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정치판 확 뒤집는다

한나라 “이러다 진짜 하야하면?” 주판알 놓고 고심

2007-12-06     최봉석 기자

회사 사장이 임직원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너무 힘들어서 사장을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누가 그만둬야 할까. 사장이? 아니면 임직원이? 아니면 회사 직원들이?

그런데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정말 회사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을 지경이 아니라면, 사장의 이런 발언에 대해 전 직원들은 사장이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푸념을 한 것 정도로 받아들일 경향이 높다. 그래서 “열심히 해보자”라고 새로운 결의를 하는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임기를 다 안마친 첫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일부 언론들은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 발언을 ‘하야의사’로 단정지었다. 그리고 이 언론들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라고. 사실의 전달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사실화하기 위해 일부 언론들이 안간힘을 쏟아 부었던 형국이었다.

언론은 그렇다치더라도 정치권도 ‘하야’를 위한 배에 기꺼이 탑승했다. 정치권은 ‘하야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반적인 관측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곧바로 ‘임기중단’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는 평이었는데도, 대통령의 하야가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을 정치권은 속사포처럼 쏟아냈다.청와대가 하야 가능성에 대해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국 환경이 지속될 경우 남은 임기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단정을 지었고, 지속적으로 하야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당장 하야할 것을 촉구했다. 오죽했으면, 탄핵사태의 주역인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통령의 하야를 만류하고 나섰을까.노 대통령의 임기 관련 발언이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개혁입법,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반응부터 시작해, 현 국면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것일 뿐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또 향후 정계개편을 겨냥,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의도’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단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지난 달 29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임기를 다 못채우는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이 동시에 있는 것으로 봐서 하야를 하겠다는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본다”고 하야 가능성을 일축하며 급한 불을 껐다.

청와대 “하야 가능성 없다” 일축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청와대측에서 나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대변인’이거나, ‘청와대 관계자’의 입장일 뿐,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피로감’ ‘답답함’ ‘푸념’ 등 다양한 단어를 통해 대통령의 발언은 ‘진짜’가 아니라 ‘거짓’에 가깝다고 항변했지만, 국민은 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해하고 있다.

청와대측의 반응처럼, 대통령이 정말로 하야 의사가 없다면 이 문제는 조용히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정가에 떠돌고 있는 말처럼 ‘대통령의 하야 발언은 정치권의 안주거리’정도? 그러나 노 대통령이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만약 노 대통령이 정말로 모종의 액션을 취할 경우 정치권이 쏟아내는 다양한 분석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공은 한나라당으로~’라는 답이 정치권을 뒤흔들어놓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노 대통령이 정치권에 구체적인 시한을 던져주고 국방 및 사법개혁 법안과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주지 않을 경우 ‘임기를 중단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하고, 한나라당이 이 같은 대통령의 요구를 묵살할 경우 한나라당은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된다.
물론 높은 지지율이라는 현재의 한나라당 분위기로 봐서는, 대선을 조기에 치르더라도 오매불방 바라왔던 권력을 차지하는 수순으로 갈 확률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통령 하야시 한나라당은 대혼란

그러나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유력 대선주자가 포진한 한나라당은 조기 대선 국면이 될 경우, 제대로 경선준비가 안돼 있는 주자들 간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오고 자칫 당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구태정당’으로 또다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다. 즉, ‘대통령 임기중단=제2의 탄핵역풍’으로 정리돼, 한나라당에게 만에 하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이런 까닭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내년 대선까지 염두에 둔 ‘승부수’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그래서 “임기를 채우라”는 쪽으로 의견을 통일하고 있으며, 한발 나아가 노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문제는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딜레마’다. ‘대통령의 임기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공식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난 4년과 달리 노 대통령이 원하는 국정협조 요구안을 모두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승리라는 ‘고지’가 눈앞에 있는 한나라당은 이번에 대통령에게 밀리면 앞으로도 계속 밀리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이런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노 대통령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국 대통령이 하야를 할 경우,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것 역시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보장 또한 없는 상황이다.결국 이 같은 정가의 분석이 맞아 떨어질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하야’언급은 그야말로 한나라당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기 위한 고도의 승부수로 해석될 소지가 높다. 사실상 하야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청와대 참모 A씨의 경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야에 대한 논의는 일체 없었다”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야 발언은 책임성에 기초한 발언

청와대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란 직책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준비가 필요한 자리”라며 “대통령의 하야발언은 객관적 상황과 대통령의 책임성에 기초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이 난관을 헤쳐나가기 우해 권위주의적 방식을 동원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대통령은 이런 방식보다는 하야를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 폐해를 적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인과관계가 어찌됐든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율은 40.0%에서 34.3%로 소폭 하락한 반면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13.6%에서 13.7%로 0.1%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지난 11월 14일 11.0%에 비해 3.0% 포인트 오른 14.0%로 조사됐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국정혼란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지지도가 일시적으로 소폭 오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문제는 노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며 국정을 압박해왔던 한나라당에 부담이 되는 여론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푸념’을 했고, 덕분에 ‘지지율’이 상승했다. ‘희망’을 잃어버린 여권의 입장에선 차기 대선 승리에 대한 ‘희망’이 생긴 형국이다. 때문에 노 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가급적 대통령직을 유지하며 남은 임기 국정운영을 하고 싶지만, 원치 않는 하야를 감행할 것인지 여부는 오로지 정치권에 달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