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호로 손꼽히는 (주)아모레퍼시픽(구 태평양)의 서경배 사장이 어린 딸에게 주식을 증여해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 사장은 지난 7일 자신이 보유 중이던 아모레 퍼시픽 우선주 20만1488주 전량을 중학생인 딸 민정(15)양에게 증여했다. 이에 따라 민정 양은 538억원 상당에 달하는 우선주 지분 19.08%를 보유하게 됐으며, 보통주를 포함해 아모레퍼시픽 전체 지분 중에서 2.92%를 소유하게 됐다. 비록 우선주이긴 하지만 5백억원대의 주식을 미성년자인 딸에게 갑작스럽게 증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현 시점이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올라 세금 부담이 큰 상황이라는 것. 보통 주식증여는 막대한 세 부담 때문에 주가가 낮은 시점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모레 퍼시픽 주가는 지난 9월 이후 꾸준히 상승해 우선주는 지난 8일 26만원에 장 마감했다. 보통주 역시 지난 9월 30만원대에서 이달 50만원대로 치솟았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굳이 서 사장이 지금 상황에서 증여를 단행한데 대해 이런 저런 추측을 내놓고 있다. 현행 상속세법상 30억원이 넘는 상속액에 대해서는 세율50%를 적용한다. 6일 종가기준으로 증여한 주식총액이 538억원이니, 250억원 가량의 증여세를 내야한다는 얘기. 서 사장이 이날 증여한 지분의 총액은 올 들어 증여를 실시한 상장사 중 신세계와 삼성전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만약 지난 9월 아모레퍼시픽 우선주가 20만원 미만이었던 시점에서 증여를 했다면 주식총액은 400억원대로 약 50억원의 세금을 절감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왜 하필 지금 시점에 굳이 서 사장이 증여를 결정했는지에 의아해하고 있다. 더욱이 서 사장이 아직 40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라 후계구도를 논하기에도 지나치게 빠른 시점이다. 3세에 주식 증여... 경영권 안정 차원?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증여가 후계구도를 위한 기반 마련 차원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즉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라 당장 경영권 승계 등이 거론되지는 않겠지만 배당을 확대해 실탄을 확보해 두지 않겠는냐는 추측이 가능한 것. 다만 민정양이 아직 나이가 어려 후계작업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진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각에서는 이번 서 사장의 증여에 대해 3세에게 미리 주식을 넘겨 경영권을 좀더 안정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과 태평양은 최대주주인 서경배 사장의 지분율이 각각 25.39%와 26.53%로 높은 편이긴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 또한 40%를 넘는다.
이에 대해 아모레 측 관계자는 "증여와 관련된 부분은 최대주주의 개인적 뜻이라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면서도 "이를 후계구도와 연관짓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설명했다.
서 사장이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고, 민정양 또한 중학생 어린 나이기기 때문이라는 것.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증여를 결정했다는 추측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물론 아모레 측이 외40%에 달하는 외국인 지분이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좀 더 안정시키고자 하는 뜻은 있었을 것이다"면서 "하지만 현 상황이 경영권 방어가 필요할 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섣부른 추측은 내릴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서 사장의 장녀인 민정양은 이번에 우선주를 대거 증여 받으며 한국 100대 재벌가의 미성년자 주식부호 1위로 올라섰다. 민정양은 증여받은 아모레퍼시픽 지분 뿐 아니라 외가인 농심홀딩스 주식1만320주(6일 종가기준 9억원)를 갖고 있어 보유주식 총액이 543억원에 달한다. 민정양의 어머니 신윤경씨는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의 막내딸로 신 회장이 민정양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현재 민정양은 스위스에서 유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장남 서영배 회장, 태평양 지분 전혀 없는 이유?
한편 눈길을 끄는 것은 서 사장의 친형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의 행보다. 태평양의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은 부인 변금주씨와의 사이에 영배, 경배 형제와 송숙, 혜숙, 은숙, 미숙 등 4녀를 두고 있다. 서 창업주는 애초부터 금융, 건설부분은 장남 서영배 회장에게, 차남인 서 사장에게는 화장품 부문을 맡겼다.
서 회장은 지난 82년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도쿄 및 뉴욕 지사를 거쳐 태평양증권 부사장 태평양종합산업의 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IMF 등으로 인해 경영이 여의치 않게 되자 금융계열사가 정리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태평양개발을 연매출 1천억원대의 중견업체로 키워 일가를 이뤘다.
그러나 서 회장은 지주회사격인 태평양과 사업부문인 아모레퍼시픽의 주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애초에 맡은 사업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창업주의 장남으로서 그룹의 지분이 없다는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실제로 서 사장의 누이들은 모두 태평양과 아모레퍼시픽의 주식을 일정 부분 보유하고 있지만 서 회장과 그의 자제들은 여기서 제외됐다. 이와 관련해 아모레 퍼시픽 관계자는 "서 회장 가족들이 지분 보유가 전혀 없는 이유는 아는 바가 없다"면서 "다만 창업주가 사업을 물려줄 당시부터 분리가 돼 있었고, 현재는 서 회장이 태평양 개발 쪽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