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현대家 역사의 산실 '계동사옥'

2010-08-16     허영주 기자
[매일일보비즈] 지난 10일 서울시와 벌인 역사문화지구 지정 취소 소송에서 패한 현대家의 계동사옥은 1983년 10월부터 현대그룹의 총본산 역할을 해 온 곳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도 생전에 계동사옥을 가리켜 “이곳이 세계경제를 이끄는 중심지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할 만큼 애착을 보였다.

현대 계동사옥은 현대 그룹의 계열사와 조직, 임직원이 급속히 팽창하던 1983년 경영효율과 비용 절감을 위해 새로 지은 사옥이다. 지하 3층 지상 14층의 본관과 8층의 별관이 ‘┛’ 자 형태로 구성된 건물이다.

총 15층이지만 13층이 없기 때문에 층수로는 14층이다. 맨 위층인 15층은 정 명예회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계동사옥 15층이 현대그룹을 상징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사옥 입구 왼쪽에는 가로 2.5m, 세로 1.8m 크기로 ‘現代’라고 쓰인 큼지막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현대그룹을 상징하는 이 표지석은 1983년 세워진 이후 20년간 현대의 총본산임을 표시했었다. 그러나 2000년 3월과 5월 현대그룹경영자협의회를 이끌던 정몽구 현대차회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이른바 ‘왕자의 난’ 이후 치워졌다가 2008년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됐다.

표지석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업한 현대그룹의 연혁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현대건설 사장 취임 기록과 현대건설의 역사도 간략하게 새겨져 있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좌장임을 은연중에 암시한 것이다. 그룹의 영욕의 세월을 묵묵히 바라보던 표지석에서도 현대가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긴 셈이다.

광화문 사옥에서 1970~80년대 건설 신화를 이룬 이후 계동 시대를 열면서 사실상 현대그룹이 일취월장해 왔다는 점에서 현대 사람들은 계동사옥을 가리켜 ‘현대의 영광을 대변하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런 애정이 담긴 건물이다 보니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자구책을 발표할 때도 이 빌딩의 매각만큼은 막판까지 미루다 2001년 현대차그룹에 매각하게 된다.

현재 계동사옥의 실질적 주인은 현대차그룹이다. 전체 14개 층 중 15층을 포함해 10개 층을 확보하고 있다. 나머지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모비스가 각각 11~12층, 5~6층을 소유하고 있다. 8층짜리 별관은 현대건설 소유다.

하지만 왕자의 난 이후 계동사옥은 뒤숭숭한 역사의 현장으로 자리하게 된다. 당시 경영권 다툼에서 패한 정몽구 회장이 그해 말 현대자동차 본사를 서울 양재동으로 옮기면서 계동사옥은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흘렀다고 한다.

'왕자의 난' 10년, 갈라진 현대家

올해가 이른바 왕자의 난이 있은 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 난을 거치며 한국 최대 재벌이었던 현대그룹은 현재의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몇 덩어리로 갈라졌다.

이 난이 가져온 것은 그룹의 해체뿐만이 아니다. 이듬해인 2001년 3월 21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고, 왕자의 난 주역인 정몽헌 회장도 5억 달러 대북송금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4일 영욕의 세월을 함께한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정몽헌 회장의 자살 이후 현대가는 더더욱 심각한 내분을 겪게 된다. 남편에 이어 현대그룹 경영을 맡은 현정은 현 회장은 2003년과 2004년에 정상영 KCC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두고 지분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올 초 연지동에 새 사옥을 마련하며 심기일전한 현대그룹은 그러나 최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며 계열사인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이 사실상 좌초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는 주력인 해운업 호황 속에 갑자기 터져나온 외환은행발(發) 재무구조개선약정 논란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있다.

정-현 회장, 현대건설 인수 둘러싼 신경전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새로운 싸움도 시작됐다. 지난 11일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앞세워 현대건설 인수를 공식화했고,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한 범현대가도 이에 반격하기 위해 최근 인수 자문사를 선정하는 등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군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현대가의 적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여서 인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현대건설을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계동 사옥의 지분도 달라진다.

반면 최근 들어 일부에서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한 범현대가 컨소시엄에 현대그룹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이 경영하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6%를 현대상선에 넘기는 것이다.

현대건설을 두고 가족간 치열한 다툼을 벌이지 않고 양측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서로 현대가의 적통성을 주장하는 상황이어서 현대건설을 쉽게 놓을지는 미지수다.

때마침 16일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인 고 변중석 여사의 3주기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자택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범현대가 인사들이 모두 집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계동사옥의 터줏대감 격인 현대건설 인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두 회장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혜안이 나올지, 아니면 신경전만 가열되어 간극이 더 벌어지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휴사=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