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탄핵을 낙관하지 않는 이유
2018-03-07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면 ‘먹을 수 없는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99.9% 순도의 생수’에 0.1%의 독극물이 들어가면 그것은 생수가 아닌 ‘독물’이다.세상에는 물론 “난 재 뿌린 밥 먹을 수 있고, 독물 마셔도 끄떡없다”는 강력한 비위와 소화 해독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그게 ‘보통’이거나, ‘정상’은 분명 아니다. 대한한국 사회를 ‘보통’이나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10여년 전, 법조 출입 기자로 잔뼈가 굵은 한 선배기자는 “사회가 아무리 엉망진창이라도 언론과 법원만 제대로 정확하게 일하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어. 그런데 한국은 두 집단이 모두 엉망진창이네…. 희망이 안보인다”며 소주잔을 기울였다.그리고 2017년 현재,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의 폭발적 성장에 밀려 기성 언론매체 일반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정보 유통과 이슈 설정이라는 기득권을 가졌던 ‘언론’이 힘을 잃으니 ‘언로’가 열리는 역설적인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반면 사법시스템은 10여년전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30년 전인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분 퇴행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필자는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에 대해 큰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첫 계기는 2004년 헌법재판소의 조선시대 경국대전과 관습헌법을 근거로 한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이지만 이후 취재기자로서 보고 겪었던 여러 일들에 비하면 관습헌법 판결쯤은 애교 수준으로 봐줄 정도다.현장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할 때, 여러 재벌 대기업이나 국가폭력 사건의 관련 피해자들이 사법 시스템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가 1심에서 승소한 사건이 고등법원의 2심과 대법원의 최종심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좌절하는 모습을 번번이 지켜봐야 했다.독재정권 치하의 법원 판사들이 간첩조작 사건 재판에서 공안검사의 기소장 내용을 그대로 판결문에 베껴 넣었던 굴욕적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민주화 이후 시대에도 그대로 반복 재생산되어온 것이다.물론 대다수의 판검사들은 ‘정석’대로 성실하게 직무에 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이나 국가기관 같은 사회의 강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토씨하나 바뀌지 않고 검찰 기소장에 실리고, 그 내용이 다시 법원 판결문에 그대로 들어간 경우는 너무 많았다.재판에서 제시된 증거와 변론 과정의 법리 대결에 전혀 기반하지 않은 우격다짐을 판결문이랍시고 배설해내는 일부 상급법원 판사들의 판결문을 지켜볼 때마다 ‘도대체 이 고참급 법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이 사람에게 양심은 있나’하는 의문이 들고는 했다.독재시대 판사들은 ‘박정희 전두환의 서슬 퍼런 총칼과 군화발이 무서웠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21세기에 유사한 짓을 벌인 판검사들은 자신의 행동에 어떤 핑계를 댈지 잘 상상이 되지 않고, 혹여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죄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지금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론 발표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측 변호인단의 수준 이하 변론과 헌법재판관 및 헌재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무례하고 무도한 짓거리를 보면 인용 결정 가능성이 높고, 이를 확신하는 목소리가 세간에는 넘실댄다.헌재가 그동안 국민 여론과 인식 수준의 변화에 맞춰 판결해온 선례를 봐도, 80%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원하는 바와 같이 탄핵 인용 가능성이 기각 가능성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하지만 필자는 탄핵 인용에 대해 낙관하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헌재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자체에 별로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나아가 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최종결론을 국민투표가 아닌 헌재에 맡겨야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정치권에서는 현재 개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임기 내에 어떤 형태로든 개헌이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데, 개헌 내용에 사법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내용도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은 국민에게 돌려주는 등 헌재의 역할에 대한 조정도 있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