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문제 북한 핵문제보다 절박했다.

부동산정책 3인 문책… 민란수준에 백기

2007-11-22     이기영 기자

지난 14일, 미국 UPI 통신은 한국의 ‘인기 없는 지도자(unpopular leader)’가 정책 사령탑들의 사의 표명으로 또 다른 타격을 받게 됐다고 긴급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어 “정부는 주택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말하고 있지만 부동산 매수 랠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이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성난 민심의 요구를 수용했다. 여론에 떠밀린 인사를 거부해왔던 노무현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 정문수 경제보좌관 등 세 사람의 사의 표명에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세 사람이 자진해 사의를 표명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청와대가 이를 바로 언론에 공개하고 이들의 사의를 수용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문책성 경질이라는 의미다.

특히 추 장관 외에 청와대 참모인 이 수석과 정 보좌관으로까지 문책의 범위가 확대된 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더 이상 논란을 키워선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청와대는 지난 15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한 후 추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형식을 밟으면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하지만 이런 기류는 지난 14일 오전 들어 돌변했다. 내부 논의 결과 성난 민심을 감안할 때 자칫 추 장관 한 사람만 물러날 경우 상황이 진정되기보다는 오히려 ‘청와대는 책임이 없느냐’는 쪽으로 사태가 확산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브리핑으로 시작된 여론의 비판이 이 수석의 강남 아파트 구입 의혹을 계기로 청와대 참모 전체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상황도 감안됐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부동산 민란’으로 번지는 상황을 차단하고 시장에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주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고 한다.

부동산정책 3人 문책 “민란 수준…더 버틸 수 없다” 백기

“부동산 문제는 북한 핵 문제보다 더 절박했다.”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정문수 경제보좌관이 지난 1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같이 토로했다. 지난달 추 장관의 즉흥적인 신도시 건설 발표 이후 수도권 일대 집값은 ‘고삐 풀린 말’처럼 뛰기 시작했다. 이백만 홍보수석이 지난 10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지금 집 사면 낭패” “부동산 세력이 문제”라는 글은 부동산 문제에 짓눌린 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여론에 떠밀린 인사를 거부해 왔던 노무현 대통령도 더는 성난 민심의 파도에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초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해 북핵 사태 등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갈렸다. 노 대통령이 비판 여론에 개의치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나머지 여론에 실린 지지층의 지원사격 덕분이었다. 특유의 ‘편 가르기’ 전술이 먹혀들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번 부동산 문제는 달랐다. 시중 여론은 온통 비난 일색이었다. “민심 이반이 ‘부동산 민란’ 수준”이라는 심각한 경고음이 각종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속속 보고됐다.결국 노 대통령은 ‘버티기’를 포기하고 등 돌린 민심을 달랠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추 장관과 이 수석 등이 사의 표명을 했지만 사실상 문책성 경질 인사인 것은 이 때문이다.청와대 참모진 교체가 이번처럼 문책 성격을 띤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월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사 파문 직후 인사검증 책임을 진 박정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비서관이 동반 퇴진한 이후 처음이다.이번 인사로 노 대통령이 임기 말 여론을 수렴하는 새로운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일는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극도로 거부감을 보였던 ‘문책성 개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의 가속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8·31 부동산팀 전면 교체
 
이번 인사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팀은 사실상 전면 교체됐다. 실무총책이었던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사퇴했고 부동산팀을 측면 지원하던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도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이들과 함께 옷을 벗었다.

이에 앞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교육부총리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는 한.미 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청와대 부동산 정책라인에서 브레인 역할을 하던 김수현 국민경제비서관도 지난해 8.31 대책 이후 사회정책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동산 경제부처로 구성된 대책반의 반장 역할을 하던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차관보도 금융감독원 부원장으로 바뀌었다.정부 스스로 이번 정부 부동산 정책의 완결판이라고 자화자찬했던 8.31 정책의 주역들 대부분이 공직에서 물러났거나 자리를 바꾼 것이다. 건교부 관계자들은 “신도시 발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장관이 간부회의 등을 통해 이제 마음을 비웠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추 장관은 자신의 발표에 대해 재경부와 청와대에서조차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에 많이 섭섭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대다수 네티즌은 추 장관의 사퇴를 환영했지만 건교부 직원들은 침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간부는 “역대 건교부 장관으로는 최장 기간(1년7개월) 열심히 일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직원들을 다독거리거나 업무 추진력에서 추 장관을 따라올 후임은 없을 것”이라며 “기존의 부동산 정책을 착실히 수행해 가는 데 많은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정문수 보좌관이 사퇴한 것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지난해 1월 청와대로 들어간 정 보좌관은 8.31, 3.30 대책 등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재경부와 건교부에서 올라오는 정책을 조율하고, 의견을 내놓은 것도 정 보좌관이었다. 따라서 추 장관이 사퇴할 경우 최소한 정 보좌관은 자리를 지켜야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국정감사에서 “나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고, 이후 부동산 정책의 조율 역할이 자신에게서 경제부총리로 넘어가면서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문책인사 막전 막후

노 대통령은 지난달 추 장관의 신도시 발언 파문 직후 제기된 추 장관 교체 요구를 일축했다. 연말이나 내년 초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당에 복귀할 때 자연스럽게 추 장관을 교체하려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 집 사면 낭패’라는 이 수석의 청와대브리핑 글이 지난 10일 발표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 수석의 글이 실린 인터넷 사이트엔 10일 하루에만 수천 건의 비난 댓글이 달릴 정도로 민심의 반발은 거셌다.특히 이 수석이 몇 년 만에 5억 원대에서 20억 원대의 강남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한 사실이 보도된 지난 13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좀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여기에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이 홍보수석 시절인 2003년 10월 ‘10·29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을 때 강남권 아파트 입주 계약을 한 사실이 지난 14일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부동산 파문이 청와대 깊숙이 번지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부동산정책 책임자인 추 장관 및 정 보좌관과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이 수석을 인책하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사의를 표명토록 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청와대 비서진 추가 교체론 고개
 
부동산 파문으로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문수 경제 보좌관의 ‘경질’ 이후 청와대 내부에 불어오는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 참모들이 느끼는 긴장감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런 움직임은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추가적인 개편과 이를 통한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기류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일단 청와대는 외견상 비서진의 추가적인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번 인책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악화된 국민 여론을 달래기 위한 수습용 인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타 부분에서 당장의 추가 인사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권 전반에 흐르는 대세는 ‘폭’이 문제이지 추가 인사는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흐르는 듯하다. 당ㆍ청간의 코드 복원과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안정적인 국정운용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라인업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진작부터 교체 가능성이 점쳐져 온 상황에서 강남 주택 구입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이병완 비서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에 지명된 송민순 안보정책실장, 여기에 교체가 확정된 홍보수석, 그리고 부동산 정책과 관련을 맺어온 일부 비서관들까지…, 교체의 명분을 삼을만한 요인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 이 실장의 경우 아직 교체 가능성은 반반이다. 연말ㆍ연초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당으로 돌아가는 것에 맞춰 단행될 개각과 타이밍을 같이하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는 가운데 좀 더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11ㆍ15 부동산대책’의 약발이 제대로 듣지 않고 이른바 ‘부동산발 민심 동요’가 조기에 가라앉지 않을 경우 분위기 일신을 위해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미 교체 압력이 강하게 일고 있고 여당에서조차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된다. 이미 후임자 물색에 들어갔다는 소리도 나온다.또 정문수 경제 보좌관과 함께 8ㆍ31 대책 등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골간을 짜온 김수현 사회정책비서관과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에 대한 책임론도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안팎으로 뒤숭숭한 청와대. 임기 1년여를 앞둔 노 대통령이 ‘386참모’들의 전면 교체를 주장하는 야당의 공세에 밀릴 경우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국면 전환을 위해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 지 노 대통령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