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회수 도난문화재 원소장처로 돌려보낸다
2018-03-13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은 대전지방경찰청과 공조수사해 회수한 부여 무량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 총 81점을 회수, 원소장처로 돌려보낸다고 13일 밝혔다.회수한 문화재 가운데 부여 무량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 제185호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의 해체 보수 중에 발견된 4구의 불상 중 하나로서, 이들 불상 4구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됐다가 1989년 7월 13일 전부 도난당한 바 있다. 이후 3구는 문화재청이 2001년 2월 절도범을 검거하면서 회수됐고, 인천 송암미술관의 신고로 나머지 불상 1구를 이번에 되찾게 됐다. 이 유물은 조선 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이 밖에도 경북 울진 불영사 불화 8점과 한필원 지석 등 19점, 전북 익산 김안균 가옥(전북 민속문화재 제23호) 현판 등 7점, 이민성의 문집인 '경정속집(敬亭續集) 목판' 등도 원래 있던 사찰이나 문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문화재청관계자는 "이번에 자발적인 제보와 기증을 하여 문화재 회수와 반환에 많은 도움을 준 ‘송암미술관’에 감사패를 수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1971년에 충남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해체보수 작업 중에 1층 탑신에서 발견된 금동아미타삼존불좌상 중 본존이다. 이 석탑에서 출토된 아미타삼존불과 관음보살(총 4구)은 충남 유형문화재 100호로 지정돼 있다가 1989년 7월 13일에 모두 도난당한 후(동아일보 1989.7.14.), 2001년 2월에 3구의 보살상만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을 통해 회수됐다. 이번에 회수된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33.5㎝로, 머리에는 높은 육계(肉髻)가 있고, 머리 전체에 소라 모양의 나발(螺髮)이 붙어 있다. 정수리 부분에는 원추형의 낮은 정상계주와 머리 중앙에 중앙계주를 끼웠던 자리가 파여 있다. 대의는 통견식으로 입고,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이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하반신에 걸친 대의 끝단이 중간에서 반전되거나 양 무릎 쪽으로 늘어져 있다. 대의안쪽에 입은 승각기를 묶은 끝이 가슴 밑에서 리본형으로 묶여있다. 이 불상은 고려 후기의 불상양식을 계승하여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울진 불영사 불화(시왕도)>
경북 울진 불영사에서 1989년 10월 23일에 도난당한 시왕도 7점과 사자도 1점이다. 시왕도는 명부전이나 지장전에 봉안되었던 그림으로, 두 폭이 한 쌍인 시왕도를 도난 후에 별개로 나누어 액자로 만들었다. 이 시왕도는 화기에 의하면 1880년에 서봉응순(西峯應淳), 만파정탁(萬波定濯) 등의 불화승이 조성한 작품이다. 이 시왕도와 같이 제작된 지장보살도와 관음도가 현재 불영사에 남아있다. 이 불화를 그린 서봉응순(西峯應淳)과 만파정탁(萬波定濯)은 19세기 후반에 경북과 경기를 무대로 활동한 대표적인 작가들이다<이정보 묘(李鼎輔墓), 한필원 묘(韓必遠 墓) 청화백자지석(靑華白磁誌石)>
한필원(韓必遠, 1578∼1660)은 조선 현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 자는 원이(遠而), 호는 도천(道川)이고, 좌승지(左承旨)를 지낸 한효중(韓孝仲, 1559∼1628)의 아들이다. 문과급제 후 관직에 나아가 병조참판·예조참판·도승지를 역임했다.이정보(李鼎輔 1693∼1766)는 이조정랑·함경도관찰사·비변사제조·도승지·형조판서 등을 역임했다.지석(誌石)은 그 기록을 통해 매장자의 가족 관계와 생전 활동, 당시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무덤 주변에 묻어두었던 신분증 용도로서 당대 지역사와 인물사 등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