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 '묻지마 살인'피의자 범행재연 "웃음소리 들려 그만…"

2010-09-15     유승언 기자

[매일일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웃음소리가 들려 들어갔다"

1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놀이터 앞. 신정동 살인사건의 피의자 윤모씨(33)는 80여명의 경찰과 50여명의 주민 앞에서 약 한 달 전 '그날'을 재연했다.

범행 현장에 도착한 윤씨는 연녹색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까맣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어두운 표정으로 더욱 그늘졌다.

이따금씩 당시 상황을 묻는 경찰의 질문을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자세히 설명하다가도 범행 동기나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다소 횡설수설하며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경찰들이 골목 양쪽에 늘어서 길을 터 주자 윤씨는 피해자 임모씨(42)의 집 인근 K마트 쪽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윤씨는 우울한 기분을 달래려 막걸리를 사 들고 승용차 2대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을 지나 인근 놀이터로 향했다.

윤씨는 놀이터 입구 오른쪽에 있는 3개 벤치 중 가운데 앉아 막걸리 마시는 모습을 재연했다. 윤씨는 막걸리를 병째 마시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뒤돌아섰다.

잔뜩 취한 윤씨를 붙잡은 것은 임씨 가족의 웃음소리. 놀이터 뒤편 3층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TV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들리자 건물 내 좁은 계단을 올라 임씨 가족이 살았던 옥탑방 주택으로 향했다.

윤씨는 3층에서 옥상으로 가는 계단 중간에 배낭을 내려놓고 가방 안에 흉기를 꺼내 들어 임씨의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선 윤씨 맞은편에는 임씨의 부인 장모씨(42·여)가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윤씨는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기에 조용히 하라고 하면서 머리를 때렸다"며 "아저씨가 뛰쳐나와 실랑이를 벌였고 당황에서 당시 쓰고 있던 모자가 떨어진 지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재빨리 계단에 두었던 가방을 들고 올라왔던 골목의 반대방향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윤씨는 "범행 당시 옷과 신발을 입고 다니다 잡혔는데 잡힐 것이라는 생각 못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돌아가신 줄도 몰랐다. 제 인생이 너무 괴롭다 보니 행복한 가정을…"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생활관에는 흉기 소지가 금지됐지만 과일 등을 깎아 먹으려 몰래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말 너무나도 죄송하다,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평생 죽어서라도 참회하며 살겠다"며 덧붙였다.

주민들은 이날 약 1시간동안 진행된 윤씨에 대한 현장검증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유모씨(35·여)는 "바로 앞에서 범인 보니 무섭고 떨린다"며 "아이를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인데 갑자기 걱정된다"고 말했다.

K마트 주인인 조모씨(41·여)도 "범행 전날까지 그 집 애들이 가게에 와서 이것저것 사갔다"며 "아이들이 부모 심부름으로 계란, 두부, 라면 같은 것들 사가기도 하고 인사성이 밝고 착한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영태(43)씨도 "범죄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안타깝다"며 "출소자를 방만하게 내버려둔 사회가 문제"라고 지적했다.