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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김시은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8.15 광복절을 전후로 형이 확정된 재벌 총수들의 이름이 특별 사면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광복절 특별사면이 어느새 특권층에 의한 특혜사면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지난해 말에 이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4단체가 요청한 사면 대상자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고문,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 회장,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체로 추징금을 피해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이다.
최근 50여개 단체들은 8.15특별사면이 부패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잔칫날이 됐다며 양심수의 사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매일일보>은 재벌총수에게 맞춰진 광복절 특별사면의 허와실을 취재해봤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에 이어, 이학수 고문까지 삼성 가려운 부분 긁어주는 정부
부패범죄자에게 면죄부 주는 잔칫날, 계층간 위화감 조성 친서민 정책 물 건너
언제가 부터 특별사면 대상자에 기업인이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다. 기업인에 대한 정부의 특별사면 취지는 ‘경제활성화’와 ‘경영복귀를 통한 경제기여’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는 정부가 수차례 특별사면을 거치며 퇴색되고 있다. 이렇다 할 명분 없이 관행적으로 형사사법절차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이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각에선 부유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만 편향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기업인, 그것도 대기업 총수에 대한 특별사면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으로 본 특별사면의 나쁜 예?
‘유전무죄, 무전유죄’ 특별사면의 가장 대표적 케이스로 꼽히는 것이 바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은 배임·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불과 5개월만인 지난해 12월에 사면됐다. 경제인 1인 단독 사면, 그야말로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전에 사면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사면의 주된 이유는 IOC 회원인 이 회장을 복권시키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정재계 쪽에서는 ‘경제위기 극복’과 ‘재계 사기 진작’등 다른 이유도 만들었다. 일각에선 정부와 삼성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세종시 문제 등과 관련해 앞으로 삼성측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과 이 회장의 경영복귀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었고, 그러한 예측은 이 회장이 지난 3월 삼성전자에 복귀하면서 절반은 들어맞은 셈이 됐다. 그런데 최근 삼성의 주요 인사들의 이름이 특별사면명단에 포함돼 또 다시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경제4단체가 요청해 사면논란을 일으켰던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과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과 김인주 전 삼성전략기획실 사장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고문과 김 전 사장은 지난해 8월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발행사건에 연루 배임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복귀 이후 그룹 차원에서 전략기획실과 같은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의 조직개편안이 여러 차례 보고됐지만, 이 고문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아 계속 유보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삼성의 가려운 부분을 정부가 긁어준 셈이 됐다. 이번 사면으로 형이 모두 소멸된 이 고문이 부담감을 덜면서 조직개편설은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특히 이 고문과 김 전 사장 외에도 최광해 전 삼성전자 부사장과 김홍기 전 삼성SDS 사장까지 사면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거꾸로 삼성이 민망해하는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경제인사기 ‘업’ 대국민사기 ‘뚝’?
이 외에도 SK그룹 최태원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동아그룹 최원석 전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등 취임 후 법치주의를 강조해온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사면대상자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비단 삼성뿐이 아니라 경제 비리를 저지른 기업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경영일선에 복귀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덮어놓고 비난만 할 수는 없는 노릇. 반박 성명을 쏟아내는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야당과 달리 해당기업과 경제인들은 대체로 이러한 분위기를 환영하고 사면대상자를 매년 청와대에 청원하고 있다.
사면조치가 우리 사회의 화합은 물론 경제 활력 회복과 기업인의 사기 진작, 더 나아가 투자확대와 고용창출, 새로운 시장개척 등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죄지은 기업인이 사면했다고 경제가 살아났을까. 정부는 매년 기업인들을 사면하면서 경제활성화 또는 경영복귀를 통한 경제기여 명분을 반복적으로 제시했지만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지적이다. 기업인들의 탈법 행위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 경제에 고스란히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불법과 탈법 행위로 인해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대부분 죄질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적어 사법적 형평성을 기하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경제단체들은 반성이나 개선의 노력은 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특별사면을 요청하고 있다. 대상자 일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단 궤변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도 한다. 결국 정부는 경제인 사기를 올리려다 대국민 사기를 뚝 떨어트릴 모양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다 치루지 않은 만큼 재발의 위험도 높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업인들을 특별사면 할 때 특별사면을 배제할 때와 똑같은 원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계층간 위화감 해소나 투명한 공동체 건설, 투명한 경제 질서 기반 구축 등을 배제 대상자로 거론하면서도, 막상 특별사면 된 기업인들은 이러한 배제원칙과 거리가 먼 인물들을 선정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법적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는 물론, 일부 특권층에 국한되는 ‘무전유죄’사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주창하는 친서민 정책을 제대로 펴길 원한다면 이번 특별사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