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메갈 현상과 소수세력의 운동 전략
2017-08-08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 최근 1년여, 온라인상에서 최고의 핫 키워드는 ‘메갈’이었다.박근혜정부의 총체적 무능을 재확인시켜준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만들어진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발원한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를 필두로 파생된 각종 온라인 활동들은 ‘메갈 현상’이라 부를 만큼 막대한 사회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이 미국사회에 내재되어있던 흑백갈등을 더욱 격렬해보이게 만든 것처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집권은 대한민국 사회에 누적되고 곪아온 남녀 사이의 여러 모순된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 것 같다.이런 상황에서 메갈리안들은 일부 남성 네티즌들의 한국 여성에 대한 혐오(이하 여혐)와 조롱을 거울처럼 반사시켜 되돌려줌(이른바 ‘미러링’)으로써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를 통해 여혐의 부당성을 증명하고 양성 평등 사회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그 취지와 달리 다수 네티즌들은 ‘메갈’에 대해 한국 남성(동성애자 포함)에 대한 일부 여성의 피해의식 혹은 우월의식을 ‘혐오’라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막장 네티즌’ 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메갈 보다 앞서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분화되었으면서 온갖 반사회적 욕구를 배설하는 쓰레기장으로 소비되고 있음에도 자기들은 대외적으로는 ‘애국보수’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는 ‘일베’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메갈이나 일베의 이러한 자기규정과 주변 반응 사이의 이러한 격차는 ‘다에시(통칭 IS 혹은 ISIL: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를 연상시킨다. 특히 최근 들어 다에시의 테러 활동이 ‘묻지마 총기 난사’ 수준으로까지 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메갈리안들은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자신들 덕분에 여혐의 유해성, 심각성을 일반대중에게 알리는 효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마치 다에시의 테러가 이슬람 권익을 향상시켰다거나, 흑인에 의한 경찰 총격이 흑인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자신들의 폭력적 행위로 비무장의 무고한 민간인이 피해를 입는 것에 전혀 괘념치 않으며,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정치적 목적’을 내걸었지만 그 마저도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을 넘어 사실상 그 명분에 해를 입히고, 오히려 구성원들의 1차원적 욕구를 해소하기에 급급해 보인다는 점에서 메갈과 일베, 다에시는 서로 닮아있다.메갈 혹은 그 일부 구성원이 미러링을 빙자해 아동 성희롱 같은 반사회적 소재를 스스럼없이 공유하면서 이러한 행동들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동일·유사 행동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는 주장에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그리고 애꿎은 ‘페미니즘’을 명분으로 내세워놓고 그런 반사회적 활동을 벌인 구성원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을 하고 있다는 점은 메갈리안 전체가 ‘공범’으로 지탄을 받아도 항변할 말이 별로 없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솔직히, 지금 필자의 머릿속에는 ‘일베를 방치하는 이 나라에서 메갈 비판이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다. 일베를 규제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터부’처럼 아예 무시하고 싶어하는 필자가 굳이 메갈에 대해 펜을 들고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일베를 언급하는 것은 아마도 어떤 심정적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1991년 ‘정원식 계란 투척 사건’ 또는 ‘6·3 외대 사태’는 당시 대학생 시위에 대한 경찰의 살인 진압을 향한 규탄이 거기에 동원된 밀가루와 계란, 페인트 등으로 인한 처참한 비주얼과 교수라는 신분과 맞물려 언론에 의해 ‘최악의 패륜’으로 해석되면서 이후 학생운동 전체를 암흑기로 몰아넣은 계기가 되었다.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소수세력 혹은 비주류가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할 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하는 것은 ‘명분’이라는 것이다. 그 명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충격요법은 시스템의 응징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운동 전체의 에너지를 깎아먹을 뿐이다.아무런 법칙도 정의도 없는 정글처럼 약육강식의 논리로만 굴러가는 듯 보이는 한국사회 혹은 지금의 인간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원리가 ‘명분’이다. ‘명분’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그 순간 누구도 그 옆에 쉽게 설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