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적 3탄... 언론사 입막은 두산

“내 아들 사지로 내몰았다”...유가족 피눈물 흘리는 사연

2007-08-19     한종해 기자

[매일일보 한종해기자] 대우종합기계가 두산인프라코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지 1년 4개월. 그동안 기업이익은 성장했지만 도의적인 면에서는 얼마나 충실했는지 의문이 든다. 

지난 4월 3일,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26살의 젊은 청년이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특수엔진 개발 1팀의 연구원이었던 김세중씨.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기업에 취직한 그가 어떤 이유 때문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에 대해 두산인프라코어 측에서는 “김씨가 과거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그로 인해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두산인프라코어 노조는 “의료보험공단에 확인 결과 정신치료와 관련된 어떠한 병과기록도 없으며 유가족 역시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며 “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여러 달이 흘렀지만 회사 측으로 부터 어떠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김씨의 유가족. 그들은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억울하게 죽은 것도 서러운데 모든 책임은 고인 본인에게 있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거대기업에 맞서 그들은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매일일보에서 그들을 독점 인터뷰 했다.지난주 여의도의 인근 커피숍에서 그들을 만났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말문을 연 그들은 ‘못가진자의 서러움’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한 언론사 기자가 일련의 모든 사건들에 대해 인터뷰를 해 갔고 사진자료를 보내 달라 하여 보내줬더니 정작 다음날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고 했다. 의아하게 생각한 유가족들은 언론사에 전화에 해당기자와 통화를 했고 유가족이 “두산인프라코어가 대기업이라서 기사를 못 내느냐”라고 묻자 그 기자가 “이해해주셔서 고맙다”고 답했다고 한다. 두산 측의 압력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세중씨의 부친인 김영(54)씨는 “사고 당일 회사 측에서 아들이 인하대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이 와서 급히 가보니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다. 병원관계자들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고 하며 응급실 이용료를 지불하라고 했다”, “병원관계자에게 산재처리를 해서 두산 측에서 비용을 물어야지 왜 가족들이 내야 하느냐”고 묻자, “산재로 들어왔지만 회사 측에서 산재를 취소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두산 관계자들에게 따지자 얼버무리며 그냥 넘어가려해 자신들이 비용을 부담했다고 말했다.

김세중씨는 병원도착 10시간 만에 사망했다.

김영씨는 얼마 전 까지 인천 두산인프라코어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최승철 대표이사를 만나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렇지만 두산 측의 제지로 만나보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두산 측으로 받은 보상은 장례비용과 직원들이 모아서 준 조의금뿐이라고 밝혔다.

아들의 사고 직후 평소 혈압이 높아 고생하던 김영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다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수없이 많다.

김영씨는 “아무 이상도 없이 생활하던 우리 아들이 갑자기 자살을 택했는지 어떤 이유도 모르겠다”고 밝히며 “두산인프라코어 측에서 개인적인 이유 때문의 자살이라고 몰아가고 있다”고 분통함을 토로했다.

그들은 죽음을 예견했다?

古 김세중씨는 지난해 7월 21일 입사해 올해 사건발생 불과 일주일 전까지는 아무 이상 없이 여느 회사원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일해 왔다. 8시까지의 출근시간에도 7시40분에 제일 먼저 출근했고 이것은 사건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있는 4년제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연수를 받고 2개월 정도 일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그만두었고 이후 한라공조에 입사해 연수를 받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두산인프라코어에 취직했다.

김씨의 행동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때는 사건 발생 약 일주일 전인 3월 27일. 점심시간만 되면 사라지는 그에게 입사동기인 성모씨가 ‘무슨 일이냐’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별 말없이 불안에 떠는 증세를 보였다. 걱정이 된 동기들은 29일 저녁에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 는 등을 얘기를 했다고 한다. 3월 31일 월차를 내고 4월 3일 출근한 그는 일과시간이 시작되는 8시에 사라졌고, 죽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던 직장 동료들은 “기숙사에서 목을 매지 않았을까”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방을 찾아 헤매던 중 옥상에서 담배를 한 갑 이상 피우고 있는 김세중씨를 발견해 아래로 데리고 내려왔다. 상사인 송모 대리와 선배연구원인 강모씨와 대화를 하던 고인은 물을 먹고 오겠다고 밖으로 나가 옥상에서 투신했다.

안 피던 담배를 한 갑 이상 피운 점, 사고가 나기 전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점, 동료들이 “목을 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 등에서 그들이 김세중씨의 죽음을 미리 예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8시부터 11시까지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상한 행동을 모이는 김세중씨에 대한 관심은 동료들 선에서의 관심뿐이었고 그 이상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김세중씨의 부친 김영씨는 “3시간 동안 직장 동료가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자살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는지, 그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내의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도록 한다던지 친인척들에게 연락했다면 안타까움 죽음을 막을 수 잇었을 것이다”라고 원통해했다.

또 “회사 측의 주장처럼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자살을 택한 것이라면 왜 꼭 연구소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김세중씨의 지갑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세중씨의 외삼촌 임장섭(55)씨는 경찰과 검찰에 진정서를 내며 지갑을 찾기를 원했지만 지갑의 행방은 찾을 수 가 없었다. 사측에서는 지갑은 어느 곳 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임장섭씨는 “유서도 없고 지갑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사측에서 어떤 것을 숨기기 위해 지갑을 안돌려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이어 “세중이는 군대도 강원도 원통에서 무사히 마쳤고 대학생 때 TV인터뷰에 몇 번 나올 정도로 총명했다”, 또, “양말까지 꿰어 신을 정도로 검소했고 집에서도 어떤 문제도 없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가버린 것은 분명 어떠한 이유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산, “답변하고 싶지 않다” 불쾌감 드러내

한편 두산 측은 이 사건을 계속해서 기사화 시키는 것에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두산 그룹의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매일일보에서 이 사건에 대해 기사화를 시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했고, “자식을 잃고 원통해 하지 않을 부모는 없겠으나 그 책임을 ‘기업의 책임이다, 개인의 책임이다’ 라고 몰고 가는 것은 달갑지 않다”고 전하며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두산 그룹 측에서 다 알 수는 없다. 두산인프라코어 측에 알아봐야할 사항이다”라고 밝혔다.

두산인프라코어에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두산인프라코어의 홍보실에서는 그 얘기는 답변하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얘기 했다.

김세중씨가 왜 투신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지금도 석연치 않다. 김세중씨가 왜 회사 일을 힘들어하고 사표를 내려고 했는지를 밝히면 되지만 이를 입증해줄 동료들이 모두 회사의 입장에 서 있는 관계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 근로자의 죽음에 대해 회사가 철저히 발을 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당장에 오늘은 회사 직원이라며 일을 부리고 임금을 주지만 어느 순간이든 회사에 도움이 되자 않는 다고 생각되는 순간 가멸차게 내치는 대기업의 횡포에 등골이 싸늘하다. 기업이 귀한 남의 아들을 뽐아 일을 시키면서 이 정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 근로자의 서러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사원을 책임지는 모습도 그리고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다. 두산이라는 기업이 이번 사안에서 철저하게 발을 빼 당장 회사가 근로자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관철시키고 몇 푼의 보상금을 아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직원을 하나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지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