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發 사법 3륜 갈등…'점입가경' '결자해지' 기로
2007-09-21 【서울=뉴시스】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검찰과 변호사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 법원, 검찰, 변호사 등 '법조 3륜'의 알력이 심화되고 있다. 법원은 사법개혁의 주요 축인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것이라는 입장인 반면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내용과 표현 양면에서 모두 상대를 부정하고 법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변호사회관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어 대법원장 사퇴 촉구라는 강경 입장을 표명했다. 국가 기관인 검찰도 대법원을 상대로 공식 유감 입장 표명에 가세하면서 법조계는 물러설 수 없는 대립의 형국을 띠고 있다. 어느 한쪽의 후퇴나 양해, 또는 사과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변협, 검찰 이례적 공식 대응 이날 아침까지만해도 변협 이사회가 열린 서초동 서울 변호사회관 주변에는 사태의 확산을 경계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긴장감 속에 열린 회의는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된 것은 물론, 취재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기까지 하면서 법원과 정면 대결은 피하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발표된 성명은 대법원장 사퇴 촉구라는 최강수였다. 변협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사법부를 책임지고 이끌 자격과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이래 계속되어 온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법 전체의 불신을 초래해 온데 대해 책임을 지고 즉각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검찰도 총장이 직접 나서 유감을 표명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법질서 확립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기관인 검찰에 대해 그 기능과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 뜻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질 수도 있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전국 검사와 검찰 직원들에게 발송된 지휘서신에서는 이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반박의 내용이 담겨 있어 검찰 내부의 심각한 분위기를 반영했다. ▲오해가 아닌 잠복된 갈등의 표현 이 대법원장의 발언은 내용뿐 아니라 그 표현에 있어서도 파격성을 띠고 있다.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재판정에서 검사들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은 조서…" 등 감정적인 언사가 이어졌다. 또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상대방을 속이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 "법원이 몸통이고 검찰이나 변호사는 바퀴다" 등도 상대를 폄하하는 표현이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이 같은 거친 언사를 사용한 배경에는 검찰과 법원의 해묵은 갈등이 잠복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법원의 검찰에 대한 불만은 최근 법조 비리 사건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현직 고법 부장판사의 구속이라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표적수사라는 반발이 제기됐다. 이후 압수, 구속 영장에 대한 엄격성과 판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공판중심주의 흐름 등에 따라 검찰과 공공연한 갈등관계가 계속됐다. 이 같은 감정적 언사는 검찰과 법원 건물 높이를 놓고 판사들이 대법원장에게 하소연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대법원장은 지방법원 순시 중 "전국 법원을 다니니까 법원보다도 검찰청사가 한층이라도 높다. 몇센티라도. 꼭 검찰이 저런다고 판사들이나 직원들이 속상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을 제대로 하면 검찰청 건물이 좀 높으면 어떠냐. 수사기록을 확인하는 일밖에 안하니까 수사 검사가 법원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말해 이 대법원장 역시 양 기관의 감정적 대립을 인정했다. ▲공판중심주의 둘러싼 法-檢-辯 샅바싸움.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되면 검찰의 형사조서와 변호인의 자료보다 법정에서 진행되는 검사, 변호사 , 피고인의 진술이 중요하다. 판사는 선입관 없이 판단하기 위해 되도록 자료를 미리 읽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 공판에 임한다. 현재는 판사가 자료를 미리 숙지한 뒤 공판은 속전속결로 진행하기 때문에 판사의 역할은 지극히 소극적이다. 이 대법원장이 "수사자료를 던져버려라", "변호사는 속이려고 한다"는 표현은 이 같은 자료 중심의 공판 관행과 소극적인 판사의 태도를 질타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도 이날 입장 발표를 통해 이 대법원장의 훈시는 "법정에서 진술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종전의 관행에서 벗어나는 어려운 길임을 잘 알고 있다. 멈추지 않고 의연하게 저희들의 길을 갈것"이라고 말해 개혁을 강조했다. 반면, 대검 한 간부는 "인권보장과 사법개혁도 좋지만 수사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며 사법개혁을 강조하는 최근 법원의 움직임에 대해 불만을 표명했다. 이 간부는 "영장을 받아야 범죄를 입증할 수 있고 입증돼야 기소가 가능하며 그래야 재판이 열리는 것 아니냐"며 법원의 원칙주의가 수사 자체를 막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돌출발언 아닌 충격요법? 이 대법원장의 잇단 강경 발언은 법조비리로 침체된 법원의 내부 단속을 위한 것, 평소 지론을 편 것, 법조계 전반에 사법개혁 동참을 요구한 것 등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대법원은 사법부 구성원들과 가진 비공개적인 모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대법원장은 발언이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13일 광주고지법 방문 때 이 대법원장은 "기자들이 자꾸 물어보는데 (발언내용이 언론에) 나가도 좋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가장 구체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검찰이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전국 검사와 검찰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밀실 수사, 공판에 안일한 검사, 수사기록 무시 등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과거와 달리 검찰은 이같은 관행을 일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시각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법조계의 이번 갈등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느 수준에서 입장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그 전개양상이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