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휴가 소송 '금융권 눈치보기 방해공작'

기업 "여직원 개개인 상대로 소송 취하 압력"파문

2007-10-15     권민경

우리투자증권 외 17개 회사, 5천여명 소송 1천억 규모
사무금융연맹 "돈이 목적 아닌, 여성 노동권 개선 요구"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금융권이 여직원들의 생리휴가수당 지급 요구로 술렁거리고 있다.

최근 씨티은행 여직원들이 법원의 1심 판결에 따라 18억7천여만원(1인당144만원)에 달하는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받은 데 이어 한국은행, 우리투자증권, 교보생명 등 10개 사업장 여직원 3천708명이 생리휴가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또 굿모닝신한증권과 SK증권 등 7개 증권사 여직원 1천400명 역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금융권 전반으로 생리휴가 수당 문제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 이번 소송을 전담하고 있는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이하 사무금융연맹)은 "생리휴가 수당은 법에서 이미 규정해 놓은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이번 소송의 목적은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휴일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업들은 여직원들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일부 기업에서는 소송에 동참한 여직원들을 상대로 소송 취하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여직원들의 생리수당 요구가 지나친 면이 많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즉 한쪽으로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생리휴가 운운하는 것은 남녀 역차별적 발상이라는 얘기다.

금융회사들 '직원 개개인 상대로 치밀한 방해공작'

"법도 있고 판례도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명분은 없다. 문제는 일부 기업에서 여직원 개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취하할 것을 종용하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리휴가 수당과 관련한 여직원들의 집단 소송을 전담하고 있는 사무금융연맹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업 실명을 밝힐 수는 없다" 면서도 "현재 해당 기업 노조를 통해 그런 정황을 포착했다" 고 말했다.


특히 일부 재벌기업 산하 금융사들의 경우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게 되면 계열사 전체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소송액 산정에 필요한 미사용 생리휴가 일수와, 통상임금 등 해당 자료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금융계에 종사하고 있는 한 여직원에 따르면 "집단으로 소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참여를 하고 있지만 주위의 눈치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면서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소송에서 빠지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고 불편한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처럼 금융사들이 이번 소송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소송으로 인한 지급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경우 여직원의 비중이 높아 일각에서는 생리휴가 수당 지급 소송 대상 금액이 1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은행의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어 전, 현직 여직원들에게 지급한 생리휴가 수당이 1인당 144만원으로 총 18억7천여만원이었다.

그러나 대형은행, 증권사들의 경우 씨티은행에 비해 수당 지급 부담이 훨씬 커 씨티은행이 수당지급 후 제기한 항소심 결과와 우리투자증권 여직원들이 제기한 소송 결과에 주목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연맹 "저출산 막으려면 여성 노동권 보장해야"

그렇다면 생리휴가 수당 소송 문제가 불거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먼저 생리휴가란 생리일의 근무가 곤란한 여자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월 1일의 유급 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청구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생리휴가를 주어야 하며, 일용직, 임시직에 관계없이 부여되고 근로일수와도 관계없이 적용된다.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

생리휴가 근로수당은 이 법으로 정해진 유급 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때 지급하는 수당이었는데,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2004년 7월부터는 유급에서 무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여직원들은 법이 바뀌기 이전에도 생리휴가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아오지 못한 것이 사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41개 증권사 중 12개사 여직원의 지난해 생리휴가 사용비율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에 따르면 대한투자증권, 대신증권, 푸르덴셜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12개사 여직원의 상반기 생리휴가 사용비율은 0%로 밝혀진 바 있다.

증권사와 비슷한 근무여건을 가진 시중은행의 경우 생리휴가 사용비율이 0%인 곳은 한 곳도 없었으며, 씨티은행, 외환은행 등은 사용비율이 40%를 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6월 씨티은행과 합병한 옛 한미은행 노조에서 은행측이 2002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2년 동안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낸 것.

이에 대해 법원은 올해 5월 18일 1심 판결을 통해 은행이 직원들에게 총 18억7천만원의 금액을 지급하라는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씨티은행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금융계 전반에 생리휴가 수당에 대한 요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지난 4일 우리투자증권 여직원 743명은 "노동 조합과 회사 측이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여직원들이 사용하지 않은 유급생리휴가에 대한 근로수당을 지급하라" 며 서울중앙지법에 임금지급청구소송을 냈다.

여직원들은 소장에서 "우리투자증권으로 합병, 변경되기 전 엘지투자증권은 엘지투자증권 노동조합과, 우리증권은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과 여직원들에게 유급생리휴가를 주도록 각각 단체협약을 맺었다"며 "이 협약에 따라 여성조합원이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근무한 경우에는 생리휴가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생리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에 대해서도 수당 지급을 청구해 주목된다. 씨티은행 노조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2004년 6월까지를 수당 청구기간으로 지정했다.

한편 우리투자증권을 비롯한 증권, 은행사 노조원들을 대신해 이번 소송을 전담하고 있는 사무금융연맹 김금숙 실장은  "이미 씨티은행 1심 판결에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생리수당을 지급하라는 결정이 나온 만큼 큰 변수가 없는 한 승소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며 "사측이 임금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일단 1인당 연1일 수당 5만원을 기준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재판 과정에서 미사용 생리휴가 일수와 통상임금이 명확해지면 소송액을 다시 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무금융연맹은 일부 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단체협약 내용에 아직 생리휴가가 유급제로 유지되는 곳들이 있어 법 개정 이후 지급되지 않은 수당에 대해서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사무금융연맹 김 실장은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에도 생리휴가가 명시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다수의 여직원들이 이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그렇다면 당연히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임금 채권"이라고 주장했다.

생리휴가, 여성노동권 보장VS 집단 이기주의

그런가하면 사무금융연맹 김 실장은 "이번 생리휴가 소송과 관련한 연맹의 입장은 생리휴가에 대한 기업적, 사회적 인식을 바꿔 근본적으로 여성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일을 하면서도 사회적 출산문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 그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생리휴가라는 얘기다.


김 실장은 이어 "직장일을 하는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유산의 경험이 있다" 며 "갈수록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는 법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리휴가 수당에 대한 여직원들의 요구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고 있다.

생리휴가 수당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에 대한 비난 글들이 쇄도하고 있기도.

심지어 소송에 들어간 여직원들을 집단 이기주의라는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여직원들의 이번 요구는 자신들 스스로 여성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기업은 점점 더 여성 근로자들의 채용을 기피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 여성 생리휴가는 엄연히 남녀의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생리휴가가 유급이라는 것은 즉 근로로 인정된다는 것인데,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남자에게 발병 시 주어지는 의무 휴가는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때문에 남자에게 더 많은 근로 일수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이는 남자에 대한 신체적, 성적 차별을 의미한다는 얘기.

그러나 일각의 이런 비난에 대해 사무금융연맹 김금숙 실장은  "여성 노동자들의 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권 자체가 침해받는 것"이라며 "결국 저출산 문제는 날로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에 대해 남녀 역차별을 들먹이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편 소송과는 별도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20일 증권업계에서는 최초로 노사협의를 통해 여직원 500여명에 대해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인 2003년 9월부터 2004년 6월말까지 10개월간의 생리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권민경 기자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