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 핵심 ‘납품단가’ 어떻게 풀까?
거래관계 개선토론회 갑론을박…“정부 개입해야” vs “규제 의존은 한계” 팽팽
2011-09-14 신재호 기자
이날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재단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 개선대책’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열띤 공방을 벌였다.
지난 10여년간 상생 화두가 논의될 때마다 자금지원, 품질 및 기술지원, 해외시장 정보제공 등 대기업 중심적 지원방안들이 쏟아졌던 것과 비교하면, 그 논의의 수준이 한 차원 높아졌다는 평가다.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대부분 납품단가와 관련된 것들인데, 그동안 대기업은 이에 대한 논의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은 납품단가 조정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하는 등 관련 내용을 처음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이종욱 서울여대(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역할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 교수는 “납품단가 문제를 약자와 강자간의 이슈로 여기면 해결은커녕 갈등만 생긴다”며 “원자재 가격이 폭등할 경우 생기는 문제가 핵심인데, 이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의 공동구매 ▲정부비축물자 확대 ▲전기료 인하 등과 같은 우회적으로 원가하락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2, 3, 4차 협력업체에서 발생하는 납품단가 문제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간 거래는 전체의 1%도 되지 않음에도 모든 눈이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총수들이 실제 협력업체에 가보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번 상생 화두 역시 큰 소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 역시 정부의 개입 여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납품단가 문제가 당사자간에 자율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적절한 수준에서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납품단가 연동제의 도입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기업간 계약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소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틀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하도급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하도급법은 주로 거래 당사자간 교섭으로 결정될 거래조건을 규율화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약자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방향의 입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2, 3차 협력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적용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단순히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들간 상생이 아닌 전 산업계의 상생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병선 숭실대(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납품단가 연동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섭력의 차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납품단가 조정협의 권한을 업종별 협동조합에 위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적용되고 있으며, EU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며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유인을 사전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이병기 한경연 기업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하도급법상 규제강화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자발적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납품단가 연동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최근 거론되고 있는 방안들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납품단가나 거래조건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쟁을 통한 비용절감과 품질제고 등 경쟁압력을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경제의 근간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흔들고, 기업간 자율적인 위험분담 역할을 훼손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부연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기업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 향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성봉 한경연 정책기획실장 역시 “공정거래에 대한 논의의 출발은 소비자편익 측면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기업간 거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가규제와 관련해서도 기업간 거래에 이를 적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경제개혁연대 주최로 열린 '하도급거래의 문제점 진단과 개선방안'에서도 납품단가와 관련한 날선 토론이 이어졌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실장은 “협력업체 가장 큰 애로사항은 납품단가 인하요구(60.7%)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 원인으로 ▲협력기업의 교섭력 부족 ▲모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대기업 중심의 정부정책 등을 꼽았다.
그는 해결책으로 ▲협력업체조합 등에 집단교섭권 부여 ▲모기업의 불공정거래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협력업체의 소송비용 최소화를 위한 ‘협력피해보전센터’의 개설 등을 제시했다.
김석연 변호사는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하도급법은 산업정책 차원에서 하도급 구조의 공정화를 위해 관할 기관을 산업정책 담당인 지식경제부 산하의 독립된 조직인 가칭 ‘하도급위원회’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납품단가 교섭의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수급기업협의회’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업간 거래는 본질적으로 계약관계임을 강조했다. 과도한 제도화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해친다는 것이다.
신 연구원은 “하도급 계약관계의 갈등은 세배 배상제도 내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보다는 계약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휴사=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