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게이트 法-檢 갈등, '서초동 잔혹사' 불러올까

검찰 '판사 바꿔라' VS 법원 '검사면 말 가려서 해라'

2006-11-13     권민경 기자
[매일일보닷컴= 권민경 기자]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영장이 또 다시 기각됐다. 검찰은 론스타 본사의 엘리스 쇼트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법률자문 이사가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와 함께 허위 사실을 유포해 소액주주들에게 226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지난달 31일과 지난 3일 두차례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영장의 실효성 등을 이유로 두 차례 모두 영장을 기각한 것. 검찰 자존심의 상징인 대검 중수부의 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자 검찰은 아예 담당 판사를 바꾸라며 불만을 표출했고, 법원 역시 검찰의 반응에 불쾌해 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법원과 검찰의 대립각이 심해지면서 정작 본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양측의 기싸움 대결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즉 특정 사안에 대해 법리적 견해를 달리할 수는 있지만 핵심인 론스타 수사는 뒷전이고 서로 흠집내기에 바빠 감정 대립으로 흐르는 양상에 대한 지적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론스타 영장기각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따르면 법원의 기각 사유가 에버랜드 사건에서 삼성 측 무죄주장 논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의 이상주 영장전담판사는 "미국에 있는 엘리스 쇼트 부회장 등 론스타 본사 임원에 대해 체포영장이 필요하다는 소명(증명보다 낮은 단계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이어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에 대해서도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어 구속 영장을 기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주가조작은 이득이 전혀 없어도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죄"라며 "이번 사건은 최소 피해액만 226억원에 달한다"고 법원의 '소명 부족'에 지적에 반박했다. 또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유 대표가 론스타 코리아의 1인자 인만큼 직원 등에 대한 진술 번복이나 증거인멸 시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특히 외국인에게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체포영장 발부를 거부한다면 결과적으로 범죄인인도청구조차 못한 채 이들을 기소중지할 수밖에 없다고 검찰은 강조했다. 실제로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이사는 지금까지 5번이 넘는 검찰의 출석 요구에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이런 반박에 대해 "재판에서 유죄를 받게 하면 되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잇따른 영장 기각.. 대검 중수부 자존심 추락?

이처럼 검찰의 자존심인 대검 중수부의 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면서 검찰은 분노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기각 결정이 내려진 당일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영장기각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론스타 본사 임원들이 한국 검찰을 농락하면서 출석에 불응하고 있는데도 영장을 기각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자료를 보완해 다시 영장을 청구할 것이니, 그때는 영장을 기각한 두 영장 전담 판사가 아니라 경험 많은 다른 법관이 심사하기를 바란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유 대표에 대해서는 다음 영장 청구 때 추가 포착한 혐의도 포함시키겠다"며 확고한 뜻을 나타냈다.그러자 이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판사가 수사 검사를 지정한다면 말이 되겠느냐"고 채 기획관의 재판부 교체 발언에 맞대응했다. 사실 대검 중수부는 이번 론스타 사건 외에 올 상반기에도 여러 차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 5월 현대차그룹 계열사 부채탕감 비리에 개입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중수부가 처리한 오포비리사건, 삼성채권사건 등 또한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중수부는 또 올 초부터 수개월을 끈 금융브로커 김재록 로비의혹 수사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론스타 임원들의 영장 또한 두 차례나 기각되면서 일각에서는 '중수부'의 위기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더욱이 지난 3일 중수부는 체포·구속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첫 번째 청구 내용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영장전담 판사가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는데도, 그 내용을 보완하지 않고 재 청구한 것은 어찌 보면 법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론스타 수사는 어디로?.. 검찰, 정공법 택하나

이처럼 론스타 외환카드 주가조작혐의 수사가 영장기각으로 제동이 걸리면서 검찰은 이제 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둘러싼 로비 의혹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의 론스타 관련 수사는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론스타코리아의 탈세혐의 등에 대한 수사로 나눠진다. 이 가운데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관련 영장이 재차 기각되면서 검찰은 론스타 수사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수사에 주력하기로 한 것. 즉 또 다시 영장이 기각된다면 8개월을 끌어온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가 결론도 맺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는 위기 상황에서 정공법을 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수사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시간을 두고 론스타 임원들의 증거인멸, 도주 우려 등을 보완하고 추가 혐의를 입증해 세 번 째 영장을 청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대검 중수부는 론스타가 하종선 현대해상 대표를 통해 정·관계 로비 의혹을 벌인 것으로 보고 계좌 추적과 함께 지난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하 대표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외환은행 매각의 중심인물 3인방인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전 재경부 총리였던 '이헌재' 사단의 인물이라는데 주목, 이 전 부총리에 대한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검찰은 이 전 부총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세 번째 영장을 법원에 재 청구할 계획이다.

일각 "론스타 영장기각, 에버랜드 CB 사건과 닮은 꼴"

한편 법원이 론스타 경영진 영장을 기각한 것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서 삼성 측이 주장하는 무죄 논리와 닮았다는 지적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허위감자(減資)설을 유포해 외환카드 주가가 폭락되게 한 론스타 코리아 유 대표의 구속영장에 관한 부분이 문제.

이를 두고 법원과 검찰은 주가조작 죄질 판단에서 소액주주의 입장과 회사 입장으로 양분됐다.

검찰은 외환카드 주가급락으로 소액주주들이 226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고 결과적으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비용을 줄이는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죄질은 외환은행과 론스타가 주가조작으로 벌어들인 이익규모로 따져야 하며 주주들의 피해액이 곧 론스타의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자 서울중앙지검에서는 법원의 이런 논리가 현재 항소심에 계류 중인 삼성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사건을 둘러싸고 삼성 측이 주장하는 무죄논리와 똑같다고 반발했다.

실제로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사건은 에버랜드 이사회가 지난 96년 주당 최소 8만5천원짜리 CB 125만여주를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상무 남매에게 주당 7천700원에 헐값 배정하면서 불거진 문제.

정상가보다 턱없이 낮은 CB 헐값 발행으로 결국 주주들이 손해를 봤는데, 이를 회사 피해로도 인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상황이다.

검찰은 "정상가에 발행됐으면 회사자산이 늘어날 수 있었다"며 "헐값발행으로 이것이 차단됐기 때문에 회사 피해로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삼성 측은 "헐값발행이라도 회사자산이 손실되지 않았고 주주손해 또한 임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에서는 론스타 영장 기각 사유로만 본다면 에버랜드 항소심 역시 무죄가 선고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그런가하면 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 사건도 론스타 영장기각 논란과 맞닿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법정관리를 받던 고려산업개발은 영업이 호전돼 지난 2003년 6월 법원이 매각 공고를 냈지만 이때부터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3천700원이던 주가는 고려산업개발이 같은 해 8월 두산건설·두산중공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인수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계속 떨어졌고, 두산그룹이 부실기업인 두산건설과 고려산업개발을 합병하겠다고 발표한 뒤에는 더 떨어져 2004년 2월 1920원까지 추락했다.

이 때문에 고려산업개발 지분 17.5%를 소유한 소액주주들은 1천억원대의 피해를 본 것. 이들이 두산에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가격이, 두산이 고려산업개발 신주를 인수할 때 지급한 5천원의 절반에 못미치는 주당 2128원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반면 헐값에 고려산업개발 신주를 인수한 박용성 전 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 일가는 합병 뒤 주가가 올라 1782억원에 달하는 이득을 얻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지난해 8월 "두산그룹 법정관리를 받던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는 등 시세를 교란했다"며 "이로 인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 반면 두산 총수 일가는 이득을 얻었다"고 박용성 전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가하락이 오래 계속돼 시세교란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주가하락 기간에 대규모의 주식거래도 없었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앞서 고려산업개발 소액주주 21명이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부당하게 낮게 책정됐다"며 낸 매수가격 결정신청에서, "합병 과정에서 누군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끌어내렸다"며 "이 조작된 주가를 주식매수 청구가격으로 정해 소액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쳤다"고 검찰과 반대되는 판단을 내려 논란이 됐다.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