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현대사회의 맹모삼천지교?
[매일일보] 고려 말 문신인 이조년은 “이화(梨花)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라 시작되는 다정가라는 시조를 남겼다. 다정가는 고려 말 어려운 사회 환경의 서정이 담겨져 늙음에 대한 한탄이나 봄날에 느낄 수 있는 청초하고 애상적인 정서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음을 나타냈다.
우리 선조들은 시를 짓거나 시조를 읊을 때에 이화(배꽃)를 주제로 한 글들을 많이 남겼다. 이화는 화창한 봄날 달빛 아래 은은히 빛나는 결백한 자태와 청초한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계절에 대해 서정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이 좋아했고 구한말 왕실의 상징이기도 했던 이화라는 단어가 서양의 한 여선교사의 뇌리를 스쳤는지도 모른다. 1886년 미국의 여선교사인 스크랜튼 부인은 구한말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여성을 위한 학교의 요람이 된 이화학당이다.
아울러 이화는 여성의 순결성과 명랑성, 결백성 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에 걸맞게 이화학당은 한국의 여성교육의 효시가 돼 유관순 열사 등 수 많은 여성 지도자를 육성해 국가와 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해 오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오고 있는 교육의 전당에서 온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리는 학창시절 맹모삼천지교를 배워 왔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훈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로 자식을 훌륭하게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거나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중국의 맹자 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신사임당 같은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신사임당은 올바른 자녀 훈육을 통해 율곡 이이와 같은 훌륭한 대학자를 길러 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정보화와 문화화에 따른 윤리의식의 타락, 물질주의 팽배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 핵가족화에 따른 가정교육의 기능약화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미덕보다는 자기자식만을 과잉보호하려는 부모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표현된 지나친 과잉보호는 비뚤어진 사고를 갖게 하고 버릇없는 자녀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이 같은 지나친 과잉보호는 자식을 위한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일부 부모들의 일탈된 교육열은 결국 자녀들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품성과 지혜 그리고 분별력과 자제력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자녀들이 참다운 사회인으로 육성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확립된 기성세대가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가정에서 부모의 교육적 권위가 회복되어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이고 윤리관이 무언지를 다시한번 살펴서 참된 가정교육을 실현함으로써 자녀들이 가정에서 보고 느끼면서 배운 사랑이나 고마운 마음이 다양한 사회적 관계로까지 승화될 수 있도록 살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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