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만 기름유출에 몰래 웃는 삼성

심해드릴쉽 규제 강화 따른 수요·가격 상승으로 막대한 수익 예상…국내언론 ‘쉬쉬’ 왜?

2010-07-02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환경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는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태가 삼성중공업에게는 초대형 호재라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삼성에 좋은 소식이라면 뭐든지 발빠르게 전하던 국내언론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는 지난 6월14일 “미국 정부의 해저굴착관련 규제 강화 방침에 따라 석유회사들이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해양유정굴착장비를 새로 구입해야 하게 될 전망”이라는 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 메릴린치는 “현재 가동중인 해양유정굴착장비의 57% 정도가 20년 이상 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단기적으로는 미국 주변해역에서의 굴착작업이 6개월 동안 중단됨에 따른 수요 위축이 예상되지만 관련 규제 강화는 제조사들에게 엄청난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코멘트를 인용해 “오프쇼어 장비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 장비 가격 자체가 상승하는 동시에 기존 노후장비에 대한 대체수요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중, 세계 심해드릴쉽 63% 점유…척당 5~6천억원, 가격 더 오를 듯
1척 값이 56억원으로 입 닦은 ‘태안 기름유출’ 총 피해 추산액과 비슷


해양유정굴착장비는 크게 연해용과 심해용으로 나뉘는데, 척당 3억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연해용 굴착장비는 싱가포르의 케펠(Keppel)이 세계 최대 제조사이지만 연해용보다 훨씬 척당 가격이 비싼 심해용의 경우 삼성중공업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6억달러와 6천억원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심해용 드릴쉽 분야에서 삼성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63%에 달하고, 2000년 이후 건조한 것만 29척에 달한다”며, “선박마다 사양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척당 가격이 5~6억달러 정도”라고 말했다.

5~6억달러, 우리 돈으로 5천~6천억원에 달하는 이 금액은 IOPC(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이 산정한 2007년 12월 발생한 삼성중공업-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이른바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총 피해액과 비슷한 규모이다. 엄청난 자연재해와 어민들의 피해 그리고 2년 반이 넘도록 사태 해결이 안 되면서 4명이 자살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전체 피해액이 고작(?) 삼성중공업이 배 한 척을 건조해서 받는 돈 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삼성은 사고 발생 89일 만에 1000억원의 태안지역 발전기금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태안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이 “1000억원으로 입을 닦으려는 속셈이냐”며 반발함에 따라 아직까지 발전기금은 전혀 지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삼성은 피해배상액을 한정해달라는 내용의 ‘선박책임제한절차 개시’ 요청을 법원에 제출했고, 지난해 3월 이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삼성은 사고일 이후의 법정이자를 합한 56억 3400만여원을 법원에 공탁하는 것으로 이 사안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200억달러+α와 56억원

태안사고를 바라보는 삼성과 우리 정부(사법부를 포함한)의 이러한 태도는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사고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BP(브리티시 페트롤리움)사와 미국정부가 보여준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BP 경영진은 지난 6월16일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4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면담 끝에 200억달러(약 23조원)에 달하는 보상기금을 내놓기로 했고,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오바마가 BP의 팔을 비틀어서 보상약속을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특히 면담 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200억 달러는 보상액의 상한선이 아니며 이 기금조성으로 인해 개인 및 주정부가 법적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BP 경영진은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백악관 앞에서 별도의 사과기자회견을 가졌다. 삼성 측은 태안 사고와 관련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BP는 피해보상 기금 200억 달러와는 별도로 사고 관련 보상금을 청구한 주민들에게 총 1억400만 달러(약 1200억원)을 이미 지급했으며, 6개월간 심해저 석유시추 프로젝트의 동결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시추 기술자들을 위해 1억 달러의 보상기금을 내놓기로 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현지 피해주민에 대한 BP의 보상금 청구수령에서 수표 지급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4일이며 절차가 복잡한 경우에도 보상금 지급까지 최대 7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국회는 사태직후 ‘태안지원특별법’을 만들어 피해배상 확정판결 전이라도 정부가 미리 선급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면서 그 선급금 지급 근거를 ‘국제유류피해보상기금(IOPC)’의 산정에 근거를 두는 치명적 패착을 기록했다.

피해 규모를 최소 5663억원에서 최대 6013억으로 추산한 IOPC의 태안 피해규모 산정은 사고 2년 6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이에 따라 어민과 숙박업소 등 피해지역 주민들에게는 아직까지 한 푼의 선급금도 지급되지 않았고, 벌써 4명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

법원…

이와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역민의 유족 4명은 지난 5월 국가와 삼성중공업,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 등을 상대로 유족에게 각각 5억원씩 총 2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기름유출 사고를 통해 수십 년간 해오던 어업을 할 수 없게 됐고, 배상금마저 받을 길이 막막해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국가는 대량의 원유가 유출된 대형오염사고임에도 재난방지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았고, 48시간 이상 유출을 방치, 방관함으로써 사고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삼성중공업은 해상크레인바지선을 무리하게 운항하던 중 허베이스피리트호에 충돌케 해 기름유출을 하게 한 원인제공자이며, 허베이스피리트는 원유유출속도를 가중케 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소송에서 법원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보인다. 지난해 3월 “피해배상액을 한정해달라”는 삼성의 요구를 들어줬던 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바지선 운항은 “무모한 행위”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의 손을 들어줬던 법원의 판단은 올해 1월 고등법원 판결에서도 유지됐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삼성 관련 사건에서 대법원이 보여온 태도를 생각하면 이러한 판단이 뒤집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