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순실의 시대 속 김영란법 존재 이유 없다
2016-11-02 황동진 기자
[매일일보] 대한민국이 개판 오분전이다. 선거철도 아닌데 삼삼오오 모이기라도 하면 ‘최순실’이란 이름 석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핏대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야말로 ‘순실의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며칠 전 더치페이(Dutch pay)를 약속하고 만난 A대기업 홍보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이 기업은 현재 뜨거운 감자인 K스포츠·미르 재단에 거액의 기부금을 낸 것으로 드러나면서 구설에 올라 있다.“A기업이 재단에 수십억 기부금을 냈다고 알려졌는데, 이건 김영란법에 적용 됩니까?”돌아온 대답은 미적지근했다. “글쎄요.” 일단 재단과 기업 간 ‘기부 명목’의 거래이므로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마련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만, 기부를 한 기업이 특정 대가를 바라고 낸 것이라면 ‘포괄적 뇌물죄’ 등에 적용될 수도 있다고 했다.참 아리송한 법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 속속 드러나는 문제의 재단에 연루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원수(元首)와 그 주변을 둘러싼 충직한(?) 공원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어찌 법전에도 없는 ‘포괄적 뇌물죄’는 적용될 수도 있고, 김영란법은 적용이 안 되는 것일까.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법 전문가가 아니니 관련법 적용 여부는 사정기관에서 할 터이지만, 분명히 이 정권에서의 김영란법 탄생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공통분모를 도출했다.현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창조경제’를 외쳤다.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어 내야만이 창조 경제를 이룰 수 있다’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명제를 제시했다.하지만 집권 4년 동안 세월호 사태 등 가슴 먹먹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단초를 제공한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시키지는 못했다.이리 해도 저리 해도 안 돼 결국 탄생한 게 김영란법인 데, 이 법이야말로 순실 시대에서의 지켜지지 못할 약속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싶다.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경영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에 참여한 기업 절반 이상이 이 법에 대한 수정 및 보완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기업들이 볼멘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듯하다. 법을 수호하고 공명정대하게 적용해야 할 원수와 주변 인사들은 한 입으로 두말을 하고 있으니 어느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이 정도면 순실 시대에서의 김영란법은 존재 이유가 없다. 국가 원수를 비롯해 최고위 공무원들조차 지키지 않는 법이다. 그것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잣대도 모호한 법을 고수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고통이다.그러나 순실 시대에 부정한 짓을 한 일부 공직자와 일부 대기업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김영란법이 아니어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