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오츠카, ‘무조건 팔고 보자...화근 불러왔나’

회사VS영업사원 공방, 법원 “영업사원 ‘무죄’”

2008-01-26     권민경 기자

영업사원 “무리한 할당량, 가판 잡을 수 밖에 없어”
동아 “영업사원 자의적 판단으로 회사에 손해 끼쳐”

‘포카리스웨트’로 유명한 음료회사 ‘동아오츠카’와 이 회사의 전직 영업사원이 벌여온 법정공방에서 전례 없는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대전지방법원 형사2단독 서정 판사는 할당된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회사에서 지정한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처에 음료수를 납품한 혐의(업무상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동아오츠카 영업사원 오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동아오츠카 측은 ‘영업사원인 피고가 회사가 지정한 권장판매가를 지키지 않고 임의대로 가격을 낮춰 제품을 판매해 회사에 1억여원 상당의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하나 음료시장 현황을 살펴볼 때 피고의 행위는 관행적인 것으로 볼 수 있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그동안 음료, 제과 등의 유통업계에서 무리한 목표달성을 위해 암묵적으로 이루어져왔던 ‘가판’(가매출)의 관행과 매출 신장을 위해 밀어내기식 출고를 감행하는 회사의 고질적 모순이 해결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다시 영업 일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회사에서 할당된 목표량을 채워야 하는 부담감이 얼마나 극심한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동아오츠카와 힘겨운 법정공방을 치룬 끝에 1심에서 무죄를 판결 받은 오씨의 고백이다.

오씨는 지난 2003년 3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동아오츠카 서대전 영업소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거래처를 상대로 음료수 납품 및 대금 수급 업무에 종사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회사측은 오씨가 2004년 1월 거래처인 C유통에 음료를 납품하면서 회사에서 지정한 가격인 1개당 742원에 미달하는 593원으로 납품한 것을 비롯, 총 375회에 걸쳐 지정 납품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납품해 회사에 1억 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오씨에 따르면 당초 동아오츠카 측에서는 ‘횡령’ 혐의로 고소를 했다가 요건이 성립되지 않자,‘업무상 배임’으로 바꿨다고. 1년 가까운 소송 끝에 지난 8일 대전지법 서정 판사는 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법 제355조 2항에 따르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배임죄로 처벌됨을 명시하고 있다.

결국 오씨 사건의 핵심은 오씨가 회사에서 지정한 납품가격을 준수할 ‘임무’를 위배하고 저가에 음료수를 판매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가했는가의 여부.

그러나 이에 대해 재판부는 “증거조사 결과, 오씨의 저가 판매가 회사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소위 ‘가판’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때문에, 단순히 지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영업사원의 배임죄를 인정한다면 반강제적 할당판매를 형벌규정으로 뒷받침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영업사원들의 일반적인 관행을 감안하면 피고가 지정가를 무시해 회사에 직접적인 손해를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무리한 할당량, 가판 조장하나

여기서 ‘가판’이란 판매 목표량을 일단 창고에 입고시킨 후 장부상으로는 판매된 것으로 정리하고, 추후에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영업사원들은 왜 이렇게 무리하게 '가판'을 잡아놓고 판매를 감행하는 것일까.

지점장을 비롯한 관리직 직원은 본사에서 정해준 목표량 달성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느껴 영업사원에게 목표치를 채우도록 독려(경우에 따라 강요)하고 이 과정에서 가판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업사원들은 소매상에 판매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판이 되면 주로 도매상을 상대로 판매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도매상 판매시 형성되는 소위 '시중가'는 회사의 권장판매가나 할인판매가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고 때에 따라서는 원가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는 것.

물론 인기 있는 제품의 경우는 회사의 권장판매가와 시중가가 비슷하게 형성되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이라는 게 영업사원들의 얘기다.

결국 회사측의 무리한 목표 할당이 해당 영업소의 지점장, 매니저, 영업사원으로 하여금 가판을 해서라도 할당치를 맞추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씨는 “매월 판매해야 했던 금액이 8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됐다”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영업사원들도 보통 6천만 원 이상의 판매를 매달 할당받았다”고 밝혔다.

만약 한 달에 대략 1억 원을 할당받았다고 가정하고 토요일, 일요일 등을 뺀 실제 영업일수가 20일이라고 산정하면, 하루에 300만원 가량을 판매해야 한다.

이 판매량을 소규모 점포에 가서 판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은 가격을 내려서라도 도매상에 판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동아오츠카 김모 지점장 역시 오씨의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참석,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김씨는 “유통시장에 유사음료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소매상에 판매할 수 있는 양은 적고, 도매상에  판매해야할 양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도매상 등에 판매시 시중가는 회사가 권장하는 판매가와 차이가 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본사, 미수차액 변상위해 대출 알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가판의 실체를 본사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영업사원들의 주장. 오씨는 “회사에서도 가판이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매출 신장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묵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정 판사 역시 판결문에서 “회사가 영업사원에게 원칙적으로 권장가나 할인가로 판매할 것을 지시하고, 그 이하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본사의 승인사항으로 정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 본사에서 일률적으로 목표량을 정해 할당했고 지점은 목표량 달성을 위해 영업사원에게 가판을 지시한 사실, 또 본사는 가판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도 묵인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피고(오씨)가 가판을 했다면 그것은 본사가 됐건, 지사가 됐건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므로 오씨가 회사가 정해준 가격보다 낮게 형성된 시장가에 물품을 판매했더라도 피고에게 업무위배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가판의 본질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열위한 지위를 이용해 판매를 강제하는 일종의 사원판매”라며 “만일 시중가격의 수준과 관계없이 회사의 지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 것을 무조건 위법이라 한다면, 회사는 시장상황의 변화로 제품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시중가보다 높은 지정가를 정한 후 가판을 함으로써 가격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사원에게 전가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무리한 가판으로 인해 생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미수차액의 발생이다.  

즉 영업사원들이 제품을 판매한 금액을 입력해야 하는 회사 내의 전산시스템은 회사가 지정한 가격으로만 입력되는 것이 원칙.

다른 가격으로는 입력 자체가 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영업사원들이 시중가로 팔아온 경우에는 이 입력가와 실제 판매가 상의 차이가 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본사에서는 영업사원들이 그 차액을 횡령했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씨는 “돈을 갚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와 반 협박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은행 대출 용지를 직접 가져와 대출 받을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갚지 않는 영업사원은 법적 조치를 취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영업사원 스스로 돈을 끌어모으던가, 혹은 퇴직금에서 변제를 하는 방식으로 미수차액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얘기. 오씨 본인 또한 “회사에 2천5백만 원 가량을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동아오츠카 “가판으로 얻는 이익 없어"

한편 이번 오씨의 판결에 대해 동아오츠카 측은 일단 ‘유감스럽다’는 반응이다.

동아오츠카 법무팀의 한 관계자는 “아직 1심 판결이기 때문에 정확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회사 측 주장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판을 잡는다는 것을 회사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오씨의 주장대로, 회사가 이 부분을 알고도 용인했다면 그만한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가판으로 인해 회사가 얻는 이익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영업사원 본인들도 만약 윗선에서 가판 압력이 들어왔다면 한 두 번은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하겠지만, 무리하게 지속된다면 누가 시키는대로 가판을 잡아 영업을 계속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회사에서는 지정가 이하로는 절대 판매하지 말라는 것이 원칙이고, 혹 그 이하로 팔았다면 그것은 순전히 영업사원 본인의 판단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 관계자는 “오씨는 할당된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회사 지정가보다 낮은 시중가로 물건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본사 조사결과 시중가에 판매된 것은 일부분이고 오히려 지정가보다 높게 판매한 것이 상당수였다”고 주장했다.

때문에“회사에서 정한 단가보다 싸게 판 경우가 혹시 있다 하더라도, 높은 가격에 파는 거래처도 분명 있기 때문에 이를 더하고 빼면, 차액이 발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수차액 부분에 대해서도 영업사원들과 주장과는 차이를 보였다.

법무팀 관계자는 “영업사원이 판매한 것을 전산입력하는 것은 회사 지정 판매단가로만 입력이 된다”면서 “만약 영업사원이 현장에서 증감이 필요하다고 하면, 지점장에게 유선으로 문의를 한다. 지점장은 다시 본사에 연락을 하고, 승인이 떨어지게 되면 입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입력 금액과 실제 판매금액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것. 만약 미수차액이 생겼다면, 영업사원의 자의적 판단 하에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이를 변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손실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하지만 일부 영업사원들의 말처럼 대출을 알선해준다느니 하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