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형유산원,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등재 기념 특별전 개막식

2017-12-06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제주해녀는 아무런 기계장치없이 맨몸으로 거친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말한다. 현지에서는 '물질'로 부르는 해녀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는데 제주해녀는 일본의 해녀(아마)보다 잠수능력과 강인함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물질작업은 때론 생명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동료해녀는 물속에서 닥칠 위험을 상호 예방하고 물질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존재였다.이에따라 제주해녀문화는 해녀공동체를 중심으로 세대간에 전승되어 왔다.최소한의 도구만을 이용한 자연친화적 방식의 해산물채취를 지속하는 제주해녀 문화는 약자에 대한 배려, 공익에 대한 헌신과 참여,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등 인류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이같은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11월 3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12월 5일 오후 4시 전주시에 자리한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등재를 기념하는 특별전 전시에 앞서 개막식이 거행됐다
 개막식에 앞서 제주시 해녀노래보존회 전수교육생들로 이뤄진 공연단(단장 강병자)이 애기구럭(요람) 흔드는소리, 이어도사나(해녀 노젓는 소리), 제주민요 오돌도기를 부르며 해녀물질하는 장면을 연출해 참석자들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이날 개막식에서 국립무형유산원 강경환원장은 축사를  통해 "인류무형유산은 사라져가는 유산이 아닌 이어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문화" 라며 "독특한 공동체 문화인 제주해녀문화가 일반인들의 입체적인 이해와 체험을 통해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라고 말했다.

제주해녀의 역사

제주해녀는 조선시대에는 잠녀(潛女) 또는 잠수(潛嫂)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제주해녀는 국내분만 아니라 해외로도 진출했다는 기록이 '제주풍토기'에 남아있다.이러한 활약상으로 '조선의 중대한 산업 현상'으로 조명되기도 했다.
 

제주해녀의 물옷

해녀들은 바다에서 물질 할때 작업하기 편한 옷을 입는다. 전통적인 해녀옷은 '물소중이<위 사진 참조>로 옆트임이 있어 벗기 편하고 품 조절이 용이 했다. 1960년대 이후 소중이 위에 저고리형태인 '물적삼'을 입기도 했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면서 대다수의 해녀들이 '고무옷을 입었는데 기존의 물옷보다 성능이 뛰어나 작업의 효율성을 높여줬다.

해녀 공동체

물질작업에서 동료의 물질경험과 지식을 배우는 것은 물질 기량을 높이는데 중요하며 동료해녀는 물속에서 닥칠 위험을 상호 예방하는 보호막 역할도 한다. 이런 역할은  제주해녀문화는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세대간에 전승돼 왔다.해녀들은 물 때에 맞춰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밭일과 집안일을 하며 가사를 꾸려 나갔다. 바다에서는 전복 소라를 캐며 물질의 성취감을 느꼈지만 마을에서는 소박한 아낙네의 삶을 살아갔다.

바다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곳

바다는 풍요로운 해산물을 제공해주는 삶의 터전 이었지만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치열한 생존현장 이었다. 때로는 죽음의 위험을 감수 해야 하는 일 이기에 해녀들은 '영등신'과 '용왕신'등 바다의 신들에게 해상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요를 빌었다.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의 공동체적 성격과 자연과 동화하는 특별한 전승문화 그리고 그안에 녹아있는 협동을 통한 인류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이번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게 됐다.우리나라는 이번 등재를 계기로 인류무형유산의 지속가능한 보호와 전승을 위해 국립무형유산원과 제주특별자치도를 비롯 물질을 하고 있는 공동체 모두가 함께 우리유산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