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밥그릇싸움(수협은행장)의 예측가능 결말

2018-04-24     공인호 기자
[매일일보 공인호 기자] 차기 수협은행장 인선을 둘러싼 정부와 수협중앙회간 '밥그릇 싸움'이 한달을 훌쩍 넘겨 두달째를 바라보고 있다. 신경전 혹은 줄다리기라 칭하기도 민망한 강대강 구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협치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자조섞인 관전평까지 나온다. 사실 수협은행장 인선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예견돼 왔다. 수협은행이 올해 초 수협중앙회로부터 분리, 독립 출범하면서 조직 내부에서는 정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율경영'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첫 시험대가 은행장 인선이었다.수협은행 노조도 지난달 9일 행장추천위원회 구성 직전 조직이해도가 높은 내부출신이 차기 행장으로 선임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관료 출신 인사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관리형' 낙하산 인사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관료 출신이 올 바에는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 있는' 인사는 원한다는 첨언도 덧붙였다. 사사건건 정부 간섭을 받아온 조직 피로감을 일면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차기 행장을 선출하는 행추위원 5명 가운데 정부측 3명은 전임 이원태 행장의 연임을 주장했고, 수협중앙회 측 2명은 내부 출신인 강명석 상임감사를 새 행장으로 밀었다. 차기 행장이 선출되려면 5명 중 4명이 한 후보에 손을 들어줘야 한다.문제는 이원태 전 행장의 경우 전임 이주형 행장과 마찬가지로 기획재정부 출신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로 꼽혀왔다는 점이다. 직전에는 예금보험공사 부사장을 지내 사실상 관리형 CEO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측 위원들이 이 행장의 연임을 밀어붙인 배경도 '짠물 경영'이다. 무엇보다 이 전 행장이 지난해말 300억원대의 공적자금 상환 계획을 발표한 것이 정부측 위원의 의중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상환이 이뤄진다면 지난 2001년 IMF 당시 1조1581억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은지 15년 만이다. 공적자금 상환이 늦어진 배경은 그동안 1조원에 달하는 미처리 결손금을 먼저 갚아온 탓이다.정부가 이 행장의 연임을 주장해온 것은 내실경영을 통해 공적자금을 하루빨리 갚으라는 의미로 읽힌다. 당시 이 전 행장은 2028년까지 나머지 공적자금도 전부 상환하겠다는 중장기 로드맵도 발표했다. 하지만 수협은행은 지난달 정기총회를 통해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27억원의 상환을 확정했다. 반면, 노조는 올해 독립출범을 계기로 수협은행이 여타 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원하고 있다. 수협은행의 지난해말 총자산은 28조원대로 같은 특수은행인 농협은행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농협은행장의 경우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내부출신 선임 기조가 정착되고 있다는 점도 수협은행 노조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배경이다.여기에 최근 조직관리 측면에서 관료 출신이 우월하다는 정부측 주장을 뒤집는 감사결과도 나왔다. 지난 11일 발표된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수협은행에 낙하산 인사를 내보내온 예금보험공사가 오히려 수협은행의 부실경영을 방치했거나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적 점검부터 예산·조직관리 등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감사원은 '행내 모럴헤저드가 만연해 있다'고까지 지적했다.물론 내부출신 은행장이 나온다고 해서 당장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후배들 덕에 은행장에 올랐다'는 멍에 탓에 조직에 끌려다닐 수 있는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오히려 행추위원 숫자로 열세인 수협중앙회 측이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이상 행추위 파행사태가 새로 출발한 수협은행 조직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현 대행 체제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어떠한 의사결정도 제 때 이뤄지기 어렵다. 그동안 낙하산 외풍으로 부침을 겪어온 은행들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일각에서는 파행을 겪고 있는 수협은행장 선임이 다음 정부로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오는 27일 추가 행추위를 앞두고 있지만, 이마저 불발될 경우 5월 황금연휴와 대선정국으로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럴 경우 되레 은행장 선임은 예측 가능해질 수 있다. 유력 대선후보의 면면을 살펴볼 때 지지율 1위 후보는 낙하산 인사 철폐를 위해 금융노조 측과 정책협약을 맺었고, 2위 후보는 민간시장 자율성을 강조해온 기업인 출신이다. 시간을 끌수록 어느쪽이 불리할지는 삼척동자라도 인지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