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엔터테인먼트 '시행착오' 혹은 '안목부재'?

'역도산','태풍'이어 '중천'까지 흥행부진 속내는...

2008-01-19     권민경 기자

국내 최대 영화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극장가의 대목인 연말연시 기간, CJ가 투자와 배급을 맡은 영화들이 3년 연속 저조한 흥행 기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CJ의 야심작 '중천'은 지난 11일까지 약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미 CJ 계열인 CGV 극장을 제외한 대다수의 영화관에서는 상영이 막바지에 다다랐으니, 최종 관객 수 또한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중천은,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하는데, 이에는 한참 모자라는 것.

CJ는 지난 연말 개봉했던 영화 '태풍'에서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톱스타 장동건과 이정재를 내세웠고, 150억원 가량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관객동원은 430여만 명에 그쳤다. 재작년 연말 시즌 상영됐던 '역도산' 또한 연기파 배우 설경구를 내세워 관객몰이에 도전했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자금력, 톱스타 캐스팅, 배급망,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을 가진 CJ가 이처럼 연말 성수기 극장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를 두고 영화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CJ가 영화 자체의 스토리보다는 스타 캐스팅이나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일각에서S는 영화를 고르는 CJ의 안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중천' 흥행 위해 계열사 직원까지 동원?

지난달 1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중천'을 둘러싸고 이상한 잡음이 터져 나왔다. CJ엔터테인먼트는 '중천'을 인터넷 예매한 영수증을 가져오면 '사내 복지비'(1인당 2장: 1만4천원)로 처리해준다는 내용의 이벤트 메일을 CJ 계열사에 보냈다. 이에 4개 계열사가 참여의사를 밝혔는데, 이 메일이 업무 착오로 외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CJ측은 곧바로 "계열사 상품 구매와 같은 형식"이라며 "CJ엔터테인먼트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고 계열사 4곳에서 700여명이 참여하므로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것이 아니다"고 언론에 해명했다. 즉 기업의 사내 복지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일 뿐 직원들에게 강제로 할당하거나 예매율을 높이려고 표 사재기를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그러나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사실 영화계에서는 개봉 전 인터넷 예매율이 초반 기선잡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CJ같은 대기업이 계열사를 통해 '표 사재기'를 하게 되면  중, 소 영화사들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확대되자 CJ는 결국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 제안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그런가하면 CJ엔터테인먼트는 '중천' 개봉을 전후해 거의 매일 대량의 홍보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를 살펴보면 '중천,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꼭 필요한 영화', '중천 김태희, 1인2역 연기 화제', '12월 극장가를 지배할 또 하나의 괴물, 판타지 대작 중천' 등등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인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개봉 이후에는 국내 유명 영화감독과, 영화전문 기자들의 말을 인용해 또 다시 홍보에 들어갔다. "국내 CG 기술력의 완전한 성공작", "시각적 스펙터클함과 미적 성취도에서 압도!"등이 그것. 그러나 CJ측의 이런 적극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뚜껑이 열린 영화 '중천' 의 성적은 예상 밖으로 저조했다.

100억 제작비 투입 영화들...손익분기점도 못 넘겨

개봉 첫 주 만해도 중천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공세 속에서 한국적 판타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6일만에 전국 100만 관객(스크린 수: 서울90, 전국 430)을 돌파하며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중천의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과 특수기술 등은 한국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한.중.일 합작영화의 이상적인 방식을 보여줬다는 평도 얻었다.그러나 이런 요인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여세는 얼마가지 못했고, 관객들의 관람평 또한 실망섞인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11일 현재 CJ측이 내놓은 중천의 관객 동원 수는 153만 명으로 화려한 명성에 비해 초라한 실적이다. 여기에 대부분 극장에서 상영을 종료하고 있어 최종 관객은 200만 명을 넘기기도 힘들게 됐다.  반면 CJ와 함께 국내 영화계의 양강을 이루고 있는 '쇼박스'의 연말 신작 '미녀는 괴로워'는 500만 관객 돌파를 바라보며 예상 밖으로 선전하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는 '중천'보다 1주 먼저 개봉했지만, 현재도 꾸준히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 '쇼박스'의 또 다른 연말 개봉작 '조폭마누라' 도 125만 관객을 돌파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할리우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역시 전국 관객 400만 명을 넘겨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했다.CJ는 중천'의 흥행부진으로 2004년, 2005년에 이어 연말·연시 성수기 시즌 3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장동건, 이정재를 투 톱으로 내세웠던 야심작 '태풍'도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앞서 설경구 주연의 '역도산' 은 CJ내부에서도 실패를 인정할 정도. 톱스타를 기용해, 거액의 자금을 들여 제작하고, 국내 최대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를 통해 배급을 한 영화들이 연말 성수기에 이렇게 저조한 성적을 내자 영화계 안팎에서는 갖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CJ "비싼 수업료 치뤘으니 '노하우' 생길 것"

일단 영화계 전문가들은 이것이 외부적인 영향으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CJ 내부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천 개봉을 전후로 극장가에는 이렇다할 할리우드 대작이나, 톱스타를 내세워 흥행몰이에 나선 한국영화가 예년보다 많지 않았다.

여기에 역도산, 태풍, 중천 등은 CJ의 막강한 극장 체인인 CGV를 통해 400개 이상의 스크린 수를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객관적인 조건만 놓고 보자면 전혀 밀릴 것이 없는 상황.  

이에 대해 한 영화사 관계자는 "비단 CJ 뿐만이 아니라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이는 많은 대작 영화들이 볼거리, 외향에 치중하다 보니 막상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인기스타를 내세워 홍보를 한다 해도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엄격하다"면서 "소재나 캐릭터의 한계를 탈피해 좀 더 탄탄한 줄거리와 다양한 인물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런가하면 일각에서는 CJ가 영화를 고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기도 했다. 즉 당초부터 완성도면에서 부족한 영화를 고르는 '안목부재' 가 흥행실패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이와 관련 CJ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관객 동원 측면에서 보자면 저조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CJ는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 장기적인 틀 안에서 .한국 영화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당장 영화 한, 두 편이 삐끗했다고 해서 중도에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얘기. 이 관계자는 "중천이나 태풍, 역도산 등이 흥행에서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을지라도, 한국 영화의 성장과정에서 분명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고 자신했다. 물론 3년 연속 연말 성수기 대작들이 실패한 것에 대해 솔직한 자성을 털어놓기도 했다. CJ 홍보실 관계자는 "중천의 경우, 기술적 측면에서는 진일보했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스토리가 약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태풍은 그다지 저조한 흥행은 아니었지만,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영화였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실패한 영화처럼 비춰진 측면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런가하면 "역도산은 탄탄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대사가 대부분이었던 데다 다큐멘터리적인 접근 때문에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이런 작품들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치뤘으니 앞으로 비슷한 장르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라며 "CJ만이 아니라, 영화 스태프를 비롯해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결국 한국 영화를 살찌우는 것이다"고 긍정적 평가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