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잡아라! 대선에서 승리한다!
대선 1년 앞두고 ‘박정희 신드롬’…‘장기집권자’ ‘친일파’ ‘독재자’ 호칭 무색
2007-01-13 최봉석 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국민으로부터 차가운 외면을 받고 있다. 특히 新나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되는 조짐이다.
지난해 10월 독일총선에서 민주당의 앙겔라 메르켈이 사상 처음으로 ‘최연소’ 여성 총리로 선출되면서 민주당과 사민당의 좌우 연립정권을 이끈 이후부터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첫째는 ‘실업증가’ 때문이고, 둘째는 ‘복지 정책의 후퇴’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일 내 신나치주의들의 폭력 사태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前 독일 나치총통이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아돌프 히틀러(1889∼1945년)’가 비록 일부이긴 하나 국민으로부터 숭배를 받고 있는 인물로 재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나치주의자들은 인종차별주의로 무장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폭력행위를 일삼는데, 숫자 8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숫자 8은 알파벳의 여덟 번째 글자인 H를 상징하며 88은 ‘HH(하이, 히틀러)’를 의미할 정도로 이들은 ‘히틀러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칠레로 눈을 돌리면 지난해 1월 중도좌파연합의 미첼 바첼렛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국민 중 절반가량은 오히려 정적 수천 명을 살해하고 납치.고문했던 피노체트 前 칠레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있는 일이 멈추지 않고 있다. 피노체트는 지난해 12월 끝내 법정에 서지 않은 채 심장마비로 숨졌다. 피노체트가 절반의 국민으로부터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유는 칠레 역사상 가장 과감한 경제개방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80년대 초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경제전문가들로부터 오늘날 칠레의 경제적 ‘성공’을 이뤄낸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피노체트는 ‘남미판 박정희’ ‘칠레판 박정희’로 불리울 정도다.독일과 칠레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이 같은 모습은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을 1년 여 앞둔 시점인 지난해 말부터 ‘장기 집권자’이면서 ‘친일파’ 및 ‘독재자’라는 틀에 묶여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신드롬’이 번지고 있어 대선을 목전에 둔 한국 국민의 최근 정서에 대한 국가 안팎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대선후보들, 박정희 따라하기 경쟁
‘신드롬’의 실체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최근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대선 정국과 맞물려 유력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고 일부 대선 후보들은 아예 ‘박정희 따라하기’에 나서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기간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이 독일과 칠레처럼 ‘독재자 대통령’을 과거에서 현재로 끄집어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박정희 따라잡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쉴새없이 받고 있는 후보들은 ‘친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부터 시작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 고건 전 총리,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 현재까지는 내로라하는 야권發 대선주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여권에서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박정희 시대의 향수가 전국에서 가장 강한 지역인 TK(대구.경북)지역을 수시로 찾고 있는데, 눈길을 끄는 점은 박 전 대통령 생가인 경북 구미를 방문할 경우 일부 후보들의 경우 ‘지지율’이 반짝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선주자들은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생가를 찾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길 정도다.너도 나도 박 전 대통령과 ‘인연’ 강조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해 성탄절인 12월25일 “자꾸 나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흉내 낸다고 하는데…”라고 언급할 정도로 ‘박정희 따라잡기’에 적극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리틀 박정희’라는 별칭은 이미 따라붙었다.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 전 시장은 고려대 4학년 때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ㆍ3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반년 간 복역한 뒤 풀려났는데, 대학 졸업 이후 시위 경력 때문에 취직 원서를 낼 때마다 낙방했다. 결국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가가 세상을 살아가려는 개인의 길을 가로막는다면, 국가는 개인에게 영원히 빚을 지는 것’이란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이후 그는 현대건설에 입사를 허락받았다.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많다는 지적과 관련해 “내가 안경 한번 끼었더니 박 전 대통령 닮았다고 한다”며 “경제개발에 대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을 참고해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실제 이 전 시장을 언급하면 상당수의 국민은 그를 ‘청계천’과 동일시한다. 최근 들어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거론한다. 경제발전을 향한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뛰어났다는 일각의 평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전 서울시장이 정말 박정희 리더십을 벤치마킹했다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청계천’ ‘대운하’는 박정희 흉내내기?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이와 관련 “이명박 전 시장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병에 기초한 선거 전략을 본인이 공공연히 구상했다”면서 “(얼마 전) 독일에 갔을 때도 선글래스를 꼈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에 가서도 선글래스를 끼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고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상종가’를 달리면서 득을 보는 또 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친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박 전 대표는 박정희 향수에 청와대 생활이 더해져 매니아층을 형성한 지 오래다.박 전 대표는 지난 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질문에 “저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이고, 제 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이라며 “천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조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버지의 신드롬에 따른 긍정적 혜택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내일신문’이 이달 초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디오피니언(소장 안부근)에 의뢰해 영남권 500명, 수도권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의 혜택은 일단 박근혜 전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영남권 유권자를 대상으로 ‘박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6.6%에 지나지 않았고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59.7%,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작용 안한다’는 응답이 32.2%였다.박정희 딸,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실패’ 발언 이후 범여권 후보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갈수록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는 고건 전 총리도 얼마 전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새마을운동을 칭송하는 등 박정희 신드롬에 손을 내밀고 있는 후보군에 속한다.고 전 총리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처럼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내무부에서 새마을운동 업무를 처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고, 1979년에는 청와대 정무 제2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는 등 박 정권 이후부터 ‘양지’만을 골라 걸어왔다.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장관, 두 차례의 서울시장, 최연소 전남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애칭을 얻었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국정의 제1, 2인자로 밀월관계를 구가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등지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학생 운동을 주도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도 박 전 대통령의 공을 강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는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의 구미 생가를 방문, 산업화 업적을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각 대선 후보들이 박정희 따라잡기에 나서면서 이런 상황이 대선 정국의 이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정희 향수’가 상당하고 그 파워가 대단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지 28년이 지났는데도 “죽은 박정희가 산 노무현 이긴다”는 한 정치 평론가의 표현대로 그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고 때마침 선거를 앞두고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독재자’라는 평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왜 각 후보들은 ‘독재자’에 대한 향수를 끊임없이 끄집어내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일까.경제가 어려워 박정희 향수 늘어난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고 국민의식의 통합이 어려워지니까 박정희 시대의 향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결국 ‘경제’가 대선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면서 ‘경제발전=박정희=자신’의 등식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상황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하락 추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민심’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경제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정희’라는 것이다.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이유는 간단하다”면서 “대선 후보들 가운데 일부는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선 후보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직?간접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권력의 수혜’를 받았기 때문에 지나간 독재자의 향수를 끄집어 내는 ‘있을 법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대통령을 꿈꾸는 유력 대선주자들이 ‘변화’와 ‘변혁’보다는 이처럼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요즘 각 후보들이 박정희 흉내내기에 바쁜데 향수는 향수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미 미숙한 전략이라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목표가 될 수 없다”며 “각 후보들은 박정희를 흉내내기보단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차별화된 리더십을 쏟아내야 한다”고 꼬집었다.노 대통령 “경제를 살린 것은 공무원”
노무현 대통령도 ‘박정희 신드롬’을 비꼬았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일 “요즘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가 성장의 기틀을 잡은 것이라고 얘기한다”면서 “그러나 경제가 여기까지 온 비결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수하고 사명감 있는 공무원밖에 달리 답이 없다”고 말해,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이 과대포장됐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는 대선주자들이 이용하는 ‘박정희=성공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돼 정치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유력 대선 후보들이 박정희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따라하기’라는 비판에 대해 보수진영은 “정치적 꼼수”라고 반박하지만, ‘독재자의 향수’를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낫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칠레에서 벌이지고 있는 ‘역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