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정계개편, 노 대통령 직접 나설까?

‘간접화법’으로 큰 원칙만 전달하며 아직 관망세…때 되면, ‘노심’ 나올 듯

2007-11-22     최봉석 기자

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아마도 여권발 정계개편 방향에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 즉 盧心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인 것 같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설지 아니면 언저리를 맴도는 수준에서 정계개편에 개입할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 비서 출신인 백원우 의원이 노심을 세가지(3원칙)로 정리해 전달했는데, 청와대측은 ‘노 대통령이 3원칙을 말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는 등 아직까지는 정계개편 구도 속에서 열린우리당쪽 사람들도 진짜 ‘노심’이 무엇인지는 종잡을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 대통령이 ‘직접화법’을 피하고, 노 대통령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다는 친노 측근 인사들의 ‘간접화법’ 형식으로 노심의 실체가 살짝살짝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질 경우, 노 대통령은 어찌됐든 단 한번도 열린우리당에 대해 정계개편과 관련한 그 어떤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한 적이 없는 셈이다.   

‘노심’의 실체가 이처럼 아직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관망’쪽으로 치우쳐 있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에 이미 개입한 것처럼 확신하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정계개편 논의 방향을 놓고 노 대통령이 조금씩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정치권이 최근 술렁이게 된 데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난 4일 회동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 도서관의 전시실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만남을 가졌다는 청와대의 ‘명분’은 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와대는 “정치적 얘기는 없었다”고 일축하면서 정치권이 쏟아내는 확대해석이 못내 못마땅하다는 반응이지만, 여야는 아무래도 ‘정치적 만남’으로 보며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록 정치 이야기가 없었더라도,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이런 판단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계개편이라는 정치놀음을 중단하라”며 연일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은 솔직히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를 밝혀라”며 “더 이상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가 부활되고 국민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정계개편의 진원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은 “정계개편을 하든 신당 창당을 하든 대통령은 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논의하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본인은 경제나 안보.부동산 문제에 전념하길 바란다”며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과 같은 현안문제에서 ‘후퇴’하길 촉구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도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 마무리를 잘하는 데 역점을 둬야지 임기 이후의 정치 상황에 개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야당 대표들이 이처럼 노 대통령을 향해 비수를 날리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 ‘정치행위’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으로,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에 개입하는 것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는 ‘경고성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정계개편에 대통령 나서지 마라”

‘신당 창당론’ 등 여권 내에서 일고 있는 정계개편 논의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쓴소리’는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 ‘빅3’ 가운데 한 명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입에서도 나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정계개편은 현직 대통령의 일이 아니”라면서 “떠날 사람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정권을 창출하든지 잊어버리고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국정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며 노 대통령을 겨낭했다.임기 말에 들어가는 노 대통령이 ‘직접화법’을 통해 아직까지 ‘노심’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 ‘노 대통령 배제론’, ‘노 대통령 정계개편 불가론’을 내세우며 노심의 향배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의 정치적 힘이 강하다’는 얘기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노심’이 정계개편 향방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정치권 한 관계자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에 나서면 안된다는 여론이   60% 이상 나왔는데 이 같은 결과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힘이 60% 이상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레임덕이라고 하지만, 야당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의 한 가운데서 힘을 발휘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또 그 힘이 여론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정계개편에 참여하지 말라는 압박이 오히려 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영향력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여당 한 관계자는 “여당 중진 의원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노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고 있는데 이 역시 노 대통령의 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의중을 점검받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해, 대통령의 ‘영향력’에 여권이 ‘긴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준다?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의 속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일단, 지난 10월 초 문희상 의원이 청와대를 다녀가는 등 이달 초까지 노 대통령과 여당 중진 의원들과의 단독 면담이 이뤄지고 있지만, 청와대측은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 논의를 둘러싼 당의 돌아가는 얘기들을 주로 듣는 편이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청와대의 이런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 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공식적인 언급만 피하고 있을 뿐 나름대로 정계개편에 대한 나름대로의 큰 원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측근들과 여권의 인식이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들과의 접촉에서 정계개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백원우 의원이 ▲도로 민주당 반대 ▲탈당 불가 ▲전당대회 결과 승복 등 ‘노심 3원칙’을 공개해 이 같은 원칙이 ‘정계개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진짜 구상인가’에 대한 관심이 한때 쏠렸지만, 당내 반발이 거세지가 노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 이 역시 노 대통령의 ‘정계 밑그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최근 노 대통령을 만난 인사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 ‘노심’은 명확히 세가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 정계개편 논의를 주도하지 않는다, 둘째, 당에서 그리는 그림을 지켜보겠다, 셋째, 지역주의 구도를 강화하는 방향은 찬성할 수 없다는 내용이 바로 그 것이다.지난 8월 초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선장이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바깥에서도 선장이 배에 오를 수 있다”며 이른바 ‘외부선장론’을 피력했던 만큼 ‘제3의 대권후보’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정계개편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것은 안된다는 원칙을 노 대통령이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노 대통령은 당시 정계개편과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언급을 했는데, 이 같은 공식적인 입장발표는 석달이 지난 여태껏 나오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8월 이후 공식적인 언급 없다!

어찌됐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정계개편 논의를 주도하지 않는다면, 관심거리는 노 대통령이 현실정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통령을 지원 사격해주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노사모를 ‘변수’로 보고 있다. 노사모가 ‘무시 못할 힘을 낼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지난 2002년처럼 단일한 힘과 전국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분화된 노사모가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시 집결해 여권발 정계개편의 핵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노사모 홈페이지는 최근 회원(당원)들의 재결집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최근 ‘노의 남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오랜 침묵 끝에 ‘대통령 정무특보’로 본격적인 행보를 재개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총리 재직 시절, 노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던 터라,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청와대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관측인 셈이다.정계개편 논의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관심은 현재 정계개편에 집중돼 있다는 추측이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노심에 대한 분분한 해석도 덩달아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키워드’는 노무현 대통령도 한 사람의 당원이라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어느 시점이 되면 당의 미래에 대해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혹은 ‘당원으로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밑그림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는 추락세지만, ‘노심’은 지금도 여전히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