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나 괜찮아요?”
당의장직 100일, ‘변신’이냐 ‘변절’이냐 논란의 중심에…킹이냐 킹메이커냐는 궁금증도 증폭
2006-09-25 최봉석 기자
뉴딜정책, 리더십 모두 비판의 대상
설상가상으로 김근태 의장의 리더십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국현안에 대한 미적지근한 대처로 당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도력에 상처를 입은 셈이다.‘김근태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위기설’의 핵심을 가혹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보스’감은 아니라는 것이다. 완곡하게 표현하면, 향후 대선정국에서 열린우리당 내 유력 대선 주자로서 지위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뜻이기도 하다.여당의 잠재적인 대선 주자로 꼽히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지난 7월 말 당으로 복귀한 점도, 다음 달 초쯤 정동영 전 의장이 독일에서 귀국할 예정이라는 점도 이 같은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그만큼 김근태 의장의 ‘입지’ 문제는 급박하고 시급한 과제로 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사정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김 의장은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근태 의장은 의장 취임 100일째를 맞은 지난 18일,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같다”며 “거친 바다를 넘어 새로운 목적지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음을 모아 전진하면 정권재창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던졌다.정동영 전 의장이 5.31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일각의 반대 목소리에 불구하고 지난 6월9일 당의 ‘수장’이 된 뒤, ‘의장 취임 100일’을 맞이해 그가 스스로 내린 평가다. ‘그럭저럭 잘했다’는 것이다.취임 이후부터 당 의장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도 없었던 열린우리당의 상황에서 김 의장의 리더십이 계속 상처를 입은 것을 감안하면 미묘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물론, 김 의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버팀목이 당 내부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전 당의장은 최근 김 의장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 여당 의원들을 나무랐다. 우리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데는 당의장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지 않는 의원들에게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비상대책위원회에 있으면서 지켜본 지난 100일은 김근태 당의장의 외로운 싸움이었다”고 말하며 김 의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문희상 전 당의장의 표현대로 따지자면, 김근태 당의장은 꼬박 100일간 ‘무인도’에 홀로 서있던 셈이다. 군인이라고 비유한다면 ‘고난의 행군길’을 걸어온 것인데, 이런 까닭에 김 의장의 당 내에서 위치는 현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개혁주의자 김근태, 변신이냐 변절이냐
왜 김 의장의 명성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흠집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당내 ‘개혁주의자’인 그가 ‘변신’을 시도했는데, 이를 ‘변절’로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뉴딜’ 정책이 이 같은 경우다. 재계의 투자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이 정책은 재벌중심 성장 전략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자총악제한제도 폐지, 비리 경제인 사면 등과 같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지향하는 정책(로드맵)과는 거리가 꽤 멀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목소리와 같은 실정이다.이 때문에 재계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인 노동단체 및 시민단체 등은 불만을 토로했다. 김 의장은 최근 참여연대를 방문해 ‘뉴딜’과 관련해 협력을 요청했으나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노동계의 반응도 차갑긴 마찬가지다. 암초가 곳곳에 놓여있는 셈이다. 열린우리당측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김 의장이 혼자 뛰고 있다”고 표현했다. 김현미 의원은 “뉴딜은 의원들 간 공감대를 갖고 추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장의 ‘고집’은 계속될 것을 보인다. 뉴딜정책을 완성하기 위해 올 연말까지 노동계에 이어 시민?사회단체, 정부 부처와 접촉을 시도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9일 그는 취임 후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뉴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근태 의장은 ‘개혁주의자’에서 ‘실용주의자’로 탈바꿈했다.그의 행보가 ‘변절’로 해석되는 다른 이유는 그가 만들었던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는 박정희 정권의 ‘청와대 수출진흥회의’를 모델로 삼았다. 위원회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같은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이를 두고 ‘재벌개혁 포기 선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재계는 ‘성과물이 나왔다’고 평가했지만, 결국 두 달 만에 위원회의 활동은 중단됐다. 서민경제 활성화라는 ‘화두’는 좋았지만 ‘결과물’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그의 흠집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개혁성향의 의원들로부터도, 반개혁성향의 세력으로부터도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게 요즘 김 의장의 모습이다.사면초가 김근태, 정치인생 흔들?
한 예로 지난 8일 김 의장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의원들을 공개경고했다. 이들은 “지도부가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느냐”고 반발했는데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참여한 13명 의원(김태홍.강창일.유기홍.유선호 등) 가운데 상당수가 김 의장 계보다. 당의 중도성향 의원모임인 ‘희망21’을 주축으로 한 의원들은 한나라당측의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김 의장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당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취임 초기인 지난 6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사실, 김근태 의장은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정치인생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는 정치전문가들이 의외로 많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김 의장 쪽이 될 수밖에 없다. 물에 빠진 지푸라기를 잡는 일은 그가 ‘당의장’이라는 중책을 일단 계속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의장직을 계속 맡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이는 대권주자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가장 큰 장애요인은 김근태 의장과 청와대와의 냉랭한 관계다. 양쪽은 이미 대립각을 형성해버렸다. 예전처럼 살가운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김근태 의장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 의장의 사이는 시쳇말로 ‘나쁘다’. 지난 달 6일 당.정.청 청와대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출총제 폐지 등 그런 방향이 우리의 정체성과 맞느냐”고 면박을 줬다. 두 사람 사이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 흔들어 잘된 사람 못봤다”고 말하자, 김 의장은 “민심이 현 정부를 떠났다. 대통령도 변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대선후보를 당 바깥에서 영입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외부선장론’에 대해 딴지를 건 사람도 다름 아닌 김 의장이다. 김 의장은 지난 12일 “우리당 내에도 유능한 리더십이 있다”면서 “외부에서 선장이 승선할 리가 없다”고 대통령을 공격했다.노 대통령과 대립각…결별하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와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아파트 원가 공개는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고 말하자, 김 의장은 “계급장을 떼고 논의하자”며 극단적인 의견충돌 현상도 보인 일은 유명한 일화에 속한다. 정치권이 김 의장은 노 대통령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이 때문이다.김근태 의장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은 그의 지지도가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CBS라디오와 공동으로 실시한 주간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9월11~12일)에서 김 의원의 지지도는 1.2%를 기록했다. 5%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대권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8.0%의 지지율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4.6%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열린우리당의 내부 속사정을 잘 알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동영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근태”라고 말했다.이런 이유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당위기설과 함께 더 이상 김근태 체제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김 의장이 목놓아 외치는 ‘뉴딜’이 힘을 받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경우, 김 의장의 정치 생명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정가에서는 ‘10월 김근태 위기설’을 내놓고 있다. 김 의장이 당 의장직에서 물러나거나, 대권후보를 포기할 것이라는 게 정가 사람들이 전하는 위기설의 기본구도다.이런 상황에서 김근태 의장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무엇일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단기적인 방편으로 그가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일단 분석하고 있다. 뉴딜정책과 같이 청와대 즉,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형성하면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두각시키고 몸값을 올려서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참여정부와 굿바이, 대권후보로 재기할까?
‘진보’와 ‘좌파’에 가까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 치면서 국민들이 완강히 저항하고 있는만큼,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취하는 입장과 반대노선을 걸으며 대권후보로 나서는 ‘봄날’을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차별화 전략이 김 의장이 원하는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다. 그가 내세운 뉴딜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은 현재 청와대와 여권, 일부 정부 부처에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때문에 ‘킹’으로 나서지 못할 경우 ‘킹메이커’로 나설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5%의 지지율이 나오지 않을 경우 대중적 정치인이 아니’라는 말이 정가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것처럼, 김근태 의장이 킹메이커로 앞장서 경쟁력이 있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근태 의장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의장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있을 때 민주당 경선에서 “권 전 고문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고백성사를 해 당내에서 미운털이 박힌 적이 있다. 국민경선 과정에서는 이른바 ‘고백성사’를 함으로써 양심적인 모습을 통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했으나 파장이 너무 커 저조한 득표를 기록, 중도에 경선후보를 사퇴하기도 했다.2002년 대선 당시 ‘생채기’를 남겼던 김근태 의장이 2006년에도 또다시 생채기로 인해 시련을 겪고 있다. 하지만 20002년에 그냥 주저앉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기지개를 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2년 당시 “5년 후에는 김근태”라는 공식이 형성된 적도 있었다. 그 5년 후가 얼마 남지 않았다. 김근태 의장은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닷컴/www.sisaseoul.com/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