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제살 어디까지 도려낼까?

향후 조씨 진술여부 따라 후폭풍 거셀 듯

2007-08-15     매일일보닷컴
브로커에게 거액의 대가를 받고 동료 법관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와 전직 검사, 현직 경찰 총경이 동시에 구속되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검찰은 이번 법조 비리의 핵심 열쇠를 쥔 인물로 구속된 조관행(50) 전 고법 부장판사를 꼽고 있어 향후 조씨의 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씨가 비리에 연관된 다른 법관들을 거명할 경우 이번 수사는 법조계 전체를 덮치는 형국으로 급물살을 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9일, 김씨로부터 1억3천만원대 현금과 고급 카펫을 받고 민·형사 재판에 개입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조관행 전 고법 부장판사를 구속수감했다. 김영광 전 검사와 민오기 총경도 사건 무마 대가로 각각 1천만원과 3천만원을 받은 뇌물 수수 혐의가 적용돼 차례로 구속수감됐다. 조씨는 지난 8일 오후 6시간 넘게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후배 판사와 검사를 상대로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이며 검찰이 제기한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의 도움 없이 자신이 직접 검찰과 공방을 벌이며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습은 민사소송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던 고위 법관 출신다웠다.


그러나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자포자기한 조씨가 앞으로 태도를 바꿔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상황은 일파만파로 확대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조씨같은 고위급 인사의 경우, 수사 중엔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구속된 뒤 급속도로 좌절하면서 혐의 내용을 시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조씨는 브로커 김씨의 접대를 받는 자리에 배석 판사들이나 동료 판사들과 동행한 적이 많았고 이 가운데 일부는 이후 김씨와 따로 만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비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검찰 관계자도 “이번 수사는 절반 정도 진행됐다” 고 말해 기소 전까지의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비리가 드러날 수 있음을 암시했다.검찰은 현재 조씨의 소개로 김씨를 알게 된 후 김씨로부터 한 차례 1천만 원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K씨 등 추가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이달 하순까지 마무리 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중에는 조씨와 함께 브로커 김씨와 식사를 했던 판사 2~3명을 비롯, 전직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현직 검사, 경찰 간부, 금감원 직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계좌추적 과정에서 새로운 단서가 나오면 언제든지 수사를 펼치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조씨가 어떤 내용을 언급하느냐에 따라 수사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될 전망이다.한편 검찰은 조씨가 브로커 김씨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가처분 결정 등 4건의 재판에 관해 조씨의 청탁이 실제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조씨가 당시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조씨의) 청탁을 받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받아 제출했고 문제가 된 가처분 결정과 보석 허가 등은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라 청탁에 영향받은 결과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일단 대법원은 조씨의 영장 범죄사실에 포함된 판결 4건의 재판 과정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한 검찰 관계자는 “4건의 담당 변호사들이 조씨의 고교 동창 등 지인들이었다”고 밝혀 어떤 형태로든 조씨의 영향력이 재판에 작용했을 일말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아울러 조씨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3년, 조씨로부터 ‘매매대금 등 청구사건’ 판결을 받았던 박모(54)씨는 조씨가 구속된 지난 9일, 조씨의 판결에 문제가 없는지 밝혀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이외에 조씨가 담당했던 수많은 판결의 일부 소송 당사자들도 과거 재판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던 것은 아닌지 의혹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사건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음을 인식한 대법원은 이달 16일 28명의 전국 법원장급 고위 법관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열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일선 판사들과 법원장들의 의견을 가감없이 듣겠다” 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쏟아진 비판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법원장회의를 통해 일회성 대책이 아닌 사법부 환골탈태의 계기가 마련될 것” 이라고 전했다. 최윤지 기자 yoon@sateconomy.com<매일일보닷컴 제휴사=토요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