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본부의 수장이 되기까지

2006-10-16     이기영

[매일일보닷컴=이기영 기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14일 새벽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이를 두고 반 장관을 아는 한 인사는 “시골 개울가에서 물장구치고 놀던 ‘촌놈’이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유엔본부의 수장이 됐다”며 기뻐했다.

충북 충주 달촌 지역에서 자란 반기문은 충주고 2학년 때 외교관이 될 꿈을 꾸기 시작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충주의 ‘영어신동’으로 불렸던 그는 2학년 때인 61년 미국 적십자사에서 주관하는 ‘외국학생 미국 방문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한 달 동안 미국을 방문한 반 장관은 백악관을 방문해 다른 나라 학생들과 함께 존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기회를 얻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장래 희망이 외교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장관은 지금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외교관이라는 꿈을 다졌다”고 회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외무고시(3회)에 합격하면서 70년 외무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반 장관은 40년 가까이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외교부 내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북미국장, 주미공사, 외교정책실장을 거쳤으며 이후 차관보, 차관 등 요직과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외교보좌관을 지냈다. 2004년 참여정부의 두 번째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유엔과 결정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1년 9월 당시 한승수 외교부 장관이 겸임했던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발탁될 즈음 9.11사건이 발생해 그와 관련된 유엔 차원의 테러리즘 대응조치, 이견 조율 업무 등에 대해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반 장관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새옹지마’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승수장관이 그 자리를 권할 때는 반 장관이 차관을 끝으로 관직 생활을 마감하는게 아니냐고 고심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통해 유엔 사람들고 KCLS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오늘날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할 수 있는 자양분을 미리 키웠던 것이다.반 장관은 관가에서 대표적인 외유내강형 인물로 통한다. 부드러운 인상과 화법을 구사하지만 강인한 의지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정부내에서 반 장관을 놓고 ‘상관에게 싫은 소리는 절대 안하는 사람’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임지에 나가있는 대사등 부하직원들에게도 친필편지를 쓰는 사려가 오늘의 반 장관에게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게 했다. 그래서 반 장관은 한때 ‘주사’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고위직이면서도 그 직급에 관계없이 자질구레한 일도 손수 챙겼다는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그의 독특한 어법은 특히 유명하다. 투박한 냄새가 베어나오는 그의 화법은 대화 상대방을 금세 ‘반기문 팬’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부지런함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요일 출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게 몸에 배어 있다. 미국과 유럽, 중동, 아프리카 출장의 경우 시차를 감안해 이동하는 시간에 비행기에서 자는 일정을 잡는게 예삿일이다.하지만 관운 뿐 아니라 타고난 체력과 업무능력이 오늘의 반장관을 있게 했다. 62세이지만 올들어 110여일동안 40여개국을 오가며 공식업무와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동시에 펼치는 강행군을 하면서 단 한차례도 아픈적은 물론 심한 피로도 느낀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하는 운동이라고는 생각을 정리하며 집무실 안을 걷는 것이 고작이다.반 장관은 충주고와 충주여고간 학생회장단 간부 교류로 만난 유순택씨와 사이에 선용과 현희, 우현씨 2녀1남을 두고 있다. 둘째 딸 현희씨는 유엔아동기금(UNICEF)직원으로 케냐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인 사무총장의 의미

최고 국제기구 수장을 ‘한국인’이 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이미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유엔의 수장을 배출한 국가로 국제사회의 안보와 공동번영에 적극 기여하는 평화애호국가로서 정체성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냉전과 분단상황으로 인해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분단국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었다. 따라서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배출은 국민이 갖는 자부심은 물론 국제적인 한국의 위상도 크게 올라갈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 지금까지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만큼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맞에하게 됐다. 또 그 동안 한국외교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일부 국가만을 대상으로 한 편협주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과정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물론 유엔 일반 회원국들이 폭넓은 지지도 얻으면서 당선돼 이 같은 시각을 벗어나 폭넓은 외교를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남은 과제

유엔사무총장은 최대 국제조직 수장으로서 막대한 권한을 갖지만 강대국들인 상임 이사국들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국이 그 동안 미국 의존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펴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 의문을 표시하는 인사들이 적지않다. 또 대량살상무기 확산, 질병확산, 테러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위협과 도전이 많은데 여기에 과연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사무국자체도 비효율성, 부정부패로 비판받고 있어 좀 더 효과적인 기구로 개혁해야 한다는 과제도 반 사무총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lgy929@naver.com

반기문, 그는 누구인가?

-. 1944년 6월 13일 충북 충주 출생
-. 63년 충주고, 70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주요 경력: 70년 외시 3회 합격 외무부 입부, 78년 주유엔 1등서기관, 80년 외무부 국제연합과장, 87년 주미국 총영사, 90년 외무부 미주국장, 92년 장관특보, 92년 주미국 공사, 95년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96년 제1차관보, 96년 대통령 의전수석, 96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98년 주오스트리아 대사, 99년 포괄핵실험금지조약기구 준비위 의장, 2000~2001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1년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 2003년 대통령 외교보좌관,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