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 깃발, 그 인기없는 깃발이여~
당 사수파 결사항전으로 통합신당파 발목…쉽사리 탈당 불가능
2006-12-09 최봉석 기자
열린우리당 내 통합신당 논의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지던 지난 11월초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양심세력과 신진 인사를 두루두루 모아 위력적인 신당을 만들겠다’며 통합신당에 대한 구상을 밝혔을 때만 해도 대세가 기울며 ‘일사천리’로 내달릴 것 같던 신당 추진이 예상대로 첫 고비인 ‘당 사수파’의 반발에 막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신당 추진에 반대하는 당 사수파, 즉 친노(親盧)그룹의 저항이 예상밖으로 거세다.
또 신당파와 당 사수파가 이처럼 힘겨루기를 하면서 당이 ‘자중지란’을 겪으며 신당파의 일부 대오가 흐트러지고 있는 것도 신당 논의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서신을 통해 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규정하며 제동까지 걸었다. 당 지도부는 노 대통령의 정치개입 자제를 촉구하며 즉각 반발했지만, 여당발(發) 정계개편의 핵심으로 꼽혔던 ‘통합신당’ 추진의 동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노 대통령에게 발목을 잡힌 것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비대위는 지난 6일 “내년 3월 이전에 전당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외견상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12월 국회가 진행되는 동안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전념하는 데 도움이 안되는 모든 상황을 반대한다”면서 “대통령의 입장이 있고, 당원들까지 나서며 문제가 확대되고 있는 있는데 국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래서는 안된다. 이럴 수록 국민은 우리에게 더욱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당 지도부는 앞서 5일 ‘정계개편 설문조사’를 전격 연기키로 결정했다. ‘전당대회 개최’와 ‘설문조사 연기’는 당 사수파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사안이다.이에 따라 친노그룹 등 당사수파는 “현 지도부가 당원들의 압력에 못이긴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쨌든 통합신당파가 당의 진로에 대해 나중에 논의하겠다며 속도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당 사수파가 ‘강력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 소수다. 그러나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천.신.정’의 한축인 신기남 전 의장을 포함해 김혁규, 이광재, 이화영, 백원우, 서갑원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노 대통령과 교감하며 ‘당 사수’를 외치고 있다. 친노그룹은 약 40여 명으로 추산된다. 당내 100여 명의 의원들이 통합신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다.그럼에도 이들은 통합신당파에 대한 공세수위를 갈수록 높이며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상대측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백원우 의원은 지난 7일 ‘한 초선의원이 당의장님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공개서한을 통해 김근태(金槿泰) 의장의 전력을 문제 삼으며 통합신당론에 기운 김 의장의 자세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김근태 비난 목소리 높아져
백 의원은 “김 의장은 몇 번의 중요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의 시기마다 숫자가 많은 편에 서거나 망설이면서 흐름을 놓쳤고 항상 안전해 보이는 다수 군중 속에 숨거나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통합신당론 허구론마저 꿈틀
통합신당론에 대한 ‘허구론’도 당내에 확산되면서 신당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여당내 한 관계자는 “통합신당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당 사수파에 비해 명분도, 실리도 없을 뿐더라, 향후 전망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극도로 어두울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덩달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역시 하락하면서 여당 내에서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조속히 통합신당파를 만들려 하고 있을 뿐, 즉 ‘노무현이를 반대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통합신당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공통분모’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대주주들인 김근태와 정동영은 실제로 지나온 삶의 이력도, 주장하는 노선도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갖고 있다”면서 “일단 통합신당파는 정책과 가치라는 측면에서 이미 한 배를 탈 수 없는 세력들의 인위적 결합을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이 같은 흐름은 통합신당파 의원들 사이의 동요로 나타나고 있다.통합신당파 소속 한 의원은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통합신당파가 100여명에 이르지만 쉽사리 탈당을 결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직까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신당 창당의 명분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고, 이에 질세라 노 대통령도 신당을 ‘지역당’으로 평가절하해서 동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정치권 일각에서는 현재 통합신당을 ‘서부벨트 복원’쯤으로 비판하며 평가를 절하하고 있는 추세다.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로 민주당’이라는 것이다.통합신당은 도로민주당
이와 관련 여당 한 관계자는 “통합신당이 도로민주당이다, 호남당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는 ‘뚜렷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영남을 한나라당이 독점하는 정치구조에서 통합신당이 기댈 것은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상황이 이렇게 흐르면서 김근태 의장계와 정동영 전 의장계는 당내 최대 계파를 자랑하며 통합신당을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 사수파에 의해 외견상 목소리가 갈수록 낮아지는 형국이다.신당파와 당 사수파가 현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의 해체여부, 전당대회의 성격과 의제 등을 놓고 기싸움을 계속하며 팽팽반 공방전을 계속 벌이고 있지만, 신당파가 한발짝 물러서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신당파측은 비대위가 전대개최를 수용함으로써 당 사수파로부터 밀리고 있다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 “잘못 본 것”이라며 전당대회에서 정면승부를 할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당파인 양형일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계개편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며 “일단 정기국회에 전념해 예산안을 처리한 다음에 하겠다는 것이므로 ‘꼬리를 내렸다’는 식의 해석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 사수파에 대한 신당파의 견제는 멈추지 않고 있다. 신당파의 분위기가 180도 변화된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계로 분류돼온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최근 통합신당파와 친노그룹으로 분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정 전 의장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있다.통합신당론, 인기없는 카드
김근태 의장의 태도도 변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과거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거침없이 제기한 것과 달리, 최근에는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피하고 있다.그러나 당 지도부는 기간당원제를 폐지함으로서 전당대회에서 통합신당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본 포석을 깔아놨기 때문에 내년 예산국회가 끝나는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전대 의제와 일정 등을 확정해 나간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당 사수파와 정면대결을 준비하고 있다.실제로 친노 진영을 주축으로 한 당 사수파가 지난 10일 대규모 당원집회를 열어 당 지도부의 설문조사에 반대하는 실력행사에 나서자, 통합신당파가 포진한 지도부 역시 같은 날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소집해 설문조사 추진계획을 확정짓는 등 대세 굳히기에 돌입했다.어쨌든 청와대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에 대한 당 사수파의 사퇴압력과, 통합신당파에 대한 친노세력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통합신당 논의가 발목을 단단히 잡혔다. 이대로 지지부진해질 경우,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상황도 도래할 가능성도 높다. 설상가상으로 통합신당파 내부에서는 “신당을 만들어도 절대 집권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통합신당론은 여당 내에서 “인기없는 카드”로 전락할 소지가 높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