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죽이지 못해 우울 하고 답답 "빨리 죽여달라"

'서울판 살인의 추억' 정남규, 항소심에서도 사형 구형

2007-01-05     한종해 기자

지난 2004년 1월부터 서울 영등포·관악·구로구, 경기 부천·군포시 등 서울 서남부 노약자 등을 노린 살인 사건이 잇따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말도 돌았다.

지난 4월 2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주민 신고로 붙잡힌 용의자 정남규(37)씨는 모두 24건의 살인·강도 범행으로 13명을 숨지게 하고 20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지난 11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지난 12월 항소심에서도 역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정작 정남규 본인은 죄를 뉘우치지 않는 것으로 보여 주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항소심에서 “불만이 많아”라고 외치며 검사석으로 돌진한 것. 다행이 교도관들에게 붙들려 퇴장 당했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자기 잘못도 모르는 인간 죽여서 무엇하겠느냐. 차라리 평생 감옥에서 고통 받게 하라”는 등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인연도 원한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른바 이상(異常)동기 범죄자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조건적인 연쇄살인에 시민들은 공포로 떨어야만 했다.

‘제 2의 유영철’이라고도 불리는 정남규는 수법과 대담성만큼은 선배(?) 살인마인 유영철을 능가했다.

2004년 1월부터 관악구 봉천동 세 자매 살인, 경기 부천시 초등생 2명 납치살인 등 13명의 목숨을 빼앗은 정씨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체력단련을 하고 관련 자료를 모았다. 범행 장소 또한 2004년 길거리에서 2005년 주택 등으로 바꿨고 범행도구 역시 달리 사용했다.

정 씨에 의해 피해를 입은 봉천동 가정의 경우, 큰딸(24)과 작은딸(22)을 한 번에 잃었다. 중학생인 셋째 딸(14)은 둔기로 머리를 맞아 100일 가량 입원치료를 받고 지난 6월 퇴원했지만,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신경정신과를 찾을 정도로 상처가 깊다. 막내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 정신적 충격을 받아 셋째 딸과 심하게 다투는 일이 잦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이들의 아버지는 용의선 상에 올라 심하게 조사를 받았다. 부인(48)도 외출을 거의 못할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한다.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고 해도 살인사건이 난 주택인 탓에 팔리지 않았다. 단란했던 가정이 죄책감도 모르는 한 살인마에 의해 풍비박산이 나버린 것. 피해자들은 아직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죄의식을 모르는 그의 뻔뻔함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현장검증 때는 유족들에게 발길질까지 했다. 재판정에서조차 “부자를 죽이는 데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충격적인 살인의 희생자들은 평범한 이웃 및 여성과 아이였다.

결국 지난 4월 22일 정씨는 서울 신길동에서 시민의 신고로 붙잡혔다.

1심에서 검찰은 “정씨의 범죄로 피해자와 유가족이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며 피고인이 반성하는 기미가 없고 피고인에게 내재한 악성을 감안, 사형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작 피고인 정씨는 오히려 “사회에 나가고 싶지않다"며 주위를 놀라게 했고 끝까지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였다.

사형구형에 대해 정남규의 변호사는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을 내려 본인의 죄에 책임을 묻고 반성의 기회를 줘야한다고 역설했지만, 정작 정씨는 “미안한건 잘 모르겠고 범행을 못해서 우울하고 답답하다”며 “사람들을 많이 죽일 때 자부심을 느꼈고 ‘쇼킹’한 것이라면 모를까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말을 서슴치 않아 변호사의 마지막 변호마저 무색케 했다.

지난 12월 28일 정씨는 서울고등법원(재판장 이재환)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1심과 같은 사형을 구형받았다.

정 씨는 최후 진술에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살인을 멈출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의식에 따라 살인했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며 “부자를 더 헤치지 못한게 안타깝다. 사형을 빨리 집행해 달라”고 말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씨의 변호인은 “선처해 달라고 하면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죄가 될 것 같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랄뿐이다”고 짧게 말했다.

정 씨는 최후 진술을 끝내고 법정을 나서기 직전 갑자기 “불만이 많다”라고 외치며 방청석과 법대(法臺) 사이의 낮은 칸막이를 뛰어넘어 검사 자리로 돌진하다가 법정경위와 교도관들에 의해 법정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