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사우나는 ‘범죄 백화점’

절도, 성추행은 기본, 취객은 갈수록 증가…청소년 싸움터로 전락하기도

2007-12-26     김종국 기자

온 국민의 휴식 공간, 찜질방. 노곤히 몸을 뉘어 쉬어야 할 그 공간이 최근 들어 ‘범죄 백화점’으로 전락하고 있다. 연말연시에 잦은 술자리로 취객들이 늘어난 데다 노는 토요일(일명 ‘놀토’)을 앞둔 청소년이 찜질방을 ‘점령’하면서 싸움, 절도, 성추행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과 찜질방 업주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시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한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었던 CCTV는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지난 4월 1일부로 철거된 상황이다.

한국에 대중목욕탕이 등장한 것은 지난 1905년, 그리고 80년대까지도 목욕탕은 그저 ‘때 미는 장소’였다. 그러다 매일 샤워를 하는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목욕탕은 이제 ‘종합놀이공간’인 찜질방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하지만 찜질방의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실례로 경찰들이 가출한 비행 청소년을 찾거나 범인을 검거할 때 PC방 다음으로 들르는 곳이 바로 찜질방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말연시를 맞아 전국의 찜질방은 취객들 난동에,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추행범에 몸살을 앓고 있다. 

술에 취해 서슴없이 엽기 행동…관리자 설득에도 막무가내

직장인 L씨(36ㆍ인천 계양)는 지난 20일 새벽 3시께 인근 A사우나에서 술에 취해 추태를 부렸다. 남녀 수면실이 분리되지 않은 찜질방에서 하의에 손을 넣거나 속옷을 벗으려 하는 등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이 업소 관리자 K씨(48)는 반바지를 올려주며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면 어떻게 하냐’고 타이르면서 ‘제발 집으로 들어가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만취한 L씨는 오히려 잠자는 손님을 건드린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렸다. 보다 못한 여자 손님이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을 보자 기세가 꺾인 L씨는 찜질방에서 조용히 도망갔다.지난 14일 밤 12시께 인천 남구의 B찜질방 남자 탈의실에서도 만취한 40대 남자 두명이 ‘씨X' '개XX' '쌍X'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손님들에게 퍼부으며 1시간 가량 소란을 피웠다. 이들은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상태에서 황토 사우나실을 이용하는 등  보는 이를 아찔하게 했다. 사우나를 마친 이들은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누워 잠든 이용객을 가로 지르며 30분가량 소란을 더 피웠다. 그러나 이날 그들과 함께 있었던 C군(20ㆍ대학생)은 “관리인의 제재도 없고 연말이라서 그런지 올 때마다 저렇게 술 취한 아저씨들이 한 두 분씩은 꼭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 부평경찰서 한 관계자는 “만취한 상태로 고온의 사우나를 이용하다가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니, 취객들의 입소를 철저히 막는 등 업소 측의 양심적인 관리ㆍ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CTV 없다는 점 악용, 범행대상 주 타킷은 ‘젊은 여성층’

또한 술 취한 손님들의 금품을 노리는 절도와 청소년 성추행도 심각한 지경이다. 올 한해 경기도 일대의 찜질방 절도사건만 2백여 건이 넘어 섰고 지방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제주경찰서는 지난 20일 찜질방 전문 털이범 L씨(32)와 K씨(32)를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3개월 간 6회에 걸쳐 135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온 이들은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찜질방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L씨 일당은 깊이 잠이 든 취객과 젊은 여성들의 현금, 카드, 핸드폰 등을 노려 절도행각을 벌여왔다.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찜질방 털이범은 CCTV가 없다는 점을 악용, 만취해 곯아떨어진 손님을 노리거나 제압이 쉬운 젊은 여성층을 주요 범행대상으로 삼는다”면서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열쇠로 옷장 문을 열거나 커터칼 등을 이용해 직접 문을 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한 제주의 D업소 주인도 “손님들의 불편을 최소로 하면서 녹화기능이 없는 CCTV정도는 탈의실 옷장 위에 설치하는 것이 수위를 높여가는 찜질방 도난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벌 되는 가해자, 딸 쯤 되는 피해자??

또 지난 11일 포항에 사는 찜질방 직원 J씨(58)가 10대 여성 손님을 강제로 성추행한 사실이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어린 나이에 끔찍한 추행을 당했던 열일곱 살 고등학생 L양은, 누군가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고 있어 화들짝 잠에서 깼다. 모두가 깊은 잠이 들었을 새벽 3시 40분께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조사에서 J씨는 “L양이 짧은 옷차림에 배까지 드러내 놓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욕정이 생겼다”고 진술했다. 실제, 국가청소년위원회(최영희ㆍ이하 청소년위)가 지난 19일 발표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공개’ 자료에 따르면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의 경우 가해자는 대부분 40대 중반이고 피해자는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드러났다.청소년위 한 관계자는 “청소년의 쉼터로 자리 잡은 찜질방과 사우나에서 강제추행이 해마다 증가(8.3%)하고 있다“면서 ”성 가치관과 위험요소에 대한 분별력이 부재한 아이나 청소년을 찜질방에 데리고 갈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러한 이유로 경찰과 찜질방중앙회는 인권문제로 철거된 CCTV를 찜질방 내에 다시 설치해 갖가지 범죄를 예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