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비정규직 전환 잡음 내막은

금융권 '모범사례'인가 '과대포장'인가

2008-01-26     권민경 기자

우리은행이 약 310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재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전환의 실체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은행은 최근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규직 임금을 동결해 비정규직원들의 정규직화를 이루어내기로 노사간 합의했다.

그러자 노동계와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의 사례를 모든 금융기관이 도입하도록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우리은행을 모범사례로 추켜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이번 노사협상안을 '복음'이라고까지 극찬하며 "우리은행 노사가 함께 결단해 고용 안정을 이룬 것은 사회에 확산될 모범"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전환이 언론 등에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런 비난의 근저에는 비정규직 전환 작업이 우리은행의 특수한 내부 사정에 기인했다는 주장과 함께, 사측과 노조의 합의 과정에서 전체 노조원들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이로 인해 현재 노조 내부에서는 집행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집행부 '탄핵'이라는 극단적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환 작업에서 제외된 260여명의 본점 사무계약직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비정규직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전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노조에서 조합원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을 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협상을 그렇게 좋은 조건에(2년째 임금 동결)타결하고, TV에도 출연해 정규직 직원들의 협조로 비정규직을 전환하게 됐다고 말했는데, 조합원들에게 협조해 달라고 물어봤나? 노조 마음대로 처리하고 이제 어찌할 건가?"

"비정규직 밑의 비정규직이다. 우리가 진정 우리은행의 가족이 맞기는 한가? 사무계약직 직원들을 언제까지 단순 반복직으로 볼 건지 답답하다"

우리은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온 직후 우리은행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언론에서는 연일 '금융권의 모범사례', '은행장의 용기 있는 결단', '정규직원들의 아름다운 희생' 등의 제목 아래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철폐 결정에 대한 긍정적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가장 들떠있어야 할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정규직원들의 협조?...의견 수렴 과정 없었다

이번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전환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정규직 직원들이 '아름다운(?) 희생'으로 '임금동결'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영기 행장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가 과감하게 임금 동결에 동의해준 '결단' 덕분에 비정규직의 전환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가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대신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선택했다는 얘기. 이로 인해 절약되는 비용을 비정규직의 전환작업으로 인해 들어가는 복리후생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임금 동결' 결정이 순전히 노조 집행부와 사측간에 협의된 것일 뿐 논의 과정에서 전체 노조원들의 의견 수렴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임금동결'에 관한 부분은 우리은행의 특수한 내부 상황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즉 우리은행은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의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 아래 매여있기 때문에 정규직의 임금 인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것.

때문에 사측은 임단협을 통해 임금 동결을 주장해왔고, 당초 이에 반대하던 노조 집행부는 '비정규직 철폐' 카드를 조건으로 내세워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는 얘기다. 

더욱이 노조 집행부가 지난해 은행 내에 설립된 또 다른 노조를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도 비정규직 전환 합의 과정에서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알려졌다. 비정규직 노조가 별도로 노조를 설립하거나, 혹은 관리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포섭할 경우 기존 노조 집행부의 영향력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라는 것.결과적으로 사측과 노조 집행부는 금융권 최초로 '비정규직 철폐'라는 모범적(?) 사례를 남기는 동시에 각자의 실익까지 놓치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은행은 노동 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첫 걸음이라는 찬사와 함께, 전환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규직 임금 동결이라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냈다.

전 직원의 정규직화를 이끌어 낸 노조 집행부 역시 3100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새로 끌어안으며, 더욱 탄탄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노사합의가 우리은행 전체 노조원들의 의견은 배제한 채, 사측과 노조 간부들만 '윈윈'하는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은행 "잘했다, 칭찬은 안하고 왜 이러나"

이에 대해 우리은행 노조 조용진 부위원장은 "노사 합의에서 의견 수렴 과정이 불충분했던 측면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까지 임금협상을 비롯해 중요 사안을 논의할 때 노조원 전체와 상의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임금동결 문제와 예보의 약정을 연관짓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 전환으로 인해 늘어나는 인건비에 대해 정규직원들이 결단을 내린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규직의 임금동결은 '희생' 차원이 아니라, 한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며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비정규직 직원들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또 "관리직 노조를 경계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다. 어차피 양측 노조는 장기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며 "이번 노사합의에 대해 긍정적 결과는 뒤로하고, 일부 선동하는 노조원들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그런가하면 우리은행 역시 일각에서 일고 있는 지적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우리은행 홍보실 오승욱 부부장은 "솔선수범해 비정규직 철폐에 앞장섰는데도 칭찬은 못해줄망정 부정적인 면만을 끄집어내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제기했다. 

먼저 노조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임금 동결이 이루어졌다는 지적에 대해 "노조위원장은 전체 노조원들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며 "권한을 위임받은 위원장이 어떤 결정을 할 때 노조원 각각의 의견을 물어보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밑에 있는 노조원들은 이 같은 결정사항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우리은행 뿐만이 아니라 어떤 회사라도 마찬가지이다"고 설명했다.그런가하면 예보MOU로 인해 임금동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지적과 관련, "비정규직 철폐 문제와 예보 상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오 부부장은 "잘한 것을 먼저 칭찬해주고, 그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감싸주는 것이 옳은 것 아니냐"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가장 먼저 해법을 제시했음에도, 논란이 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규직 전환 제외된 사무계약직 행보는?

한편 이번에 정규직 전환 작업에서 빠진 260여명의 본점 각 부서 사무계약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거센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현재 '단일직군제' 도입에 따라 비정규직도 '매스마케팅(창구직원)', '고객만족(CS)', '사무지원' 직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이번 전환작업에서 이 직군에 포함되지 않은 본부 사무계약직원은 제외됐다. 때문에 이번 합의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통해 비정규직 내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일부 사무계약직 내에서는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여기저기서 부러움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정작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너무나 답답하다"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에 대해 노조 측 조용진 부위원장은 "노조에서도 합의 당시 본부 여기저기에 소규모로 퍼져있는 사무계약직원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면서 "이들에 대한 업무 분석을 마치고, 필요한 인력을 가려낸 후 정규직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우리은행 홍보실 오승욱 부부장은 "사무계약직의 전환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논의가 오가고 있다"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다소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