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간적인 동지”를 꿈꾸던 그를 보내며…
2007-11-13 매일일보
일요일인 5일 새벽. 다급하게 울린 전화 저쪽 끝으로부터 구논회 의원이 하늘나라로 불려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져왔습니다. 하루종일 이일저일로 돌아다니면서도 ‘짠’한 마음을 지워낼 수는 없었습니다.누구라도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키우게 하지만, 그의 떠남이 우리를 짠하게 한 이유는 그가 평소 같이 마음을 나누던 진정한 친구요 동료였기 때문입니다. “천년만년 국회의원 하느냐?”며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인간적인 동지가 되자”던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귀에 생생합니다.항상 온화하고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던 그, 하지만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 없이 밀어붙이는 열정과 의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개있는 선비였습니다.시민운동에 앞장서다 국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에게 국회의원의 격무는 고단함 그 자체였습니다. 1995년 극복한 위암은 공교육 강화를 비롯한 교육개혁과 지역 균형발전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며 매진했던 그에게 또다시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여의도에서의 갖가지 회의와 대전의 지역구를 오가며 차안에서 새우잠으로 피곤을 속이던 그에게 자신의 건강은 항상 뒷전일 수밖에 없었기에, 올 초 그는 또다시 위암재발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후 5년만 버티면 완치된 것으로 보는 암이 스트레스와 격무때문에 12년만에 또다시 재발한 것입니다. 올 봄 한 식사자리에서였습니다. 음식을 먹는둥마는둥 지나치게 소식하고 자극성 음식을 가리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건강이 최고야, 건강해야 일을 하잖아?”라며 “노의원도 미리미리 건강 체크하고 조심해야 해!”라며 다소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는 이미 위암이 몸 전체로 퍼져 있었을 때였던 듯싶습니다. 그에게 몰아닥친 변고는 우리 동료의원들에게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아쉬운 마음도 더더욱 깊을 수밖에요. 겉보기엔 번지르르할지 모르지만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지역구와 국회를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오가며 챙겨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의 숙명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고, 때문에 이런 변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투병생활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고통을 이겨내겠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던 구논회 의원. 그의 빈자리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출범한 지 3년여만에 존폐의 기로 서있는 열린우리당의 우리에겐 너무나 큽니다. 사심없이 함께 나라를 걱정하고 명쾌한 논리를 제시해 주던 그, 그러면서도 너무나 분위기가 장중해지면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우리를 누그러뜨리던 그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못다 핀 꿈. 마흔여섯의 나이는 ‘새 정치’를 꿈꾸던 그의 정치소신을 현실로 일구어내고 그를 뽑아준 지역주민들의 소망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 듯 싶습니다.국회의원 노웅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