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與’, 천정배 마저…

“민심 제대로 못읽었다” 탈당, 일각 “무책임하다” 비난

2008-01-28     최봉석 기자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이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인 천 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민생개혁세력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세우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조하며 이 같이 밝혔다.천 의원의 탈당은 이계안, 임종인, 최재천 의원에 이어 4번째 탈당이다.천 의원은 “여당의 상황이 변하지 않아 더이상 탈당을 미룰 수 없었다”며 “당이 발전적 해체를 결정하고 민생개혁세력의 대통합 신당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천 의원은 그러나 “(저 또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강조하며, “제가 부족해 우리당이 정치력과 정책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제 잘못과 책임이 참으로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탈당 이후의 행보와 관련해 그는 “당 안팎의 유능하고 신망있는 인사들을 모으는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천정배 의원이 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탈당을 강행함에 따라 노 대통령의 만류로 주춤하는 듯 했던 열린우리당의 탈당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개혁적 이미지의 소유자인 천 의원이 ‘창당’의 주역인 터라, 그동안 당내에서 일정한 발언권을 확보하는 등 당내 ‘파워’를 감안한다면, 그의 탈당이 몰고올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그러나 김근태 당 의장이 전당대회를 통한 질서있는 신당추진을 거듭 강조하며 평화개혁미래세력의 대통합을 위해 의원들의 개별탈당을 적극 만류하고 있어, 당이 곧바로 분당사태로까지 이어지는 등 최악의 경우에 직면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한켠에서 나오고 있다.여당은 일단 천 의원의 탈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이와 관련 같은 날 오후 1시10분 중앙당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지금은 당에 소속된 개인의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구성원 전체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우리의 새 출발을 결의하고 준비할 때”라며 “그런 측면에서 원내대표까지 지내신 정치지도자가 개별탈당을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우 대변인은 또 “적어도 정치지도자로서 열린우리당을 이끌었던 분이라면 열린우리당 그 자체 전체의 변화를 위해 더 노력해주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든다”며 “당은 이러한 개별적 탈당 흐름과는 무관하게 대통합을 이루는데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도 오후께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천 의원이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당의 지지율이 그렇게 떨어졌는데 이제 와서 탈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광재 의원에 따르면, 천 의원이 원내대표를 시작하던 2004년 5월 당 지지율은 우리당이 43.5%, 한나라당이 22.3%였지만 원내대표를 마친 2005년 1월 지지율은 우리당 22.4%, 한나라당 28.7%로 역전됐다.당원들의 반발도 거세다. 열린우리당 한 당원은 “당에 있어서 최대의 번성기는 탄핵역풍 이후 원내 제1과반수에 당선됐을 때였고 이때 당을 이끌던 사람이 천정배였다”면서 “그는 그때 수많은 지지자들을 상생이라는 말로 현혹하며 한나라당에게 쩔쩔매며 개혁입벅하나 제대로 통과못시켜 지지자들을 절망 속으로 밀어넣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와서 탈당을 운운하니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작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가 일부 핵심의원들의 책임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천정배 의원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있고, 심지어 천 의원이 차라리 정계를 은퇴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의 속죄의 길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여당의 탈당 행보에 대해 그동안 쓴소리를 내뱉어왔던 한나라당은 나경원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천 의원이 다시 신당을 만든다면 4번째 다른 당적을 보유한 정치인이 된다”며 “가정이 파탄나면 가족 구성원이 모두 책임지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가정이 파탄났다고 다른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탈당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철저한 자기부정과 자기반성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탈당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한길 원대대표는 임기가 끝나는 오는 31일 이후 원내대표단을 중심으로 집단 탈당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다음은 천정배 의원 탈당 기자회견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사랑하는 열린우리당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민생개혁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창당에 앞장섰고 원내대표까지 지낸 제가 당을 떠나려니 참으로 비통하고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지금 저를 포함한 열린우리당은 민생의 안정과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해 신뢰를 잃고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우리당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중산층과 서민을 비롯한 국민의 요구에 충실히 귀 기울이지 않았고, 국민의 꿈과 희망을 정책화시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생산적 정치’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고 국민이 우리에게 철저한 반성과 변화를 요구했음에도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실망은 깊어졌고, 불안과 위기를 판매하며 과거의 특권을 회복하려는 사이비 민생세력의 집요한 공세가 위력을 발휘하게 됐습니다. 민주주의는 개발독재보다 못하다거나, 개혁은 피곤할 뿐이라거나, 평화보다는 대결이 유익하다는 주장이 마치 올바른 것처럼 대세를 굳혀가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잘못으로 5월 광주와 6월 항쟁의 피로 쟁취한 거룩한 민주평화개혁의 가치가 무너지고 민생이 더욱 어려워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저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여러분께 거듭 사죄드립니다.

저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제가 부족해 우리당이 정치력과 정책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치열한 반성과 내부 비판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 잘못과 책임이 참으로 큽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당의 핵심인사들은 우리가 초래한 민생개혁세력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먼저 여러 차례의 선거 결과와 여론조사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국민의 지탄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희망의 땔감은 치열한 자기반성에서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직화된 기득권에 집착해서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열린우리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모든 미래지향적 민생개혁세력이 결집하는 대통합신당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러나 우리당의 현실을 보면 더이상 기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당의 틀에 갇혀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다면 대통합신당의 길은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저는 미래지향적 민생개혁세력의 대통합신당을 추진하기 위해 우리당의 품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 길이 외롭고 험할지라도, 저는 거대한 기득권의 틀에 안주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미래지향적 민생개혁세력의 전진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자 합니다. 저의 결단과 노력으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다면 제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 각계각층의 뜻있는 인사들과 협력하여, 중산층과 서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 미래비전과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 뜻을 모아나가겠습니다. 유능하고 신망있는 인사들이 널리 모이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통합신당으로 나아가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더 높고 더 강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 결단에 격려와 지혜를 더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엄혹하지만, 저는 우리가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대통합을 이룩하면, 국민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채찍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07년 1월 28일 천 정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