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휴가 소송 '금융권 눈치보기 방해공작'
기업 "여직원 개개인 상대로 소송 취하 압력"파문
우리투자증권 외 17개 회사, 5천여명 소송 1천억 규모
사무금융연맹 "돈이 목적 아닌, 여성 노동권 개선 요구"
금융회사들 '직원 개개인 상대로 치밀한 방해공작'
"법도 있고 판례도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은 없다. 문제는 일부 기업에서 여직원 개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취하할 것을 종용하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재벌기업 산하 금융사들의 경우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게 되면 계열사 전체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소송액 산정에 필요한 미사용 생리휴가 일수와, 통상임금 등 해당 자료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금융계에 종사하고 있는 한 여직원에 따르면 "집단으로 소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참여를 하고 있지만 주위의 눈치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면서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소송에서 빠지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고 불편한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처럼 금융사들이 이번 소송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소송으로 인한 지급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은행, 증권사들의 경우 씨티은행에 비해 수당 지급 부담이 훨씬 커 씨티은행이 수당지급 후 제기한 항소심 결과와 우리투자증권 여직원들이 제기한 소송 결과에 주목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연맹 "저출산 막으려면 여성 노동권 보장해야"
생리휴가 근로수당은 이 법으로 정해진 유급 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때 지급하는 수당이었는데,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2004년 7월부터는 유급에서 무급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41개 증권사 중 12개사 여직원의 지난해 생리휴가 사용비율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사와 비슷한 근무여건을 가진 시중은행의 경우 생리휴가 사용비율이 0%인 곳은 한 곳도 없었으며, 씨티은행, 외환은행 등은 사용비율이 40%를 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6월 씨티은행과 합병한 옛 한미은행 노조에서 은행측이 2002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2년 동안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낸 것.
이에 대해 법원은 올해 5월 18일 1심 판결을 통해 은행이 직원들에게 총 18억7천만원의 금액을 지급하라는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씨티은행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금융계 전반에 생리휴가 수당에 대한 요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지난 4일 우리투자증권 여직원 743명은 "노동 조합과 회사 측이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여직원들이 사용하지 않은 유급생리휴가에 대한 근로수당을 지급하라" 며 서울중앙지법에 임금지급청구소송을 냈다.
여직원들은 소장에서 "우리투자증권으로 합병, 변경되기 전 엘지투자증권은 엘지투자증권 노동조합과, 우리증권은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과 여직원들에게 유급생리휴가를 주도록 각각 단체협약을 맺었다"며 "이 협약에 따라 여성조합원이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근무한 경우에는 생리휴가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에 대해서도 수당 지급을 청구해 주목된다. 씨티은행 노조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2004년 6월까지를 수당 청구기간으로 지정했다.
특히 사무금융연맹은 일부 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단체협약 내용에 아직 생리휴가가 유급제로 유지되는 곳들이 있어 법 개정 이후 지급되지 않은 수당에 대해서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사무금융연맹 김 실장은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에도 생리휴가가 명시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여직원들이 이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그렇다면 당연히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임금 채권"이라고 주장했다.
생리휴가, 여성노동권 보장VS 집단 이기주의
그런가하면 사무금융연맹 김 실장은 "이번 생리휴가 소송과 관련한 연맹의 입장은 생리휴가에 대한 기업적, 사회적 인식을 바꿔 근본적으로 여성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일을 하면서도 사회적 출산문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 그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생리휴가라는 얘기다.
김 실장은 이어 "직장일을 하는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유산의 경험이 있다" 며 "갈수록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는 법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리휴가 수당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에 대한 비난 글들이 쇄도하고 있기도.
심지어 소송에 들어간 여직원들을 집단 이기주의라는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여직원들의 이번 요구는 자신들 스스로 여성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기업은 점점 더 여성 근로자들의 채용을 기피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 여성 생리휴가는 엄연히 남녀의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생리휴가가 유급이라는 것은 즉 근로로 인정된다는 것인데,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남자에게 발병 시 주어지는 의무 휴가는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때문에 남자에게 더 많은 근로 일수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이는 남자에 대한 신체적, 성적 차별을 의미한다는 얘기.
김 실장은 또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에 대해 남녀 역차별을 들먹이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권민경 기자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