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1784 유만주의 한양' 전시

거대한 역사에 가려진 개인의 삶을 남겨진 일기에 주석을 달 듯 전시

2016-11-23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1784 유만주의 한양> 전시를 11월 25일부터 2017년 2월 2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유만주(兪晩柱, 1755~1788)는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을 서울 남대문 근처 자신의 집에서 글을 읽고 쓰며 보낸 인물이다. 평생 과거시험에 매진했지만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는 1775년부터 1787년까지 1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적은 24권의 일기를 남겼다. 그는 그의 일기를 흠영(欽英)이라 불렀다. 흠영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으로 유만주의 자호이기도 하다.

이 ‘흠영’에는 18세기 후반 한양의 풍경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담겨져 있어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1784년은 당시 조선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었던 평범했던 한해였다. 이러한 평범함 속에 담겨진 개인의 일상을 주목했다.

1784년은 평화로운 한해였다. 즉위 8년째에 이른 정조의 정치는 안정적이었고, 큰 기근과 역병이 없이 가을에는 풍년이 들었다. 문효세자가 책봉된 것을 제외하면 특기할만한 사건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당시 한양은 임진·병자 양란의 후유증이 완전히 극복됐고, 훼손되었던 수도의 위용을 되찾은 뒤였다. 연초부터 문효세자의 책봉 논의가 시작됐고, 8월 2일 드디어 책봉 예식이 거행됐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이 열렸고, 한양은 과거 응시자들로 북적였다. 12월 3일에는 세자 책봉을 축하하는 청나라 사절단이 도착하면서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갓 서른살이 된 유만주도 1782년 물산이 풍부한 해주의 판관이 된 아버지 덕분에 생활이 좋아지고 있었다.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것 외에도 이사, 중국 서적, 나귀 등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 전시는 정조를 비롯해 동시대를 살아가던 역사적 인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어느 소시민의 일기에 주석을 달 듯 전시를 기획했다.

새해 첫날 가묘에 차례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정월대보름의 다리밟기, 봄철 한양 주변의 꽃구경과 해주·평양기행, 무리해서 이사 간 새집, 과거시험 낙방, 청나라 사신 구경 등 소소한 개인의 경험을 일기에 주석을 다는 것과 같이 전시했다.

특히 과거에 계속 매달리고, 정원이 멋진 집에 반해 주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돈을 빌려 집을 구입하는 유만주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삶과 아주 닮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만주는 1월부터 창동과 그 근처 난동(蘭洞), 수서(水西), 공동(公洞)의 집들을 여러 군데 살펴봤다. 하지만 집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계약도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8개월 만에 백칸짜리 명동(明洞)집을 구했지만 집값 2천 냥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 써야 했다.

그의 일기에는 아버지 유한준이 ‘분수에 맞지 않다’며 취소하라고 계속 편지를 보내온다고 묘사돼있다. 아버지의 우려대로 유만주는 새 집에서 고작 1년 밖에 살지 못하게 된다. 유한준이 파직되고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자 다시 창동의 초가집으로 되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흠영’, 아버지 유한준(兪漢雋)의 초상화, 즐겨찾던 석양루(夕陽樓)의 그림인 ‘인평대군방전도(麟坪大君坊全圖)’, 낙방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명단인 ‘세자책봉경용호방목(王世子冊封慶龍虎榜目)’, 수호전 등 즐겨보던 중국소설, 처방받은 약재 등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