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달 22일 1여 년 동안 잠자던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재벌계열 금융사가 5%를 초과해 계열사 지분을 금지토록 한 것으로, 97년 3월 이전에 취득한 5%초과분에 대해서는 2년 뒤부터, 이후 취득한 초과분은 즉시 의결권이 제한되게 된다. 이에 따라 삼성카드는 곧바로 에버랜드 지분 25.64% 중에서 5%를 초과한 지분 20.64%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 받게 됐고, 5년 내에 초과분을 해소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6%중에서 5%를 초과한 부분인 2.26%에 대해 2년 유예기간을 거친 후 의결권이 제한된다. 만약 삼성 측에서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금감위원장이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다. 개정안의 통과로 삼성은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의 지배구조는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생명, 전자, 카드, 에버랜드로 이어지고 있어 개정안에 따라 순환출자 고리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이자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을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와도 맞물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금산법 개정안의 취지에 따른 지배구조 개선의 순기능보다는 이것이 삼성을 경영권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먼저 내놓고 있다.
개정안 통과와 관련, 삼성은 일단 "국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금산법으로 인해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금산법 개정안이 시장경제에 위배되는 법안이라며 벌써부터 재개정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측에서는 삼성이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의 의결권이 제한됨에 따라 외국인과 국내외 투자자의 경영권 간섭에 휘말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재계와 삼성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금산법 개정안의 통과로 삼성이 적대적 M&A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삼성, 적대적 M&A 현실 가능성 얼마나?
삼성은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한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주식 13.3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삼성생명은 다시 삼성전자의 주식 7.26%를 보유, 삼성전자는 삼성카드의 지분 46.85%를 가지고 있다. 또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이처럼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이 소(小)지주회사를 이루도록 고리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순환출자고리의 핵심인 에버랜드의 개인최대주주가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라는 것. 그동안 일부 시민단체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 상무는 바로 이런 구조를 이용해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금산법 개정안으로 인해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일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로 이 점에서 금산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의 매각이 삼성 지배구조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의 강제 매각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의결권이 제한되면 이 회장과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배권이 흔들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특히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계열사, 임직원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16.09%에 불과하다. 이번 의결권 제한 조치로 삼성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13.83%로 더욱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49%에 달해 만약 이들이 경영권을 노린다면 제2의 SK 소버린 사태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의 공격에 노출됐던 KT&G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재계 전문가들은 금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지금 당장 삼성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삼성이 지배구조 변화를 꾀해야 하지만 현 상황에서 적대적 M&A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에버랜드가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외 총수 일가와 다른 삼성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70%에 육박한다. 금산법 개정안으로 20.64%의 지분을 처리한다 해도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낮다.삼성생명의 경우 삼성 측이 보유한 지분 16.20%에서 5%초과 지분인 2.26%의 의결권을 제외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13.83%로 줄어든다. 이 사실만 놓고 보자면 적대적 M&A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외국인 투자자 중 5%이상 지분을 확보한 외국인 주주는 시티은행(9.83%)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피델리티를 비롯한 투자펀드가 대부분이어서 일시에 적대적 M&A에 나설 가능성 또한 낮다. 특히 금산법 개정안은 외국인 투자자가 적대적 M&A를 시도할 경우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 지분의 의결권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정치권 일각 "금산법, 삼성맞춤형 법안" 비난
그런가하면 재계와 언론이 금산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번 개정안이 '삼성 면죄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금산법 개정안 표결에 앞서 열린 찬반토론회에서 "이번 개정안이 삼성 맞춤형 법으로 둔갑해 상정됐다"며 "의미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법"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심 의원은 "금산법 논란의 핵심은 처음부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초과지분 매각 문제였다"면서 "그러나 개정안에서 2년 간의 유예기간을 둬 삼성생명은 이 기간 동안 아무 시정조치도 취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욱이 왜 금산법을 개정하면서 부칙에 하위법인 공정거래법을 끌어들였는지를 따져보면 삼성을 위한 꼼수가 드러난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즉 여당과 한나라당이 왜 굳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서 금산법 적용을 받아야 할 삼성생명을 재벌규제 완화의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공정거래법 영역으로 넘기려고 하냐는 얘기. 실제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촐자총액제한제도를 포함해 의결권 제한까지 재벌개혁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안을 확정한 바 있다. 심 의원은 바로 이 점에서 "결국 금산법보다 약한 공정거래법으로 링을 바꾸려는 꼼수"라며 "따라서 이번 금산법 개정안은 삼성에 굴복한 법이다 아니 삼성을 위한 법이다"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입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개혁연대는 "공정거래법이 금산법의 토대가 되는 법률도 아닌데, 금산법 위반을 공정거래법 11조에 의거해 제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삼성그룹이 지난해 2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공정거래법 제11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철회하며 이에 의거한 의결권 제한은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이번 금산법 개정안은 삼성이 허용한 선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연대는 주장했다. 박진희 정책국장은 "이번 개정안으로는 삼성의 지배구조, 또 이를 통한 이건희 회장 일가의 후계승계에도 별 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경영권 위협이니 적대적 M&A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개혁연대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소유는?"
한편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개정안에 따라 삼성화재가 가진 삼성전자의 지분 또한 시정조치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일부 언론에서는 2006년 9월 현재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통주 지분 7.26% 중 5% 초과분인 2.26%만을 언급하고 있다고 연대는 문제삼았다.이에 따르면 금산법 제24조는 '동일 기업집단에 속하는 모든 금융기관(동일계열 금융기관)의 다른 회사 주식 보유를 규제하는 것'이므로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1.26%를 합친 8.56% 가운데 5% 초과분인 3.56%가 모두 시정조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