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박용만 부회장 '숙부의 난' 불씨 당길까?

일각 "박 부회장 급부상.. 4세들 견제"가능성 점쳐

2007-11-23     권민경 기자

지난해 '형제의 난'으로 두산 가 오너 3세들이 그룹 뒤안길로 사라진 가운데 그 수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 바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전 두산그룹 부회장).

그간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 등 윗 형들의 위세에 밀려있던 박용만 부회장이 최근 그룹의 실질적 경영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

물론 '형제의 난' 이전에도 그룹 내 주요 M&A를 성사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아 왔지만 최근 들어 부쩍 그룹 경영을 주도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박용만 부회장이 빠른 속도로 그룹 경영을 장악해가면서 이것이 자칫 오너4세들과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

그도 그럴 것이 4세들 또한 빠른 속도로 경영일선에 나서며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2선으로 물러나는 분위기였던 박용만 부회장 재 등극이 반가울 수많은 없다는 얘기.

더욱이 박용만 부회장은 용곤, 용오, 용성 형제들과는 이복. 즉 4세 경영의 주인공으로 점쳐지고 있는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에게도 역시 '반쪽' 숙부라는 얘기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박용만 부회장의 급부상과 이를 둘러싼 오너 4세들의 견제 가능성을 점치며 이것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지는 않을까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 7일 박용만 부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과 함께 계열사 임직원 250명을 이끌고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지주회사 '두산중국투자유한공사' 창립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두산그룹은 중국 지주회사를 통해 오는 2010년까지 중국 매출 10조원을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형제의 난'으로 받은 비난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오너 3세들의 해외 순방길에 우려의 시각도 있었지만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두산 11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지주회사를 만다는 데 안 가볼 수 없다"며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이 자리의 실질적 주인공이 박용만 부회장이었다는 것.

박용곤 명예회장은 단순히 두산 가 윗어른으로서의 참석일 뿐 이미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난 상태고 박용현 이사장 또한 경영과는 거리가 먼 인물.

때문에 재계에서는 박용만 부회장이 이처럼 비즈니스 현장을 챙기며 공개된 자리에 나서는 것을 두고 '형제의 난' 이후 내부적으로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해 오던 두산이 박용만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개편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추측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건과 관련해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박용성 전 회장은 최근 (주) 두산이 외국인 CEO를 영입하는 등 빠르게 글로벌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 "두산그룹 경영에 관련된 것은 박 부회장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내부에서도 박용만 부회장 중심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복형제, 태생적 한계 벗고 경영권 장악

1955년 서울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용만 부회장은 지난 77년 외환은행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띠었다.

두산가의 일원이었지만 다른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는 박승직 초대회장의 뜻이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재계에서는 또 다른 추측이 있었다.

이는 박용만 부회장의 태생적 한계와 관련된 것.

고 박두병 회장은 부인 명계춘씨와의 사이에서 6남1녀를 둔 것으로 돼 있다.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 용오, 용선, 용현, 용만, 용욱, 그리고 외동딸인 용언씨.

이 가운데 박용만 부회장과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만 이복형제. 때문에 이 두 사람은 두산가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초 당시 박용곤 명예회장의 부인인 이응숙씨가 중심이 돼 두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은행을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떠난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82년 두산건설에 입사해서 동양맥주, 두산식품, 두산음료 등 그룹 계열사들을 거치며 두산가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지난 96년부터는 그룹 핵심부서인 기획조정실장을 맡으면서 오비맥주 매각과 두산중공업 인수 등을 주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용만 부회장은 이 같은 공로로 지난 98년 ㈜두산 전략기획본부 대표이사 사장, 2002년 ㈜두산 총괄사장, 2005년 1월 ㈜두산 부회장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그룹 내 영향력을 높여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형제의 난'에 휘말리며 (주) 두산의 부회장직에서 퇴진, 그룹 경영일선에서 한 발 짝 물러나야 했다. 올해 3월 두산이 박용만 부회장의 (주)두산 이사후보 선임을 추진하려고 했을 때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와 여론의 집중적 비판이 쏟아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두산가 오너3세들이 경영체제를 놓치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조의 얘기들까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박용만 부회장은 사내이사 후보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주)두산 대표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박용만 부회장 역시 윗 형들과 마찬가지로 그룹 경영 2선으로 물러나며 두산가 오너3세 시대는 막을 내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박 부회장 중심으로 그룹 대형 M&A 추진

그러나 최근 박용만 부회장의 행보는 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 실제로 두산이 최근 그룹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형 인수합병의 중심에도 역시 박용만 부회장이 서 있다.

지난 6일 두산은 발전소 핵심설비인 보일러 설계, 엔지니어링 등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쓰이밥콕을 인수했다. 이에 앞서 연합캐피탈을 인수했고, 종가집 김치를 매각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향후 현대건설과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도 뛰어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미국 담수 원천기술업체, 지난 6월에는 루마니아 발전설비업체를 각각 60억원, 145억원에 인수했고, 1천360억원을 투입해 베트남에 대규모 중공업 생산공장을 설립키로 했다.

이와 같은 두산의 대형 M&A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로 박용만 부회장의 직속기구인 '트라이씨(Tri-C) 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서울 두타 본사에 20여명의 맥킨지 출신들로 구성된팀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M&A 정보를 수시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그 중심에 서 있던 맥킨지 한국대표 출신인 제임스 비모스키가 (주) 두산의 부회장 겸 CEO로 취임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두산은 재정경제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국장 출신인 이종갑씨를 그룹 계열사인 삼화왕관 CEO로 영입했다. 삼화왕관은 금속. 플라스틱 병마개 생산, 판매업체로 이 분야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부동의 1위 업체.

신임 이 부사장은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 과장과 교육인적자원부 국장, 재경부 국장을 역임했고 올해 재경부 국장을 그만둔 뒤 최근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삼화왕관은 그동안 국세청 퇴임인사들이 주로 임원으로 앉아 왔었는데, 재경부 출신인 이 부사장이 CEO로 오면서 업계에서는 이런저런 추측들이 많았다.

재계는 경영권을 둘러싼 오너 일가의 비리와 대우건설 인수 좌절 등의 아픔을 겪었던 두산이 사법부에 이어 경제관련 부처와의 관계 강화 차원에서 이 부사장을 영입한 것 아니냐고 풀이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부사장 영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박용만 부회장이라는 후문. 박용만 부회장과 이 부사장은 미국 보스턴대학교 동문으로 박용만 부회장은 지난 82년 보스턴대에서 MBA를 받았고, 이 부사장은 85년 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형제의 난'의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박용만 부회장이 고위공직자 출신 관료를 그룹 인사로 영입한 것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오너 3세 박 부회장 경영권 장악... 또 다른 불씨 예고?

이런 가운데 두산 내부에서는 오너 4세들 또한 빠른 속도로 경영일선에 포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을 비롯,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그 중심.


그런데 상황이 오너 3세이자, '이복'인 박용만 부회장의 세력확대로 옮겨가면서 이것이 곧 4세들의 견제심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박용만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이복형제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의 삼화왕관 인수설 역시 끊이지 않고 있어 향후 또 다른 변수가 될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날 만큼의 갈등 요소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애초부터 표면상으로만 봉합된 오너 3세의 분쟁이었던 만큼 불씨가 상존해 있고 여기에 4세들이 경영 핵심으로 진입하면서 분쟁의 소지는 여전하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한편 향후 두산을 이끌 4세 가운데는 '장자 승계 원칙'인 두산가의 전력을 봤을 때 박정원 부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속단할 수만은 없다. 4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박진원 상무의 행보 또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 여기에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인 지원씨와 박용성 전 회장의 차남 석원씨, 박용현 이사장의 아들인 태원, 형원씨 역시 조용히 경영전면에 부상하고 있어 복잡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권민경 기자 <kyou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