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격노’한 이유 있다
고건 전 총리에 “실패한 인사” 발언에 김근태, 정동영 “니들도 아니야”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1일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를 지낸 고건 전 총리에 대해 “실패한 인사다.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였다”고 말하면서 정치권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에서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 그 (사회지도층)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고 총리를 기용했었다”며 “하지만 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가 됐다”고 주장했는데, 정국에 이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용산기지 이전, 전시작전통제권, 국방개혁 등 참여정부 외교·안보·통일 현안에 대한 평소의 소회를 밝혔는데,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들 상당수가 ‘독설’에 가깝다는 평이어서, 청와대가 정계개편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평을 낳고 있다.
물론 직설적이고 핵심을 바로 찌르는 그간 노 대통령 특유의 ‘직설화법’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말’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되며 ‘화제거리’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 정국에서 ‘노 대통령 역할론’이 본격화됨과 동시에, 고 전 총리 흠집 내기를 위한 의도적 발언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열린우리당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함께 고건 전 총리의 영입을 시도하고 있는 중인데, 특히 당내 상당수 의원이 고 전 총리와 함께 가는 통합신당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통합신당파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노 대통령으로서는 고 전 총리를 기용했지만 결국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른바 ‘인사실패’ 발언을 통해, 고 전 총리를 유력한 차기주자로 간주하고 있는 신당파의 몸부림을 억누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신당파의 기세 꺽는다
열린우리당은 현재 당의 진로를 놓고 당 사수파(친노파)와 통합신당파가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통합신당파쪽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고, 고 전 총리는 ‘내년 3, 4월쯤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흠집낸 이유가 ‘통합신당파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이날 발언에서 여당 내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도 ‘불만의 대상’에 넣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고 전 총리에 대해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가 제가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하고 비슷한 수준”이라며 “링컨 대통령 책에 오래 오래 남고 남들이 연설할 때마다 그 분 포용인사 했다고 인용했는데, 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고 말했다.
대통령 발언은 자가당착 반박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보건복지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으나,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형성하며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핵심인물로 변신, 연일 노 대통령에게 독설을 퍼붓고 있다.
결국 고 전 총리에 이어, 정 전 의장과 김 의장에게도 ‘통합신당을 만들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투의 경고성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고 전 총리는 22일 개인성명을 내고 “대통령 발언은 자가당착이며 자기부정”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고 전 총리는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면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외면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국정을 전단(專斷)한 당연한 결과”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된 지 14시간 만에 강경한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냈는데, 그의 이 같은 발빠른 대응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향후 정계개편에 미칠 영향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범여권 후보로 위상 흔들린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고 전 총리가 햇볕, 포용정책에 대해 입장이 모호하다면서 고 전 총리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특히 통합신당파 내에서도 고 전 총리 영입 문제를 놓고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고 전 총리가 범여권 후보로서 자칫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발언에 그가 곧바로 강경한 대응을 보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