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딸들 '차기 총수로 급부상'

경영승계 전유물 부자상속에서 '여성상위 시대로'

2006-08-29     매일일보
경영승계의 전유물로 생각해왔던 부자상속에 “천만의 말씀”이라고 제기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예전에는 주요 공직이나 CEO 자리에 ‘여성’이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고 기존의 위계질서상 납득할 수 없었던 고정관념도 강했다.그러나 시대는 흘러 이제 ‘여성상위’의 기조로 가고 있으며 향후에는 여성들이 더 살기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CEO 등에 ‘여성’이라는 두 글자가 붙는 것이 이제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여성이 본래 가진 매력도 있지만 평온과 아늑함의 상징성이 기업경영에 긍정적 파장을 줄 것”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영에 솔선하는 재벌가 딸들은 이 시대에 뉴프론티어인 셈이다. 여성이 가업을 이어받는 경우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들이 경영에 관심없어 딸이 대신 이어받는 경우와 자식이 딸 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이어받는 경우 등 여러가지다.때로는 딸이 아들 보다 낫다는 측면에서 경영수업을 받도록 유도하는 사례도 있고 아예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자리까지 올라간 재벌가 딸들도 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씨는 지난해 현대상선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 불과 1년 사이 대리로 승진했다가 지난해 7월 과장으로, 올해 3월에는 현대U&I 상무로 또다시 승진했다. 이씨는 현재 현 회장의 수행비서로 일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딸인 정유경씨는 그룹의 주력사업인 호텔부문을 총괄하며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정씨는 현재 조선호텔의 상무로 재직중이다.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큰딸인 은정씨는 애경 마케팅지원부문에서 상무를 맡으며 후계의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그룹 이화경 부회장도 평사원에서 출발한 대표적 케이스다. 이 부회장은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둘째딸로 75년 동양제과 구매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26년 만인 2000년에야 비로소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2001년 오리온그룹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대표로 올라서면서 오리온 핵심사업인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그 후 이 부회장은 케이블TV 온미디어를 업계 1위로 만드는 등 사업수완의 진면목을 발휘하기도 했다. 2002년에 설립한 영화투자배급사 쇼박스는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등 히트작을 내면서 한국영화 배급점유율 3위, 관객동원 1위 배급사로 성장시켰다. 이 부회장과 유사 업종에서 그룹의 여성총수로 떠오른 사례는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다.이미경 부회장은 이병철 고 삼성그룹 창업주 장손녀로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진출에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이화경 부 회장과 비슷하다.이미경 부회장은 지난 95년 이사로 입사해 10년만에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재 이미경 부회장이 엔터테인먼트와 CGV, CJ미디어, CJ아메리카를 총괄하고 있지만 그룹차원에서는 이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의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업계 관계자들은 "외형면에서는 CJ가 앞서고 있지만 내실적인 면은 오리온이 CJ 위에 있다"고 평가했다.이화경 부회장의 경우는 남편을 앞세우고 자신이 뒤에서 보좌하는 형태를 취했다. 반대로 여성 자신이 앞에 나서고 남편이 지원하는 형태를 취한 사례로는 피죤의 이주연 관리부문장을 들 수 있다. 이 부문장의 경우는 아들이 경영에 관심이 없어 딸이 대신 이어받은 사례이기도 하다. 피죤의 이윤재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뒀다. 이 부문장의 남동생인 이정준씨는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타우슨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종신재직권을 취득함에 따라 향후 경영 참여는 일체 없을 것이라는 후문이 떠돌고 있다.결국 이 교수의 누나인 이 부문장이 기업을 끌고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인 셈이다.미술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던 이 부문장은 평소 미대를 꿈꿔 왔지만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결국 서강대 영문과로 진학했다. 대학졸업 후에는 그동안 못다 이룬 미술공부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96년에 귀국해 이 부분장은 피죤 출시 제품의 모든 패키지 디자인을 총괄하는 디자인실장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 후 이 부문장은 재무를 비롯해 인사, 총무 등 관리 전분야에 걸쳐 실무경험을 두루 쌓았다. 그 다음 자식이 모두 딸이어서 어쩔 수 없이 딸에게 경영을 넘겨준 사례로는 보령그룹 김은선 부회장이 대표적 케이스다.보령그룹의 창업자인 김승호 회장은 아들없이 딸만 넷이다.김 부회장은 장녀로 태어나 아버지의 경영권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현재 아버지인 김 회장은 직함만 갖고 있을 뿐 최종 결재권은 김 부회장에게 넘겨준 것으로 전해졌다.지분면에서도 김 부회장은 8.9%로 김 회장이 갖고 있는 0.13% 보다 8.77% 더 많다. 실제적 오너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업계 일각에서는 내년 창립50주년 때 아버지가 2선으로 물러나고 김 부회장이 그룹의 총책임을 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회장이 장녀를 후계자로 지목한 계기는 보령그룹의 21세기 비전을 만들 때 향후 5개년 계획을 담은 ‘NEO21’을 완성하면서 부터이다. 김 부회장은 아버지에게 보령그룹을 향후 ‘토털헬스케어그룹’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계열사별로 전문화 작업에 돌입할 것을 제안했다.보령은 건강식품을 중심으로 다루고 보령바이오파마는 백신 부문에, 보령제약은 제약업에만 몰두하는 식으로 전문화를 강조했다. 그룹 계열사를 요모조모 정리하며 그룹의 발전을 위한 창의적 제안과 실행력에 아버지는 장녀에게 합격점을 준 셈이다.‘NEO21’의 5개년 계획은 지난해 끝이 났고 올해부터는 ‘이노BR(혁신 보령)’ 5개년 계획을 새로 시작했다. 매출액 1조원을 목표로 2009년까지 기업의 고공행진을 단행했다. 지난 5개년 동안 갈고 닦은 인프라가 매출확대에 근간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 속에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김 부회장은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82년 보령제약에 입사해 전 부서를 두루 거쳤다. 2000년에 보령제약 회장실 사장을 거쳐 2001년에는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보령그룹 후계자임을 만방에 알렸다.보령그룹 김 회장의 막내딸 은정씨는 가톨릭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 94년에 보령제약에 입사했다. 97년 보령메디앙스로 자리를 옮겨 2005년초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가 올초에 부사장으로 또다시 승진했다.‘청풍무구’로 유명한 공기청정기업체 청풍의 최윤정 부회장도 딸 뿐인 집안에서 가업을 이어받은 사례중 하나이다. 청풍의 최진순 회장은 딸만 넷을 뒀다. 네 자매 모두 대학졸업후 청풍에 입사했지만 셋째 딸만 특히 일에 의욕을 보였고 실력도 인정받아 경영을 물려준 것으로 전해졌다.건설업계에도 딸의 경영승계가 나타나고 있다. 울트라건설의 강현정 부사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울트라건설은 울트라콘을 운영하던 재미교포 사업가 고 강석환씨가 유원건설을 인수하며 이름을 바꾼 업체이다.현정씨는 미국 울트라콘 대표로 활동했는데 2003년 강석환 회장이 작고하면서 울트라 건설 기획조정실장으로 들어왔다.

지난 3월 현정씨는 부사장 자리에 오르며 후계 구도를 가시화했고 강 회장의 뒤를 이은 부인 박경자씨를 보좌해 가업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성 기자 <매일일보닷컴 제휴사=토요경제>

◀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