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최규하, 권총 협박에 하야했다?”
비망록 공개되면 진실 밝혀질 듯
[매일일보닷컴=이기영 기자] ‘한국외교의 기초를 닦은 거물’ ‘비운의 최단명 대통령…’ 지난 22일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처럼 엇갈리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한 시대를 살았던 최 전 대통령. 대통령 재임기간은 총 10개월로 짧았다. 그러나 그 기간에 발생한 일들은 헌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일들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증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사라졌다.
박정희 대통령에서 전두환 대통령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독재정권 교체기’의 산 증인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1979~1980년 격동기의 몇 가지 진실도 끝내 그와 함께 묻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가 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엿새만에 일어난 12.12 군사쿠테타에서 신군부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연행을 사후에 재가한 과정과, 특히 대통령직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넘기는 과정에 일어난 ‘석연치 않은 점’ 등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신군부로부터 강한 압력이나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쉽게 할수 있지만 어떤 압박이 있었고, 구체적으로 무슨 협박이 있었는지는 당사자인 최 전 대통령이 끝내 입을 열지 않아 역사 속으로 묻힐 가능성이 커졌다.
최 전 대통령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집념’에 가까울 정도로 침묵을 지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세간에는 그동안 갖가지 의문이 제기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5년, 12.12 및 5.18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최 전 대통령을 상대로 다각도의 조사로 ‘입열기’를 시도했으나 이 또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최 전 대통령이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었던 전두환씨에게 대통령직을 넘기는 과정에서 신군부가 당시 최 대통령을 상대로 ‘비상식적인 협박’을 했다는 얘기가 <매일일보>에 제보형식으로 들어왔다. 이번 제보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왜, 결국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게 됐는지에 대한 해답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만약 제보가 어떤 방법으로든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된다.일단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조용히 세상을 떠나자 세간의 관심은 최 전 대통령이 남겼을 지 모르는 비망록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 전 대통령의 장남 윤홍씨는 “최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중요한 일들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기록했을 것”이라며 “이 비망록이 밝혀지면 당시 상황(12.12 사태시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한 사전 재가 여부와 대통령직 사임 과정 등)이 소상히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비망록 존재에 무게를 실었다.그러나 최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좌했던 최흥순 비서실장은 “최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쓰신다는 말씀을 우리한테 한 적이 없다”면서 회고록 존재 여부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 최 전 대통령 서거 후 최대 관심사인 회고록 가능성 여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처럼 최 전 대통령의 회고록 존재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익명의 증언이 나온 것이다.익명과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이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 12.12 쿠테타로 모든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당시 자신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군병력을 동원해 강제 연행, 직위를 해제시켰 듯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퇴 종용에도 군 병력을 동원했다는 것이다.이 제보자는 “80년 8월 당시 사실상의 내각 수반인 국보위 상임위원장과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중정부장 서리까지 그야말로 전권을 장악, 행사하고 있던 전두환씨가 12.12 군사쿠테타의 최종 목표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임기가 3년 가량이나 남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이 때문에 신군부측에서는 유형 무형으로 최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사임 권유 및 압박을 가했고,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사퇴하지 않자 결국 군 병력을 청와대로 보내 최 전 대통령을 ‘권총’으로 협박, 사임 약속을 받아냈다”고 증언했다.지금까지는 최 전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배경에 대해 - 물론 최 전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배경을 스스로 밝힌 적은 없지만 - 신군부 측이 5.18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국보위를 설치함으로써 내각의 기능이 상실된데다, 최 전 대통령에 대한 ‘군 원로들의’ 하야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권총 협박으로 사임 약속 받아냈다?
실제 신군부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최 대통령에게 수 차례 밀사로 보내 하야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그 과정에 최 전 대통령은 처음에는 하야를 거부했으나 수 차례에 걸친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태도를 바꿨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신군부의 회유가 어느 정도였고, 압박은 어느 수위까지였는가 하는 점인데, 이 제보자는 그 ‘결정타’가 바로 ‘권총 협박’이었다는 것이다.물론 권총을 가지고 어느 정도 수위까지 협박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신군부가 권총을 차고 최 대통령을 만나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그것이 권총만 차고 들어갔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권총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협박을 했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최 전 대통령의 항거가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위협을 가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직접 “사격을 하겠다”는 으름장을 놨다는 것인지 또한 알 수 없어 제보자의 증언이 사실이 아닌 ‘설’로 그칠 가능성도 있다. 이 제보자는 특히 청와대까지 들어간 군병력이 어느 지휘관의 명령을 받고 실행에 옮겼는지 여부와 소속 부대, 그리고 권총을 꺼내 직접 협박을 했던 인물 등에 대해서도 차후 파장을 고려해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제보자는 “그 해답은 전두환 정권이 탄생해 가장 출세한 군인 중의 한 명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밝혀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했다.이 제보자의 설명으로 미뤄보면, 당시 5공 정권 당시 군인신분에서 국회와 행정부, 각료로 변신한 여러 명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중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보위 시절 만든 민주정의당 창당에 깊숙하게 개입했다가 국회와 행정부 각료로 진출한 K모씨 등 20여 명이 이 제보자의 설명권 안에 들어있다.전두환씨 집권 이후 출세한 군인 가능성
물론 K모씨측은 이와 관련해 “사실무근”이라며 제보자의 증언내용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최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신군부의 권총협박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최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날인 지난 23일 빈소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침묵을 지키시다 돌아가셨는데 고마우신 부분이 있지 않느냐”는 한 기자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는 보도가 있어 새삼 최 전 대통령의 깊은 침묵에 아쉬움을 주고 있다.평소에도 단단히 말을 아꼈던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자신의 대통령직 사임과정에 침묵함을써 이 제보자의 제보내용이 어느정도 진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최 전 대통령이 혹시 남겼을지도 모르는 비망록이 공개되거나, 혹은 또 다른 제보자의 새로운 증언이 나올 경우 대통령직 사임과정은 물론 12.12와 5.17, 5.18 등 1979~1980년 격동기의 숨겨졌던 진실이 남김없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