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다시 기지개 편다

“끓는 용암 속 들어갈 준비됐다”…‘헤쳐모여’식 정계개편 주장

2006-10-23     최봉석 기자

[매일일보닷컴=최봉석 기자] “펄펄 끓은 용광로 속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
민주당 추미애 전 의원의 ‘용광로 발언’이 여의도 정치권에 주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북핵문제로 시끄럽던 정치권도 모처럼 그녀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가 정가에 복귀할 경우 미칠 영향을 분석하며 여야 나름대로 제각각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처음에 반대했지만 막판에 “노 대통령의 탄핵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으로 만들 정도”라고 주장하는 등 탄핵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뒤 결국 그 역풍으로 민주당은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그 또한 ‘차기 여성 대권 후보’에서 ‘삼보 일배 여인’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총선에서 낙선하자 같은 해 8월 미국으로 떠난 이후 동료 정치인들과도 연락을 거의 끊은 채 칩거생활을 하면서 콜롬비아 국제대학원에서 동북아 외교안보와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지난 8월 유학생활을 마감하고 2년 만에 귀국했지만 곧바로 정치 재개를 하지 않고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거나, 각종 토론회 및 세미나 등에 참석하면서 “연말까지는 어떠한 정치적 스케줄도 자신의 수첩에 적혀 있지 않다”는 점도 강조해왔다.

그런데 추 전 의원이 귀국 2개월 만에 정치활동 재개를 시사하며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16일 법무법인 ‘아주’의 대표변호사로 취임한 자리에서 “정치를 다시 시작할 것인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깨진 유리조각을 붙이는게 아니라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며 향후 정계개편을 통한 정치재개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일단 ‘용광로’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완전한 ‘헤쳐모여식’ 정당해체론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크다.추 전 의원은 이와 관련 “밥을 다 먹고 나면 라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저도 어떻게 될지 아느냐”며 밥과 라면을 동원한 비유법을 통해 정치활동 재개를 시사한 뒤, “정치인의 역할은 국민의 마음을 읽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도 힘을 보태겠다”며 정치적 승부수를 분명히 던질 뜻을 내비쳤다.이는 어쨌든 한 달 전인 지난 9월까지만 해도 “올해 말까지는 대학 강의만 할 뿐, 강의에 방해되는 다른 스케쥴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180도 다른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이날 취임식에는 특히 정동영 우리당 전 의장이 참석, 옛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3년 반만에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해 눈길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회동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구구한 해석과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열린우리 “새로운 돌파구 역할” 기대

정치권은 먼저 추 전 의원의 등장으로 인해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정계개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이는 추 전 의원이 그동안 민주개혁세력의 통합에 관심을 보여왔고 정동영 전 의장 또한 귀국 후 신(新)중도 통합론을 흘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열린우리당은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다. 현재 국민적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면서 정당으로서 존립에 대한 위기를 맞고 있는 당 내부에서는 추 전 의원의 정계 복귀가 새로운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정동영 전 의장은 이에 대해 “대한민국의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묶어내는 힘이 바로 추 전 의원이 2년 간 준비해온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며 “추 전 의원이 통합의 리더십으로 희망의 등불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그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그러나 민주당의 경우, 추미애 전 의원이 민주당이라는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을 은연 중에 내비치고 있지만, 그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소속당인 민주당보다는 노무현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과 더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했다는 점 때문에 이번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서는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열린우리당은 실패했다’고 고백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사실상 소속당인 민주당과 관계를 단절하고 있는 추미애 전 의원이 단순히 만났다는 이유로 민주세력 대통합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그러나 양 당 모두 ‘사실상’ 그의 정치권 복귀가 현실화 될 경우, ‘어느 쪽에 더 유리할지’에 대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해석을 쏟아내려는 모습이다.

정계복귀 ‘초읽기’…도대체 언제?

그는 과연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정치활동 재개를 선언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추 전 의원의 귀국을 앞둔 상황에서 고건 전총리와 민주당, 열린우리당이 서로 얽혀 있어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분석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그의 ‘진짜’ 속마음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 상황이다. 그는 지난 9월 중순께 “개혁 이전에 통합이 필요하다”는 원칙론만 밝혔을 뿐, 통합의 주체와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정치권은 그가 영남 출신이라는 점을 배경으로 통합의 외면을 더욱 넓히려 한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그의 정계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추 의원은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느 쪽으로 발을 들일까. 민주당 내에서는 추 전 의원이 하루빨리 소속당으로 복귀해 당원들의 의사를 묻고, 당내 일치된 한 목소리로 민주대통합을 논하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추 전 의원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 (추 전 의원이) 뭔가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추 전 의원의 의중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는 남편 서성환 변호사도 아직까지는 그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고 있다.

bstaiji@sisaseoul.com

<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닷컴/www.sisaseoul.com/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