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 민영화 앞두고 진퇴양난 빠진 사연
10년째 발 빼면 우리보고 어쩌라고?
2010-07-01 김시은 기자
[매일일보=김시은 기자] 세 번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우리금융그룹이 민영화를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금융위는 경쟁 입찰을 통해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지분(56.97%)을 매각하는 것을 고시했지만, 민영화 방안 발표를 미루는 등 어찌된 일인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매각 방법이 결정 나기도 전에 KB금융그룹과의 합병 시나리오가 돌면서 한국판 메가뱅크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M&A를 통한 은행 대형화는 은행 노동자의 생사와 직결된다. 중복 업무와 점포를 줄이는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으로서의 역량보다는 서민금융과 중소기업 대출 위축 등 폐해가 뚜렷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에 <매일일보>은 우리금융그룹이 민영화를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진 사연을 취재해봤다. KB금융 어윤대 내정자 메가뱅크론 철회, 합병 2년 뒤로
정부,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 발표 앞두고 기약 없이 미뤄
일각 여론 의식해 때를 기다리는 중? 금융위·KB금융 둘 사이 연관성 없어
우리금융측 “민영화 빨리 됐으면, 지연돼도 불만 말할 수 있는 입장 아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그도 그럴 것이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법이 결정도 나기 전에 한국판 메가뱅크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우리·국민은행 지부와 의장단 회의를 열고 강제 합병을 반대하는 메가뱅크 저지 공동투쟁본부를 발족했다. 앞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가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중 하나인 KB와 우리금융이 합쳐질 경우 자본금 규모로 세계 50위권에 드는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며 합병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메가뱅크는 중복 업무와 점포를 줄이는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사안이었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으로서의 역량보다는 서민금융과 중소기업 대출 위축 등의 폐해가 뚜렷해 비난이 일었던 것이다. 최근 어 내정자는 비난여론을 의식했는지, “향후 2년 동안은 M&A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정부역시 민영화 방안 발표를 미루면서 메가뱅크를 함께 염두 해 뒀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예컨대 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마련했던 공적자금을 극대화시켜 회수해야 될 의무가 있는데,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 있는 지배적 대주주로 알려진 KB금융지주 내정자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니 정부가 방향을 잃고 날짜를 미룬 게 아니냐는 거다.더욱이 정부는 일괄이나 순산 등 매각 방식을 정하지 않고 인수 희망자의 선택에 맡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을 원하면 합병안을 제출하고 일부만 사려면 원하는 지분의 매입 규모와 가격을 제출하면 되는데, 이는 오히려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슬쩍 발을 뺀 모양새라는 지적이다.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때문에 일각에선 어 내정자가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KB금융지주에 공식적으로 취임하게 되는 오는 7월13일 이후에 민영화 방안이 발표 되거나 1, 2년 후에나 우리금융의 민영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30일 정례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빨리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정작 날짜와 최소한의 민영화 방안도 특정하지 않았다. 이에 박성권 우리은행 노조 위원장은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어 내정자가 비난여론을 의식해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공식적인 취임을 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취임 이후에 우리금융관련 합병의사가 바뀔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KB금융지주 관계자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합병 시기를 꼭 2년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KB금융지주의 경영 내실화와 사업 다각화가 이루어진 다음 좋은 매물이 있으면 합병을 해도 한다는 입장”이라며 “만약 그때까지 우리금융이 민영화가 안 된다면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금융위와 KB금융지주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어 내정자가 입장을 바꾼 것과 정부의 민영화 방안이 미뤄진 것에 대해 연관성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우리금융은 메가뱅크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영화 방법으로 메가뱅크보다는 정부 지분을 5% 미만 단위로 잘게 쪼개 파는 ‘완전 분산매각’과 4~5곳의 재무적투자자들에게 5~10%의 지분을 나눠 팔아 ‘과점적 주주그룹을 만드는 방법’ 등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이는 강제 합병을 반대하는 우리·국민은행 메가뱅크 저지 공동투쟁본부가 바라는 민영화 방법(시장을 통한 분산매각)과도 사뭇 비슷해 눈길을 끌고 있다. 결국 정부의 애매한 태도가 우리금융을 진퇴양난에 빠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민영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순 있어도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정부가 알아서 민영화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10년째 민영화가 되기만을 기다렸던 우리금융은 정부가 민영화 방안을 미루면서 또 다시 매각 처분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