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시은 기자]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진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기존의 제조업체들을 보호할만한 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보다 협회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막걸리를 제조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지역 토박이 업체들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막걸리 시장 진출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기존 중소형막걸리업체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져 가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13일 전국 40여개 중소형 막걸리제조업체들은 ‘한국막걸리제조자협회’를 만들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매일일보>은 지난 8월 25일 한국막걸리제조자 협회장으로 선출된 하명희 이사(현 이동주조 대표)를 경기도 포천시청 구내식당에서 만나 최근 대기업들의 막걸리 시장 진출에 따른 문제점과 기존 중소형막걸리업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봤다. 하 이사는 인터뷰 내내 자신과 같은 중소형업체들보다 더 영세한 업체들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사장만큼은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진출을 환영한다”며 운을 띄웠다.이어 “다만 현 제도대로 간다면 영세업체들과 대기업의 관계가 ‘노예계약’으로 전락될까 우려스럽다”는 다소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하 이사는 “아직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지난 6월 식약청이 주류 안전관리 업무를 전담하게 되면서 설명회에 참석한 500여개 업체들이 개괄적인 설명만 듣고도 입이 ‘딱’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들이야 식약청이 요구하는 기준대로 투자를 해나가면 되지만, 지역마을 영세업체들은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양조장을 지어야 된다”며 “그나마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야 보완해 나가는 정도라고는 해도 대부분의 영세 양조장들은 안전관리에 부합하기 위해 수개월동안 공장을 멈추고 손을 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해 엄격한 잣대를 대야하는 것은 맞지만, 보다 현실적인 잣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유예기간을 두거나 영세업체들을 대상으로 저리자금을 마련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물론 정부가 지원을 한다 해도 현재의 ‘쌀 가공 시설자금 지원’등과 같이 한다면, 담보가 없어서 지정이 되도 돈을 빌려 쓰지 못하는 등 꼭 필요한 영세업체들에겐 오히려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정부는 전통주 등의 품질 향상과 산업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농업인의 소득증대와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목적으로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육성법률을 개정했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자체가 영세기업보단 대기업에게 유리한 잣대로 되어 있다는 것. 지난 7월에 시행된 ‘원산지표시제’와 8월 시행된 ‘품질인증제’가 지역마을 내에서만 소규모로 막걸리를 공급하고 있는 토박이 업체들에겐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들 업체들은 인증을 받으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영세업체들은 정부의 잣대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기존의 방식 그대로 막걸리를 제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세업체들이 정부의 잣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건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그들을 신뢰하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만 막걸리를 팔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매일일보>은 일각의 시각대로 ‘영세업체보단 중소형기업의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 아니냐’는 데에 의문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업의 시장진출을 우려하는 것은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는 영세업체들보단, 대기업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지고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설상가상 정부가 요구하는 품질인증제마저 받지 못한다면 까다로운 소비자의 눈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이미 몇몇 대형마트의 진열대에는 그들의 막걸 리가 앞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지금이야 대기업들이 제조가 아닌 유통이나 마케팅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생산에까지 손을 뻗치게 된다면 유통과, 마케팅,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시장에서 금방 밀려나게 된다. 하 이사 역시 이러한 부분을 일정부분 시인했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중소기업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데에는 이견이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그는 상품의 다양화는 물론 장인정신의 혼을 담아 고유의 전통주인 막걸리를 생산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우리의 전통술을 지키기 위한 소규모 양조장들의 필사의 노력과 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임을 언지했다. 또한 하 이사는 이러한 노력을 살릴 수 있는 정부의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하 이사가 운영하는 (주)이동주조는 막걸리를 살리기 위한 돌파구로 업계에선 처음으로 일본 수출의 문을 두드렸다. 살균막걸리가 개발되기 3년 전인 1993년 생막걸리인 ‘포천 이동막걸리’를 시작으로 미국·중국·태국·멕시코 등 막걸리 해외시장을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