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대학 가면 애인 생긴다’는 거짓말
중고등학교의 남녀 분리교육 금지를 제안한다
2017-10-19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서 다른 배경에서 살고 있는 상대와 소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사실 어쩌면 불가능일 수도 있다. 배경지식이 다르고 각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들이 다르면 똑같은 말을 들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서로를 백안시하려는 풍조는 밑바닥에 다 있겠지만 한국사회의 분열 정도와 상황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좀 더 다층적이고 심각해 보인다. 한국에 비해 훨씬 이성교제에 개방적인 서구사회에서도 옛날부터 남녀 간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다룬 책들이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걸 보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반면 이성에 대한 갈망은 모든 ‘유성생식 생물’이 날 때부터 타고나는 본능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소통에 도전하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다.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미성년자가 이 본능을 충족시키려 시도하는 것은 ‘일탈’로 치부된다.아니, 이런 처우는 수험생이나 연예인 등 특정 계층에 대해서는 법적 성년이 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20~30대 연예인의 연애에 대해 미디어가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또 대중이 기사 댓글이나 SNS를 통해 비난하는 것이 결코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대부분의 한국인들은 2차 성징이 시작되는 10대 초반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긴 청소년기를 남중 남고 여중 여고 혹은 남녀공학을 사칭한 남녀분반 학교에서 보낸다. 여기에는 자녀가 혹시나 이성교제를 할까봐, 그래서 학업에 지장을 줄까 걱정하는 부모들의 지지가 따른다.중·고등학생으로 시선을 다시 좁혀보면, ‘대학가면 애인 생긴다’는 거짓말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로 본능을 억누르는 이 사회의 교육시스템은 청소년기의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리비도를 학업이나 운동으로 ‘승화’하라고 강요한다.그러나 이성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죄악시하고 금욕(?)을 미덕인양 치부하다보니 이성과 대화하는 법조차 훈련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다 법적·경제적·사회적으로 ‘어른’이 된 이후에는 굳어버린 자아 때문에 이성에게 다가서고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기가 더 어렵다.젊은 여성의 소소한 친절을 자신에 대한 성적 호감 표시로 오해해서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이른바 ‘개저씨’들이 속출하는 것 역시 이성의 언어를 이해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큰 이유라고 본다.‘개저씨’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한국사회의 ‘어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연애에 대한 욕구 자체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10여년 전부터 일본에서 ‘건어물녀’와 ‘초식남’이라 불리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이들 중 상당수는 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득 안은 채 영문 모를 불만과 분노 속에서 이성을 과도하게 동경해서 신격화하거나 너무 두려워해서 악마화한 나머지 절대 채워질 수 없는 공허감을 연예인 혹은 가상세계의 캐릭터를 통해서 위로받는다.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혹은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결혼을 해도 2세 낳기를 두려워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 사회가 그동안 방치해온 비틀린 신분상승 욕망의 결과물이다.이렇게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사회를 정상화하는 첫 걸음은 중·고등학교에서의 남녀 분리교육 폐지 혹은 더 나아가 ‘전면적 금지’이다.국가가 나서서 10대 때부터 이성을 만나 대화하고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는 연습을 적극적으로 시켜야한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