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우리나라는 만든 게 아니라 되찾은 것이다
反헌법세력이 떠드는 反대한민국…건국절 논란 유감
[매일일보]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1904년 2월의 ‘한일의정서’와 이듬해 을사늑약에서 시작된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수탈 과정이 마무리된 날이 바로 ‘한일합병조약’ 발표일인 1910년 8월 29일이었다. 이날 이후 세계에서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사라졌다.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 명의의 조칙 형태로 발표된 ‘한일병합조약’은 문서에 이미 퇴위한 고종의 옥새가 찍혀있었고, 순종 본인의 사인 날인도 없어서 조약으로서 법적 요건이 성립되지 않은 명백한 무효였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다.
9년 뒤인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계기로 그해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그리고 1948년 제헌국회는 개원식 축사에서 “민국 연호를 기미년에서 기산하여 ‘대한민국 30년’에 정부 수립이 이루어졌다”고 명시했다. 같은해 9월 1일 발간된 대한민국 관보 1호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표기해 건국시점을 임시정부 수립으로 규정했다.
이렇듯 명백해 보이는 ‘건국’ 시점을 놓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실랑이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제헌국회와 초대 이승만 행정부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에서 시작됐다’는 선언에 대해 ‘건국절’ 제정론자들은 “국제법에서 통설하는 영토, 주권, 국민 등 국가의 3요소를 갖추진 못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임시정부 수립은 ‘임신’이고 건국 이후 정부수립일이 ‘생일’이며 생일이 건국이라는 소리도 한다.
영토와 국민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주권’만 놓고 보자면 이들의 주장은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 일체의 ‘효력’을 인정하겠다는 소리다. 엄마 뱃속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은 태아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도 없다는 논리이다.
참고로 미국의 건국일인 ‘독립기념일’은 독립전쟁에 이겨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은 날이 아닌 영국의 식민 13개주 대표가 모여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우리로 치면 3·1절이 독립기념일인 셈이다.
‘건국절’ 논란이 커지는 이유 중에 하나로 가장 열렬한 건국절 제정론자들의 사상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06년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기고로 논쟁을 촉발한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알려진 이 교수는 이후 뉴라이트의 ‘교과서포럼’ 등의 활동을 하며 ‘김구는 테러리스트’라거나 ‘4·19를 재평가하자’(지금은 과대평가됐다는 의미)는 등의 반헌법적 발언을 뇌까려왔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구절로 시작되는데 독립운동과 반독재투쟁 정신을 국가의 근간으로 규정한 헌법 부정이 이영훈 교수의 소신인 셈이다.
한편 건국절 논쟁을 이야기할 때 헌법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부분은 ‘법통’과 ‘계승’이겠지만 사실 핵심 포인트는 그 앞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은 국가의 근간이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 사상과 함께 단군왕검 이후 반만년에 걸쳐 이어져온 단일국가로서의 정통성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이런 인식은 대한민국과 여타의 2차 대전 후 ‘신생독립국’들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이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경우 영국의 200년에 가까운 지배에 앞서 무굴제국이 그 자리에 존재하기는 했지만 ‘국가’로서의 인식은 식민지 시기 독립운동을 통해 형성되었다.
대부분의 2차 대전 이후 신생독립국들은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운동과정을 통해 ‘건국’을 한 것이 맞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독립은 ‘국권회복’ 즉 광복이지 엄밀히 말해 ‘건국’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임시정부는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제정하면서 대한국민의 국가가 반만년 전 고조선에서 시작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인식은 1948년 9월 25일 제정된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단군기원(檀君紀元), 즉 단기를 국가의 공식 연호로 법제화(지금은 폐지)하면서 그대로 이어졌다.
여러 국명과 수차례의 분단을 거치면서 수많은 정부가 들어서고 사라져왔지만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은 단군 이후 하나로 이어져왔다는 것이 임시정부를 필두로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공통적 인식이기도 하다.
고려가 원나라에 패배해 부마국이 되고, 조선이 청나라에 패배해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으며, 대한제국이 일제의 겁박과 협잡에 당해 ‘국권’을 잃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되찾았던 굴욕의 역사가 있지만 나라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건국 시점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규정은 조선족과 고려인 등 재외동포와 북한 주민의 헌법적 지위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국적 자동부여 여부, 독도 영유권과 백두산정계비, 간도 등 국경 문제 등과 연계되어있는 현실적 문제이다.
집권중인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국제적 외교적으로 민감한 주제다 보니 얼버무리고 외면하고 싶은 욕구가 클 수밖에 없는 문제지만 국가대사라는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결코 대충 봉합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닌 만큼 논쟁이 시작된 이상 ‘매듭’이 필요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