 국장으로 정년퇴직한 한 분이 클럽하우스에서 아침을 먹으며 던진 말이다. 싱글을 치는 숨은 고수라는 소문이 파다한 분의 의외의 말에 “왜요?”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되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그 동안은 하나도 아니고 서너 개의 가명을 돌려써가며 골프를 쳤었지. 이런 저런 눈치가 보여 내 이름으로 골프를 칠 수 없었어. 실명으로 골프를 치는 사실상 첫 날이니 머리 올리는 셈 아닌가?”골프하면 ‘부자 스포츠’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특히 공직자가 골프를 친다고 하면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그런 까닭에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부자 스포츠라는 인식과 일반 국민들과의 괴리감 등을 이유로 어느 정권에서나 골프를 억눌러왔고 이런 홀대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정권들이 골프산업 육성을 외쳐왔지만 정작 현실은 정반대였던 것이다.공식적으로 건 비공식적으로 건 ‘골프 금지령’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급기야 가명으로 골프를 쳐야 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지금도 대한민국 골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특소세 등 중과세에 그린피(골프를 치는 비용)는 높아졌고 비싼 가격 때문에 부자 스포츠라는 인식은 더욱 확산되며 골프를 억누르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가명까지 써가며 국내에서 비싼 가격에 골프를 치느니 차라리 해외로 나가는 골퍼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대한골프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난 국내 골프 인구가 110만명을 훌쩍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아 등지의 그린피가 국내보다 워낙 싸다보니 비행기 삯 등 각종 경비를 제외하고도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것은 덤이다.그러는 사이 국내 골프장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국내 골프장의 절반 가까이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자본잠식을 견디다 못해 법정 관리중인 곳도 수십 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물론 2000년대 중반 골프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골프장 경영악화의 주범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경영적 판단까지 국가에서 책임져줘야 한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하지만 국내 골프인구가 530만을 훌쩍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지금 골프장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 상당부분이 과다한 세금 때문이라는 업계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해외 골프장들과 도저히 가격 경쟁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아 놓고 골프장의 방만 경영만을 몰아세울 수는 없다.이제는 골프를 산업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바라봐야할 때다.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의 유출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골프가 5만여명 이상에게 일터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종 장비나 의류 등 파생산업 종사자까지 눈을 돌릴 경우 골프야 말로 고용효과 측면에서는 엄청난 ‘효자산업’이 아닐 수 없다.늦은 감은 있지만 공무원의 골프 금지령을 풀어주는 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더불어 9월 시행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가뜩이나 어려운 업계에 충격을 주지 않기를 바랄뿐이다.억압하고 누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