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파동 곳곳에 출렁

상품권 연쇄 거래 중단 땐 1조원 시장 마비

2006-08-25     한종해 기자

“상품권 못받겠다”...상품권 유통업체 매입 중단
발행사 부도 땐 1인 30만원 까지 보상

‘바다이야기’ 파문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시장이 극도로 술렁이고 있다.

폐업하는 게임업소가 급증하고 내년 4월 폐지되는 게임 상품권 유통시장은 사실상 마지 상태에 빠졌다. 선의의 피해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필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상품권 발행업체에는 “내가 가진 상품권이 휴지조각이 되는 게 아니냐”는 문의와 항의의가 하루 종일 빗발쳤다. 경품용 상품권 매입을 중단한 007티켓측은 “이미 며칠 전부터 경품용 상품권 매입을 중단했는데 문의는 끊임없이 들어온다. 사실상 업무 마비 상태”라고 말했다. 일반 상품권을 유통하는 업체들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혹 경품용 상품권이 아닌 일반상품권도 못 쓰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계속 들어올 정도로 시장의 동요가 심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 모 씨는 24일 퇴근 후 교보문고 매장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7권의 책을 구입하면서 평소 모아둔 도서상품권으로 결제하려고 하자 종업원이 “1인당 5만 원 까지만 쓸 수 있다”며 나머지 금액을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지불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김 씨는 “사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가져간 상품권을 모두 사용할 수 없어 다소 당황했다”며 “지금까지 모아 놓은 상품권이 모두 휴지조각이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가 찍어 내는 상품권들이 유가증권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해 가고 있다.

CGV와 교보문고가 24일 1인당 1회 사용 한도를 각각 1만 원과 5만 원으로 제한했으며, 메가 박스도 25일부터 1인당 사용한도를 1만 원으로 제한한다. 이들 회사는 9월부터는 단계적으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도 경품용 상품권 업체와의 거래 중단을 검토 중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얼마 전까지 멀쩡하게 쓰던 상품권을 갑자기 사용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품용 상품권 발행 업체와 가맹점간의 계약이 끊길 경우 1조 원가량의 상품권 유통이 중단돼 내수시장에 큰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가맹점들 왜 상품권 거래 제한하나

국내 최대의 상품권 종합 거래업체 티켓나라()는 지난 23일 오락실 경품용으로 공식 지정된 문화상품권 19종의 매입을 잠정 중단했다.

이 사이트는 ‘스타’, ‘가족사랑’, ‘영화’, ‘교육’, ‘사랑 나눔’, ‘컬쳐랜드’, ‘아바타’, ‘세이브존’, ‘시에스’, ‘포켓머니’ 등 14종의 경품용 상품권을 취급해 왔으나 최근에는 이미 입수된 물량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는데 주력해 왔으며, 액면가의 90~92% 수준으로 매입해 오던 ‘다음’, ‘도서’, ‘인터파크’, 등 대형 업체들의 경품용 문화상품권도 신규 매입을 일시 중단했다.

또 ‘상품권 대란’에 대한 고객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일부 가맹점이 상품권을 받지 않기로 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가맹점들이 계약관계에 있는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는 것은 발행업체들이 하루 수십억 원의 상품권 상환을 요청 받으면서 부도 위기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들이 매출 감소를 감수하면서 상품권 사용 제한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위험 회피에 나선 것이다.

CGV 재무팀의 한 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의 경우 고객에게서 받은 상품권을 모아 뒀다가 월말에 한꺼번에 상환 요청을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수십억 원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거래 제한 배경을 밝혔다.

교보문고 재무팀의 한 관계자도 “바다이야기 파문이 확산되면서 부도 가능성이 있는 상품권을 대량으로 들고 와 책을 구입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가맹 계약이 끝나는 10월 이전에라도 거래를 전면 중단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피해와 경제적 파장

관련법규에 의하면 상품권 부도사태가 빚어지더라도 상품권을 소지한 일반 소비자들은 피해를 일부 보상받을 수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에 대해 보증을 선 서울보증보험이 최종 소비자에 한해 1인당 30만 원까지 보상을 해 주도록 ‘상품권 보증보험 보통 약관’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행성 노란이 있는 상품권 유통총판과 성인오락실 업주는 지급 보증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발행업체로부터 보상받는 방법밖에 없다. 오락실 업주 모임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는 정부의 정책 실패로 피해를 보게 됐다며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4일 서울보증보험 정우동 전무는 금융 감독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품권 발행업체의 상환준비금과 서울보증보험에 제공한 담보금액이 약 4000억 원에 달해 일반 소비자들에 대한 상품권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품권을 보유하고 있는 일반 소비자들은 당장 기존 가맹점에서 상품권 사용이 제한돼 불편을 겪어야 하고 부도가 나면 일일이 서울보증보험 지점을 찾아가 피해 내용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장학민 금융보험팀장은 “가맹점이 상품권의 부도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전 고지 없이 고객의 상품권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의 편의를 감안하지 않은 자사 이기주의적인 행동”이라며 좀 더 차분하고 근본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상품권 업체가 연쇄적으로 부도날 경우 경제전반에도 큰 파장이 우려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초 상품권은 영화, 공연, 도서 등 문화관련 산업의 발전은 물론 소비 전반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며 “일반 상품권까지 거래가 중단될 경우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은성 한림대 경영학과 교수는 “1조 원대 상품권 시장이 전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경기가 하락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경품용’, 조심해라

백화점상품권, 구두상품권, 도서상품권, 공연물상품권, 주유상품권 같은 수십 가지의 ‘일반상품권’은 이번 사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경품용(문화)상품권’은 표면에 ‘경품용’이라는 문구가 분명하게 찍혀 있다. 일부 문화계통 상품권은 서로 비슷한 업종의 가맹점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품권에 ‘경품용’이란 문구가 찍혀 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수십~수백 장의 ‘경품용 상품권ㅇ’을 가지고 있는 일반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보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절차가 약간 까다로워질 가능성은 있다. 19개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중 부도설이 돌 경우 환전소나 가맹점에서 이 상품권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문론 법적으로는 일반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서울보증보험에 지급보증계약이 체결돼 있다. 발행업체가 부도가 날 경우 1인당 30만원 한도 내에서 보상해주는 것이다. 가령 액면가 5000원인 상품권을 200장(100만 원 어치)정도 가지고 있다 해고 가족이나 친구와 나눠 들고 가면 전액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단, 보험금 청구는 신문에 공고되는 채권신고기간(통상적으로 30일 이상)안에 해야 한다. 이때 현금이 급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는 있다.

또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인터파크 관계자는 “경품용 상품권의 유효기간은 발행일로부터 5년이기 때문에, 내년 4월 경품용 상품권 공식폐지 이후에도 사용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전에 가맹점이 경품용 상품권을 거부할 때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경품용 상품권은 발행업체에서는 환불이 안 된다. 현재도 현금화하려면 10%의 수수료를 떼는 환전소에 가야 한다. 앞으로 문 닫는 데가 속출할 수는 있다. 서울보증보험의 곽기헌 홍보팀장은 “일부 환전소에서 경품용 상품권 환전이 잘 안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그러나 일반 소비자는 법적으로 지급보증을 받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바다 이야기 파문, 도미노 현상 일으켜

게임기 시장에도 물결이 미쳤다. 게임기 거래는 거의 중단됐다. 한 달 전 600만 원 이상 주고 산 게임기가 시장에 100만원에도 나오고 있지만 사는 사람은 없다. 게임기 중개업자 정 모 씨는 “일찍 시작한 업주들은 어느 정도 ‘단물’을 빼먹었겠지만 끝물에 시작한 사람들은 도산을 피하기 힘들다. 우리의 경우 기계 값만 최소 4억원을 날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장은 부동산 시장에까지 미친다. 성인오락실 단속이 본격화하면서 사행성 오락실로 쓰이던 상가가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사행성 오락실의 점포 수는 전국적으로 약 1만 5000여개. 대부분 50~100평 정도로 넓고 목 좋은 곳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종로5가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조중현씨는 “대부분 평수가 큰 것들로 임대료가 비싸 건물주들에게 효자 노릇을 했지만 이젠 매물만 나오는 탓에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다”면서 “목 좋은 곳은 억대의 권리금이 오갔지만 이제 권리금은 생각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박을 꿈꾸며 얽어 놓은 보증의 고리 때문에 연쇄부도 사태도 우려된다. 올해 초 인테리어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강남에 성인오락실을 차린 김 모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까지 성인오락실 인테리어를 담당해 왔던 그는 ‘바다이야기’가 ‘대박’이란 소리를 듣고 뒤늦게 뛰어들었다. 모아둔 돈과 퇴직금에다 친구의 도움까지 받아 8억여 원을 들여 기계 90대 규모의 성인오락실을 차렸다. 그러나 4개월 만에 ‘바다이야기’사건이 터져 생돈을 모두 날릴 판이다. 김씨는 “나와 우리가족, 도움을 준 친구 모두 망하고 말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6월 서울 금천 구에서 ‘바다이야기’ 오락실을 연 노모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 오락기를 모두 팔고 문을 닫았다. 장시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이다. 노씨는 “4억원을 들여 오락실 문을 열었는데 장사도 별로 안 되고 성인오락실이 잘못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폐업을 했다. 하지만 회수한 돈은 겨우 수천만 원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노씨는 “성인오락실로 돈을 버는 것은 폭력조직과 연계된 대형 오락실이나 게임 개발업자뿐”이라고 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황교욱 민원담당관은 “최근 사행성 게임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의 상담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이 중에는 게임중독자 외에 게임장 업주가 많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에게 보증을 서 주거나 돈을 빌려 준 ‘2차 피해자’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한종해기자<han1028@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