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열린우리, ‘해체’하고 신당 출범한다?
지도체제 개편론, 조기전당대회 개최론, 재창당론 쏟아져…신당 창당 불가피
“열린우리당은 당장 해체하라.”
“도대체 뭘 보고 앞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야 한단 말인가.”
“부탁컨대 개혁을 확실히 추진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 새로 당을 만들어라.”
열린우리당에 불만있는(?) 요즘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2004년에 터져나온 목소리다.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이 원내 과반수 의석을 줘 열린우리당을 거대야당으로 만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당이 ‘실용주의니’ ‘상생이니’ ‘합의니’ 하며 개혁을 차일피일 뒤로 미뤘을 때 터져나온 지지자들의 분노였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사실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당이 출발할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던 어쩌면 ‘식상한’ 얘기였다.
지난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새천년민주당과의 분당에서 시작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이라는 타이틀 속에서 당선됐고, 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서 “민주당의 전통과 정강정책을 충실히 지키겠다”고 국민한테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이유로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이후 줄곧 ‘해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따갑도록 들어야만 했다.
일단은 민주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로부터 들어야 했고, ‘혹시나 하고 지켜봤지만’ 창당을 하겠다고 나선 창당 구성원들의 행보가 개혁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해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도 이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지난해 4월부터도 열린우리당은 ‘해체하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당시 치뤄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이 참패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얘기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해체론’도 그때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5일 치러진 국회의원, 기초단체장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또 참패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까지 실시된 국회의원 및 지방선거 등 4차례 재보선의 40개 선거구에서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고 모두 패배한 셈이다.사실상 존립 기반이 극도로 취약해져버린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국민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문제는 당의 간판을 내리는 데도 ‘암초’가 많다는 것이다.여당 내에서는 지도체제 개편론으로부터 시작해, 조기 전당대회 개최론, 재창당론, 전당대회 없는 통합추진론이 나오면서 구성원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벌써부터 일어나고 있다.정치권 새판짜기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침없이 나오고 있고, 아예 원점으로 돌아가 민주당과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당은 또한 선거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창당은 실패했다”며 ‘해체작업’에 이미 착수했는데, 친노그룹은 “창당은 실패한 것이 아니”고 “시대 정신에 부합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 해체를 반대하고 있어 당내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편다’는 백가쟁명(万家爭鳴)도,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인다’는 중구난방(衆口難防)도 열린우리당에게 현 상황에 딱 적합한 표현이다.열린우리당은 백가쟁명, 중구난방
이번 재보선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된 열린우리당의 내부사정이 이처럼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고, 선거 패배 이후 열린우리당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국민들은 도대체 열린우리당의 꿍꿍이 속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질문의 요지는 간단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데?”열린우리당은 현재 ‘이대로 주저앉아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는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형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해체론’을 만날 귀가 따갑도록 듣는 것처럼, ‘정계개편’을 매일 입이 아프도록 외치고 있다.김근태 의장이 지난 26일, 이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평화번영세력의 결집을 통해 국민에게 새 희망을 제시하겠다”며 정계개편 추진을 공식화했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현재의 틀을 완전히 허무는 근본적인 정계개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정계개편 논의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당이 ‘정상’이 아닌 ‘비상’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여당의 유일한(?) 대선주자인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의 저조한 지지율도 이 같은 논의에 한 몫을 하고 있어, 당은 그동안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얘기하면서 제3의 후보군을 찾고 다녔다. 어쨌든 정계개편의 핵심은 말 그대로 ‘재창당’이라고 보는 경향이 높다. ‘신당(통합신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재보선 패배가 확정된 직후, “곧 재창당의 기조를 제시하겠다”고 말했다.조만간 재창당의 기조 제시할 것
물론 재창당 과정에 현 김근태 의장 체제가 계속 이어지느냐, 아니면 김 의장이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느냐가 논란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열린우리당 내부에선 단순한 지도부 문책은 더 이상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널리 퍼져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근태 의장을 중심으로 당이 당분간 발걸음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재창당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암초는 당내 중도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국민의 길’이다. 이들은 재창당에 대해 “호박에 줄 긋는 것”이라고 비꼬고 있다. “우리당에 실망한 국민에게 새로운 집권의 희망과 비전의 틀을 새롭게 짜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이른바 ‘친노세력’ 역시 열린우리당의 해체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반발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 탈당 문제는 두 번째 직면한 암초라고 볼 수 있다. ‘통합신당’ 창당이 본격화할 경우, 최우선 협상대상인 민주당은 “노 대통령 탈당이 없으면 통합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지난 8월 “탈당은 하지 않겠다. 임기 후에도 당원으로서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복잡한 암초가 많아 재창당이 ‘당장은’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당의 고민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현재의 틀을 완전히 허물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앞으로 신당론이 확실하게 구체화되고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신당의 방향은 어느 쪽이 얼마나 많은 세력을 확보하느냐로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해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면서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개인과 집단, 세력이 합의할 수 있는 노선과 비전으로 통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세력과 통합?
열린우리당이 여태껏 보여준 모습으로 짐작했을 때, 이 발언은 고건 전 총리와 민주당을 염두해두고 한 말로 풀이되고 있다.고 전 총리는 그러나 ‘독자생존’을 고집하고 있는 듯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으로 흡수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이 가시화될 경우, 격렬하게 저항할 가능성이 높은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신당론’은 가시권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신당의 명칭과 창당 과정 등에 대해 이미 의견을 나눴고 논의가 상당부분 진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 보돈된 바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내년 대선에 대비해, 당명 개칭을 포함한 범여권 통합신당 창당 논의에 공식적으로 착수했다.신당의 명칭으로는 ‘선진한국당’ ‘참여하는 민주주의’ 한국민주당‘ 등 5~6개가 검토 중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등 신당을 위한 그림자를 읽어낼 수 있다. 겉보기에는 화살이 시위를 떠난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래서 내달 1일 국정감사가 끝나는 시점이 신당론의 향배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고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국감이 끝나면서 의원들의 활동이 보다 자유로워질 경우, 여당발 정계개편 논의와 신당창당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는 것이다.어쨌든 열린우리당을 모태로 하는 신당이 창당될 것인지, 아니면 열린우리당이 분당되면서 기존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과 하나가 돼 새로운 당이 태어날 것인지에 대한 윤곽은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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