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카드는 안녕하십니까?”
카드 연체ㆍ도용 빙자 전화사기 극성…‘걸려들면 사기, 아니면 말고’
2007-12-26 송문영 기자
직장인 권모(27)씨는 며칠 전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카드 대금이 연체됐으니 빨리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평소 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던 권씨는 난데없는 연체금 얘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A은행 카드가 연체됐으니 불러주는 계좌로 즉시 카드대금을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권씨는 A은행 카드를 발급받은 적이 없었고, 결국 이 전화는 사기로 드러났다.
최근 이처럼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걸려들면 사기, 아니면 말고’ 식의 이른바 ‘낚시질 사기’가 기승을 부리며 개인의 신용을 위협하고 있다.
은행원 사칭해 ‘예금계좌 옮겨라’
주부 서모(64.광진구 구의동)씨는 지난 13일 황당한 일을 겪었다. 20대 여성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은행인데 카드로 350만원을 사용한 적이 있느냐. 도용된 것 같으니 빨리 가까운 은행 현금자동지급기(ATM)로 가서 예금을 다른 계좌로 옮겨두라”고 한 것이다.깜짝 놀란 서씨는 곧바로 인근 은행에 달려가 그 여성이 알려준 은행계좌로 두 차례에 걸쳐 모두 502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곧 연락을 주겠다던 여성은 더 이상 전화가 없었다. 서씨는 그때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경기도 부천에 사는 주부 최모(46)씨도 비슷한 피해를 봤다. 지난달 26일 자신을 B은행 전산실 직원이라고 소개한 상대방은 “제3자가 고객님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180여만 원을 사용했고 현재 연체중”이라며 “추가 예금 인출을 막기 위해 거래은행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최씨가 수상히 여기자 상대방은 “잠시 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나 금융감독원에서 전화를 할 테니 잘 따라 달라”며 친절하게 안내까지 했다.실제로 몇 분 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라면서 전화가 왔고, “추가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카드 마그네틱을 새로 입혀야 한다”며 “거래은행 ATM기에 카드를 입력시키면 보안성이 강화된 카드를 바로 발급해주겠다”고 말했다.예금이 인출될까봐 걱정된 최씨는 은행으로 달려가 ATM기에 카드를 읽혔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인 명의로 된 계좌에 돈을 이체하는 것이었고, 최씨는 속절없이 예금 1,000만원을 날리고 말았다.카드도용 빙자해 개인정보 빼내기도
그런가하면 지난 5일 광주 서부에 사는 회사원 이모씨(39)도 금융사기단에 속아 2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날렸다.이씨는 사무실에서 주로 거래하는 C은행 콜센터로부터 “노트북을 구입한 적이 있느냐”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고, “누군가 신용카드를 도용해 사용한 것 같으니 경찰에 연락하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놀란 이씨는 “추가피해를 막기 위해 카드를 확인해야 한다”는 상대방의 말만 믿고 은행 ATM기에 자신의 카드 정보를 입력했고, 그 순간 현금 190만원이 다른 곳으로 인출돼 버리고 말았다.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한 시민도 카드사 직원을 사칭한 사기전화에 깜빡 넘어갈 뻔했다.범인은 이 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사 직원인데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300만 원짜리 냉장고를 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런 적 없다”고 답하니 범인은 “당신 카드가 해킹돼 내일쯤 경찰청 특수부나 검찰청에서 연락이 갈 거다. 해결하려면 주민번호 뒷자리가 필요하니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다.왠지 수상한 느낌이 들었던 이 시민은 결국 주민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에 의뢰했고, 이 전화는 사기전화로 밝혀졌다.전화로 개인정보 요구하면 일단 의심
이처럼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전화사기를 막기 위해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데다 발신번호 추적도 쉽지 않아 수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에 금융감독당국은 지난 14일 국정브리핑을 통해 다음과 같은 주요 전화사기 수법을 공개했다.△금융회사 사칭: “카드(또는 대출금)가 연체되었다”, “신용카드로 구입한 물품의 대금결제가 잘못 되었다” 등
△검찰청: “사건조회에 필요하다”, “자금세탁 위반 등 범죄에 연루되었다”, “추가조사에 필요하다” 등
△경찰청: “사기사건에 연루되었다” 등
△금감위(원): “피해확대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