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토사구팽 경영 [집중 탐구]

단물 다 빠지니 넌 필요 없어?

2010-06-11     김시은 기자

[매일일보=김시은 기자] 재계의 후발주자인 동부그룹은 그동안 삼성 따라하기에 공을 들였다. 주력 계열사의 대표 자리에 삼성 출신의 인사를 대거 영입해 삼성의 구조를 본 따는 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그룹 내 주력 계열사인 동부화재의 대표 후임에 ‘삼성맨’을 배제시킨 것을 두고 뒷말이 일고 있다. 이중 특히 일각에서는 그간 삼성출신과 기존인사들의 내부갈등이 곪을 대로 곪아 진물이 터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나아가 동부가 꼬마삼성이라는 꼬리표를 떼버리고 동부그룹만의 경영을 하려한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출신 인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단물만 빼고 버려지는 토사구팽 신세가 된 꼴이라는 목소리도 재계 안팎으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매일일보>은 동부그룹의 토사구팽 경영을 진단해봤다.

동부그룹의 삼성 따라하기 뒷말의 역사는 길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1998년부터 삼성 배우기에 나서 재계의 후발주자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고 한다. 그는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스템 경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이러한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삼성인재가 필요하다고 직감했다. 그렇게 김 회장은 삼성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삼성 출신 CEO급 인사들의 영입을 독려했고 그 결과 동부그룹 주력 계열사 대표의 절반 이상을 삼성 출신으로 대거 포진할 수 있었다.

동부 “삼성배제설 사실 무근, 차별 등 그룹내 내부갈등 말도 안 돼”
일각 “김 회장이 올 초 밝힌 '동부식 경영 선포'와 맥 닿아 있다” 분석

내부갈등 곪을 대로 곪아 진물 터진 결과?

그런데 이러한 동부그룹이 최근 삼성따라 하기에 실증을 느낀 듯하다. 그야말로 단물을 다 뺏으니 이젠 동부그룹만의 경영을 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룹 내 주력 계열사의 대표 후임에 ‘삼성맨’을 배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사실 ‘삼성맨 배제설’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룹 내 중심축인 동부화재의 대표 김순환 부회장이 지난 4월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으면서부터다. 김 부회장의 문책경고 이유가 실손의료보험 불완전 판매로 인한 중징계였다고는 하지만, 그의 후임으로 선임된 인사는 여느 때처럼 ‘삼성맨’ 인사가 아닌 ‘토종 동부맨’ 김정남 대표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김 부회장을 마지막으로 주력 계열사 대표 자리에 포진됐던 8명(㈜동부의 부회장과 사장, 동부건설·동부한농·동부아남반도체(현 동부일렉트로닉스)·동부정보기술의 대표)의 삼성출신 인사가 퇴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동부그룹의 삼성 출신 배제설을 두고 삼성출신과 기존인사들의 내부갈등이 곪을 대로 곪아 진물이 터진 결과라는 시각이다. 동부그룹의 삼성 따라잡기는 지난해 8월 재계 20위라는 성장가도의 기본 틀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지만, 기존 동부그룹 인사들과의 그룹 내 불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함께 제기됐기 때문이다.특히 그룹 내 불화의 주인공에는 김순환 부회장이 있었다. 그간 동부그룹은 김 부회장의 삼성 경영스타일로 사원들의 불만이 높다는 후문에 시달린 데다, 그가 부임하면서 전체 임원 28명 중 11명을 삼성출신으로 바꾸고 우대까지 해, 기존 동부출신들 중엔 차별에 불만을 품고 이적한 직원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동부그룹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삼성 출신을 차별하고 배제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야말로 일각의 시각이다. 전체 사원 중에 삼성출신 인재들의 퇴사율이 가장 낮다”며 “오히려 융합이 잘되고 자연스럽게 화합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훌륭한 외부 인재 영입은 이제 동부그룹만의 고유한 인재등용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몇몇 임원들이 퇴사한 것을 가지고 확대해석해서 와전된 얘기”라고 못 박았다. 

삼성 꼬리표 떼고 ‘동부그룹만의 경영’ 하겠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삼성 배제설과 함께 동부그룹만의 경영을 하려한다는 관측도 ‘솔솔’ 제기되고 있다. 올해 동부그룹은 미래를 대비한 선제적 투자와 스마트한 지식경영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인 7대 사업 분야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동부그룹은 선제적 투자로 동부제철과 동부메탈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동부하이텍 반도체부문은 동부그룹 지식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기존의 ‘삼성식 소그룹 독립경영’ 체제와는 조금 다른 행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소그룹 독립경영이 김준기 회장과 (주)동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소재·화학·금융·건설 등 4개 사업부문의 독립경영을 강화하고 나선 것에서 더 나아가 철강·금속, 농·생명, 전자·반도체, 건설·에너지, 물류·무역·정보기술(IT), 보험·금융, 문화·사회 분야로 확대해 ‘글로벌화·전문화·고부가가치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는 계수 위주의 관리자형 경영에서 벗어나 달성 가능한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업가형 경영계획을 실천하라는 그의 당부와도 무관하지 않다. 김준기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지금까지의 국내시장 중심의 좁은 시야에서 탈피해 세계시장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며 “2000년대에는 그룹 경영을 시스템화 했다면 2010년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는 전문기업으로 성장, 이제는 우리가 창안한 동부경영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꼬마삼성이라는 꼬리표를 버리고 동부그룹만의 경영을 하려한다는 것은 결국 김 회장의 경영 전략에 변화가 왔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아닌 게 아니라 김 회장은 “각 사업의 특성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개선시켜 조직적 체계적으로 실행, 성과주의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앞으로는 CEO를 비롯한 모든 임직원들이 동부경영시스템을 철저히 숙지하고 동부그룹, 각 사, CEO를 막론하고 동부경영시스템 속에 들어가 판단하고 결정해야한다”고 언급 ‘동부그룹만의 경영’을 하겠다는 의중을 비추기도 했다.   

더욱이 이러한 동부그룹만의 경영은 앞서 언급한 김 부회장을 마지막으로 주력 계열사 대표 자리에 포진됐던 8명의 삼성출신 인사가 퇴진하고 그 자리에 삼성출신을 제외한 동부 인사 등으로 재영입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