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개최

현판에 담긴 대한제국 황궁(덕수궁)의 역사

2018-04-24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24일부터 오는 5월 14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Ⅱ에서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을 개최한다.이번 전시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하고 제3회 궁중문화축전(4.28.~5.7.)과 연계해 대한제국의 황궁이던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의 여러 문과 전각에 걸렸던 현판 13점을 한 곳에서 소개한다.전시는 대한제국 선포 후 10년(1897~1907년)이라는 짧은 기간,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경운궁에 세워졌다가 이후 나라의 운명과 함께 옮겨지거나 철거되어 현판으로만 남아있는 문과 전각들을 조명한다.전시는 궁궐 공간에 따라  경운궁 궁역과 문, 경운궁의 전각, 경운궁 궐내각사의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경운궁 궁역과 문에서는 덕수궁의 현 정문이 1906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걸렸던 길이 3미터가 넘는 대형 현판 <대안문(大安門) 현판>을 비롯해 경운궁 남쪽에 자리한 <인화문(仁化門) 현판>, 고종이 종묘 등 외부에 출궁할 때 주로 이용한 <포덕문(布德門) 현판> 등을 소개한다.경운궁의 전각에서는 대한제국 초기 즉조당(卽阼堂)이 중화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경운궁 정전으로 사용되던 당시에 걸렸던 <중화전(与殿) 현판>, 지금의 석조전 뒤쪽에 있는 2층식 서양식 건물인 구성헌(九成軒)의 <구성헌(九成軒) 현판>, 1904년 지어진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처소였던 영복당(永福堂)의 <영복당(永福堂) 헌판>을 살펴본다.
또한, 고종의 어진을 모셨던 <흠문각(欽文閣) 현판>, 순명효황후 민씨의 신위를 모셨던 혼전으로 경운궁 선원전 영역에 있다가 지금은 창덕궁 신선원전 앞으로 옮겨져 현판만 남은 <의효전(懿孝殿) 현판>, 영친왕이 8세 때 직접 쓴 <영왕서실(英王書室) 현판>, 1913년 함녕전 뒤편에 세워진 2층 건물인 구여당(九如堂)의 <구여당(九如堂) 현판>도 함께 볼 수 있다.경운궁 궐내각사에서는 지금은 태평로와 서울광장 일부가 된 경운궁 궐내각사 영역에 있던 궁내부 소속 <회계원(會計院) 현판>, 원수부 소속 대한제국 <육군법원(陸軍法院网) 현판> 등 파란 많았던 제국의 운명을 보여주는 관청의 현판들도 볼 수 있다.궐내각사(闕內各司)는 국왕이나 세자를 가까이서 보필하거나 궁궐 시설 관리, 궁중 내에 필요한 물자 조달 등 궁궐 안에 위치해 그 역할을 하는 관서들을 말한다.
참고로, 1987년 2월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궁궐을 넓히고, 법전(法殿)인 중화전을 비롯하여 제향공간, 외교공간, 침전과 궐내각사 등을 갖추는 동안 많은 건물을 지었다.하지만, 1904년 대화재, 1905년 을사늑약 체결,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다음 해 순종의 창덕궁 이어(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를 겪으면서, 경운궁도 대한제국의 황궁에서 퇴위당한 고종의 거처인 덕수궁으로 지위와 이름이 바뀌었다.1919년 고종의 승하로 궁의 주인이 떠난 후에는 일제에 의해 축소되고, 도심 공원으로 활용되기 위해 많은 전각이 헐리는 슬픈 역사를 갖게 됐다.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현판 전시가 근대기 나라의 운명을 함께 겪어야 했던 경운궁의 역사를 읽고,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대한제국의 근대사적 의미를 함께 살피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